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사브르 단체전 최초 은메달…윤지수가 보여준 물러설 줄 아는 용기[파리올림픽]
윤지수(31·서울시청)는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 가운데 유일하게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다. 2016 리우 대회를 통해 데뷔전을 치렀고, 2020 도쿄 대회 땐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대표팀 ‘맏언니’로서 최세빈(24·전남도청), 전하영(23·서울시청), 전은혜(27·인천중구청)를 이끌고 파리 올림픽에 출전했다.
단체전에 기대를 걸어볼 법한 성과가 지난달 29일 개인전에서 나왔다. 윤지수가 16강전에서 아쉽게 탈락한 가운데 최세빈과 전하영이 뜻밖의 선전을 이어갔다. 특히 최세빈은 16강에서 세계랭킹 1위 에무라 미사키(일본)를 꺾는 이변을 일으키는 등 개인전 4위에 올랐다. 이때 최세빈은 “한국 선수들은 혼자보다 다 같이 할 때 더 세다”며 단체전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국은 4일 그랑팔레에서 열린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따냈다.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신예급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한국은 8강 미국전에서 전하영-최세빈-윤지수가 출전해 45-35로 가볍게 승리한 뒤 준결승전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만났다. 프랑스는 앞서 최세빈이 4위를 했던 개인전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획득한 마농 아피티-브뤼네와 사라 발제가 버티고 있는 세계랭킹 1위 팀이다. 홈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까지 보태져 고전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 프랑스를 45-36으로 완파했다. 전하영과 최세빈이 첫 1, 2라운드에서 아피티-브뤼네와 발제의 기를 꺾은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한국은 3라운드에서 무난히 활약한 윤지수를 빼고 전은혜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출전 선수 전원을 ‘낯선 얼굴’로 채우는 작전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윤지수가 먼저 제안한 작전이었다. 그는 재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스스로 경기에서 빠졌다. 준결승전 중반부터 결승전까지 피스트 아래에서 동료들의 싸움을 목청껏 응원했다.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삼인방은 맏언니의 응원에 힘입어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42-45로 아깝게 졌다. 경기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만난 윤지수의 얼굴엔 아쉬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는 “프랑스 선수들과 오랫동안 경쟁했기 때문에 서로서로 너무 잘 안다”며 “상대가 파악하기 어려운 선수가 나가는 작전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지수는 피스트 아래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본 것에 대해 “애들이 잘하는 모습을 보니까 기특하기도 하고,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영광스러웠다”며 “메달 색깔을 바꿔서 정말 기분 좋다. 다음엔 이 친구들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다”고 전했다. 파리 대회는 윤지수의 마지막 올림픽이 될 전망이다. 선수로서 올림픽 결승전 피스트에 오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지 않았을까. 윤지수는 “전혀 아쉽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다음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선수들”이라며 “제가 그 자리를 욕심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꼿꼿하게 말했다.
파리 | 배재흥 기자 he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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