청소노동자 떠난 자리 놓인 꽃 한 다발과 소주…구청, 부랴부랴 2인1조 도입[현장]
지난 2일 새벽 서울 숭례문 인근 지하보도를 청소하던 60대 청소노동자가 흉기에 피습당한 자리에 조촐한 추모상이 차려졌다. 4일 경향신문이 찾아간 사건 현장에는 신문지로 동여맨 꽃다발과 종이컵에 따른 소주 한 잔, 과자가 놓여있었다. 받침대로 쓰인 흰 종이에는 “고인 명복을”이라는 다섯 글자가 적혔다.
서울 중구청 소속 용역업체의 청소노동자인 60대 A씨는 지난 2일 오전 5시10분쯤 7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A씨는 인적이 드문 이른 새벽 혼자 근무하다가 변을 당했다.
A씨는 2020년부터 사건이 발생한 지하보도의 환경미화를 담당해왔다. 노숙인들이 밤중에 머무는 해당 지하보도의 특수성을 A씨가 잘 알고 있어,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A씨의 담당구역은 계속 유지돼온 것으로 전해졌다. 피의자 B씨도 지난해 5월부터 A씨와 알고 지낸 사이라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잘 아는 분이 계속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게 업무 효율에도 좋아 업체가 바뀌어도 노동자를 승계해 구역 관리를 해왔다고 한다”고 했다.
피의자 B씨는 지난해 12월쯤부터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소재 여인숙에서 거주해왔지만, 이전에 노숙 생활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인숙이 답답할 때 지하보도에 나오기도 했다는 B씨는 범행 당일 A씨와 만나 대화를 하던 중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B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후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지하보도를 지나는 시민들은 조촐한 추모소 앞에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인근에 거주하며 매일 이 지하보도를 지나다닌다는 신재훈씨(44)는 “청소하던 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안 좋다”며 “평소에 많이 다녀도 다툼이 있는 건 보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놀랐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A씨의 근무는 통상 주 5일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점심시간 1시간 제외)였다. 직장인 등 유동인구가 몰리는 오전 9시 이전 세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근무하는 형태였다. 사건이 발생한 지난 2일은 지하보도 대청소(물청소) 기간으로, A씨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구역 청소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지하보도를 담당한 약 4년 간 큰 마찰이나 다툼은 없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 후 중구청은 관할 구역의 환경미화 업무를 모두 2인1조로 바꿔 운영키로 했다. A씨가 혼자 배치돼 근무한 탓에 범죄를 막거나 피해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판단해서다. 중구청 관계자는 “중구 관할 전체 구역에 적용될 예정으로, 용역 업체와 담당 부서가 협의를 마친 상황”이라고 밝혔다.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08021432011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312674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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