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자랑하던 ‘청담동 주식부자’ 가족에게 닥친 비극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8. 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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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급 펜트하우스 공개하고 외제차 자랑하다 사기로 구속
수감 중 돈 노린 범죄자에게 부모 잔혹하게 피살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서울 강남에 살던 이희진은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했다. 그는 SNS 계정을 통해 수영장이 딸린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공개하고, 부가티 베이론 그랜드 스포트,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롤스로이스, 고스트, 벤틀리 뮬산 등 최고급 외제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중 부가티 베이론은 신차 가격이 30억원에 달하는 슈퍼카다.

이씨는 자신을 자수성가형 주식부자로 자산이 수천억대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예능이나 토크쇼 등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앞다퉈 이씨를 섭외했다. 방송에서는 이씨를 '청담동 백만장자'이며 성공한 청년 재력가라고 홍보했으며, 일부 프로그램에는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범인 김다운이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씨는 이런 명성에 힘입어 블로그에 자신의 주식투자 노하우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장외주식에 투자해 종잣돈을 수십 배로 불렸다고 밝히면서 사람들의 투자를 유도하기도 했다. 그의 회사에는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한쪽에서는 이희진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한 회계사는 SNS에 1조원의 가치를 가진 회사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조회가 안 되는 점, 회사의 자산 규모와 주주 구성, 매출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점, 자산이 120억원 이상이면 외부 감사 대상인데 이희진은 포함되지 않는 점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씨의 학력에 대한 발언이 여러 번 바뀐 것도 논란이 됐다. 그는 명문대 영문과 출신이고, 대학 시절 한 달에 과외비로 500만원을 벌었다고 밝혔다. 그러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가지 못했고, 동생의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웨이터 생활까지 했다고 말을 바꾼다.

이씨는 자신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유명해지면 항상 의혹을 품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씨에게 거액을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금융 당국에 진정서를 넣기 시작하면서 그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

2016년 9월8일 검찰은 이씨를 투자자들에게 허위 주식 정보를 퍼뜨리고 헐값의 장외주식을 비싸게 팔아 약 1670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한다. 그의 동생도 형의 범죄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된다.

이씨에게 피해를 본 피해자가 3000명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주식부자'라던 이씨의 부는 수많은 피해자의 피 같은 돈으로 쌓은 범죄수익이었던 셈이다.

이희진은 자신의 SNS에 최고급 외제차를 타는 모습 등을 올리며 부를 자랑했다. ⓒ이희진 SNS 캡처

일 년 동안 철저하게 범행 준비

이씨가 수감된 후 그의 부모를 노리는 김다운(34)이라는 남성이 있었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미국 유학을 간 후 요식 관련 사업을 했다가 망하고, 귀국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범행 대상을 물색한다. 그는 이희진의 부모가 돈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점찍는다.

범행은 약 일 년에 걸쳐 철저하게 준비했다. 2018년 3월 김다운은 이희진 부모가 살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의 한 아파트를 찾아가 귀가하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이씨 부모의 차량인 벤츠 S클래스에 위치추적기를 달아 동선을 확인했다. 이씨 사건 관련 피해자 모임 관계자를 통해 이씨의 가족관계 등도 확인했다.

2019년 2월6일 김씨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경호원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를 보고 중국 동포(조선족) 남성 3명이 연락해 왔다. 김씨는 "병풍만 서주면 된다"며 150만원에 계약한다. 범행에 사용할 압수수색 영장도 위조했다.

범행 당일인 2019년 2월25일 새벽에는 이씨 부모 차량에 단 위치추적기를 통해 위치를 확인했다. 표백제, 청테이프, 장갑, 손도끼 등도 구입하는 등 범행 준비를 마쳤다. 이날 오후 4시쯤 김다운은 안양에서 공범들을 만나 집에 들어가는 이씨 부모에게 위조한 압수수색 영장을 보여주며 경찰 행세를 한다.

이들은 이씨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각각 서재와 옷방으로 끌고 가 결박하고 살해한다. 김다운은 공범들에게 사례금을 줬고, 이들은 곧바로 현장을 빠져나와 함께 거주하던 인천 간석동으로 가서 짐을 챙겨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초조하게 있던 이들은 오후 11시51분 중국 칭다오행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면서 도주에 성공한다.

김다운은 현장을 정리하다가 5억원이 들어있는 돈가방을 발견한다. 사건 당일 이희진 동생이 슈퍼카 부가티를 판매하고 받은 15억원 중 일부를 부모에게 맡긴 것이다. 김씨는 이런 상황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돈가방을 찾게 된 것이다.

김씨는 시신 처리를 고민하다가 먼저 이씨 아버지를 집 안에 있던 냉장고에 넣고 테이프로 밀봉했다. 다음 날 김씨는 경기도 평택의 한 창고를 임차한 후 이삿짐센터를 불러 냉장고를 이곳으로 옮겼다. 대리기사를 통해 이씨 부모 차량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간 후 견인차로 다시 평택 창고로 이동시켰다.

