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문학·미술 수능 문제, 저작권 침해일까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홈페이지에 문학이나 미술 작품이 인용된 시험 문제를 시험 종료 후에도 게시하면서 별도 저작권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면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협회)가 “저작물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하라”며 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11일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평가원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문학·미술 작품 등 저작물 155건이 인용된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입선발고사, 검정고시 등의 문제지를 홈페이지에 올려 누구든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 해당 작품들의 저작권자들로부터 복사·전송권을 신탁받은 협회는 “평가원이 작품들을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저작권자의 전송권이 침해됐다”며 평가원을 상대로 저작물 사용료 약 1720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협회는 저작권법 제32조를 근거로 들며 “시험 등 필요한 경우 공표된 저작물을 ‘복제·배포’할 수는 있지만 ‘공중송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평가원은 저작물을 교육 등 정당한 범위 안에서 인용한 것은 저작권법에 어긋나지 않고, 저작자의 이익을 해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1심은 평가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수험생에게 균등한 학습기회를 보장하고, 시험의 투명한 관리를 위해 평가 문제를 공개하는 건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며 “저작물의 사회적·교육적 의미를 고려하면 시험이나 교육을 위한 인용이 폭넓게 허용될 필요도 있다”고 했다.
2심은 판단을 뒤집고 “홈페이지 게시 기간 등을 고려해 평가원이 협회에 1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시험 종료 후 저작권자 동의 없이 시험문제를 공개하는 행위는 정당한 채점과 성적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제한적 범위에서만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점과 이의신청 등 시험문제 확인이 필요한 절차가 모두 끝났는데도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되면 “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 효과까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원심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평가원이 게시 및 다운로드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아 “반드시 필요한 범위에서 저작물을 이용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평가원의 게시행위가 “원고로부터 이용허락을 받지 않은 채 저작물을 시험문제에 포함해 전송한 것”이라며 “그로 인해 저작물에 대한 시장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익상 필요한 경우 사용료를 지급하고 시험문제를 홈페이지에 게시해 제공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사용료 없이 저작권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홈페이지에 게시한 행위는 저작권자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라는 것이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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