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실미도 사건’ 53년 만에 국방장관 사과…부처 간부가 ‘대독’한다
‘꼼수 사과’ 비판 속 유족들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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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파공작원으로 선발돼 외딴섬에서 가혹한 훈련을 받던 실미도 부대원들이 열악한 처우에 항의하며 섬을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다 군경과 교전을 벌인 ‘실미도 사건’에 대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53년 만에 처음으로 사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방부 간부를 통한 ‘대독’ 사과여서 진정성 없는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임충빈 실미도 희생자 유족회장은 4일 한겨레에 “국방부에서 지난 7월23일 유족회 앞으로 공문을 보내와 ‘사형 암매장된 유해 발굴을 위한 개토제 행사 현장에서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이 국방부 장관 명의의 사과문을 대독하고 보도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한국군의 최대 흑역사 중 하나인 실미도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사과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2006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22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실미도 사건과 관련해 국가에 사과를 권고했지만 한 번도 이행된 적 없었다. 유해 발굴 개토제는 오는 9∼10월께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로도 잘 알려진 ‘실미도 사건’은 실미도에서 훈련받던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23일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섬을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다 군·경과 교전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 2명, 민간인 6명, 공작원 20명(추정)이 사망했다. 생존 공작원 4명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3월 형이 집행됐으나, 군 당국은 사체를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했다.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209파견대)는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병력 31명의 청와대 침투 기도 사건에 대한 맞대응으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와 공군에 의해 창설됐다.
53년 만에 나온 첫 사과지만 부처 간부의 ‘대독’에 그쳐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005~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며 실미도 사건을 직접 조사한 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는 한겨레에 “실미도 사건 조사과정에서 군 당국이 ‘적당히 하라’며 집요하게 방해했던 일이 떠오른다”며 “대독은 꼼수다. 윤석열 대통령이 깨끗하게 사과를 못 한다면, 최소한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는 게 정도”라고 말했다. 대독을 맡은 유균혜 국방부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은 이에 관한 의견을 묻는 한겨레의 문자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유족회는 ‘대독 사과’라는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임 회장은 “큰 틀에서 사과할 예정이라는데 오래전부터 국방부가 사과 요구를 회피해온 터라 이미 유족들이 지쳐있다”며 “국장 대독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사과를 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유해발굴 과정에서도 시간이 지체되어온 터라 대독 사과일지언정 유족들이 대승적으로 양보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족회는 올해 5월에도 신원식 국방부 장관 앞으로 탄원서를 보내 “국가는 잘못한 내용을 그대로 유족과 국민 앞에서 사과해달라”며 “국가는 사건 당시 (공작원들을) 간첩 또는 특수범(사형수 또는 무기수)이라고 잘못 발표한 부분 또한 제대로 바로잡아 사과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국방부는 오는 9∼10월 경기도 벽제 인근에서 사형이 집행된 뒤 암매장된 공작원 4명에 대한 유해발굴을 진행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가 2022년 9월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에 대한 조사 결정문을 발표하며 벽제리 묘지 5-2구역을 유해매장지로 추정하고 발굴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유해발굴은 지난해 초부터 추진됐으나 주변 묘지 소유주와의 협의 등으로 미뤄져 왔다. 국방부는 유족 요청에 따라 추모공원 건립도 추진 중인데, 실미도가 마주 보이는 인천 중구 을왕동 용유도 왕산도시숲 국유지가 유력 후보지로 검토되고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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