이씨 어머니 시신은 다시 옮길 자신이 없자 그냥 집 안 장롱 안에 유기했다. 시신 유기가 끝나자 이씨 어머니 휴대전화를 이용해 이씨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동생 이씨는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된 상태였다. 김다운은 이씨 부모가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를 노렸다. 나머지 슈퍼카 판매대금을 빼앗을 계획이었다. 이씨 동생을 수원으로 불러내 만났지만 이 자리에 지인을 데리고 나타나 납치 계획이 실패한다. 앞서 김씨는 심부름센터 직원에게 '2000만원을 줄 테니 오늘 작업합시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상태였다.

이씨 동생은 점점 이상한 점을 느낀다. 어머니가 카카오톡 메시지는 보내왔지만 전화를 걸면 받지 않았고, 김씨도 어딘가 모르게 수상했다. 그는 김씨를 만난 후 곧장 안양 부모 집으로 찾아갔는데 현관문 비밀번호가 바뀐 상태였고,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모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하고 사건 발생 약 20일 만인 3월16일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한다.

경찰은 이씨 부모 집 문을 강제로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고 사람이 잠깐 나간 것처럼 컴퓨터가 켜진 상태였다. 집 안에서 썩는 냄새가 나자 이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씨 어머니 시신을 발견한다. 이불과 옷가지로 가려져 있었다.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김다운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경기도 수원의 한 편의점에서 체포한다. 김씨는 밀항을 계획하고 심부름센터 여러 곳을 통해 알아봤고, 이 중 한 곳에는 밀항 비용도 지급했다. 경찰은 김씨의 진술을 토대로 평택 창고 안에 있던 이씨 아버지 시신도 추가로 발견한다.

이씨 부모 시신에는 고문을 가한 흔적이 역력했다. 허벅지 앞쪽에 벌어진 상처가 있었고, 인대가 끊어질 만한 손상도 확인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씨 부모에게 빼앗은 돈은 5억원이 전부라고 진술했다. 이 중 범행 준비와 대처, 변호사 선임비 등에 절반 정도인 2억4300만원을 썼다. 이 가운데 7000만원은 김씨 어머니가 주식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남은 2억5700만원만 회수했다. 유족들은 집 안에 돈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공범들에 대한 사례금에 대해 김씨는 "가방에서 알아서 다발로 가져갔다"고 했으나 공범 중 한 명이 중국으로 달아나는 과정에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돈이 없으니 20만원만 빌려 달라"고 한 것을 토대로 김씨의 말이 거짓일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동기에 대해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2000만원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아 강도를 계획했다"며 "처음부터 살해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공범들이 우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김씨와 이씨 아버지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휴대전화로 통화한 내역이 없고, 금융거래 기록이 전혀 발견되지 않아 김씨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사건 이후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이희진은 일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부모의 장례가 끝난 후 다시 구치소로 돌아갔다. 경찰은 중국으로 달아난 조선족 3명에 대해 인터폴을 통해 적색 수배를 내렸지만 아직까지 검거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강도살인, 사체유기, 강도음모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다운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돈을 빼앗을 목적으로 피해자 2명을 무참히 살해한 것은 물론 범행을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고, 교묘하고 대담한 수법을 사용했다"며 "하지만 피고인은 모든 책임을 공범들에게 돌리며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에게서 범행에 대한 반성이나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어 죄에 상응하는 엄벌을 할 수밖에 없다"며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해 잔혹한 범행에 대한 책임을 묻고, 수감생활을 통해 잘못을 참회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형량에 불만을 품고 항소에 이어 상고까지 했으나 최종심인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구속 상태에 있던 이희진은 부모의 장례를 위해 일시적으로 풀려났다. ⓒ연합뉴스

만기 출소 후 또다시 사기 혐의로 재판 중

이희진은 2020년 3월 만기 출소했고, 다음 해 12월25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 호텔에서 수억원대 호화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결혼식은 일부 하객만 참석한 채 식장 안은 철저하게 통제됐다. 축가는 그룹 'V.O.S'가 부르고, 사회는 개그맨 박성광이 맡았다.

신부인 레아는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출신으로 2016년 리브하이 새 멤버로 합류했다. 2019년 팀이 해체된 후에는 반려동물 관련 용품 소매업체 사업가로 활동했다. 연예계에 따르면, 레아는 이희진과 연애하던 중 임신하게 되면서 결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레아에게 프러포즈 편지와 함께 1억원짜리 수표, 고가의 명품시계를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아는 자신의 SNS에 관련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약 3년 후에야 뒤늦게 언론에 보도됐다.

이희진은 수감생활 후 부모가 살해되고 결혼까지 했으나 범죄와 결별하지 못했다. 그는 2020년 출소 후 동생과 함께 피카코인 등 가상화폐를 발행·상장한 후 허위·과장 홍보와 시세조종 등을 통해 코인을 매도하는 방식으로 총 897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 기소됐다.

또 불법 가상자산 장외거래소를 통해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피카코인을 코인 거래소 업비트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혐의로도 추가 기소됐다. 이씨 형제는 올해 3월 보석으로 풀려나 현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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