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탄 빅테크주…'AI 붐'은 정말 끝났나
테슬라·MS·아마존·구글, 기대 못 미치는 실적
미국 경기 둔화, 금리 변동성도 유의해야
미국 반도체·빅테크 기업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엔비디아는 연중 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했다. 엔비디아 뿐만이 아니다. 애플을 제외한 M7(애플·마이크로소프트·엔비디아·알파벳·아마존닷컴·메타·테슬라)이 모두 연중 고점 대비 10% 넘게 꺾였다.
빅테크주가 숨고르기에 들어간 건 미국 월가에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끝없이 올라가던 그래프의 발목을 잡은 건 ‘수익성’ 논란이다. ‘어떤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지’에서 ‘얼마나 벌고 있느냐’로 투자자들의 질문이 바뀐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반도체 기업의 최대 수요자인 빅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 내용에 따라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역시 울고 웃었다. ‘AI’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의문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문학적인 투자에 비해 수익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테슬라 → 구글 → MS로 이어진 실망감
시장에 가장 먼저 찬물을 부은 건 테슬라였다. 지난 7월 23일 테슬라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3% 줄었다고 발표했다. 전기차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가격을 할인하며 수익성이 악화한 게 주원인이었다.
영업이익은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고 주가 상승 촉매제였던 ‘로보택시’의 공개일정도 미뤄졌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다음 날 주가가 12.33% 급락하며 하루 만에 134조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테슬라 쇼크로 미국 증시 전체가 출렁였다. 미국 증시 3대 지수인 다우존스, 나스닥, S&P500이 그날 올해 들어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실적에 대한 실망감은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이 이어받았다. 좋은 실적을 냈지만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가가 하락했다.
알파벳은 2분기 월가 예상치에 부합하는 실적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늘어난 847억 달러로 월가 예상치(814억9000만 달러)를 웃돌았고 주당순이익은 1.89달러로 이 역시 전망치(1.84달러)보다 많았다.
하지만 시장은 만족하지 못했다. 주가는 실적발표 직후 오히려 5% 하락했다. 리틀 하버 어드바이저스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데이비드 룬드그렌은 “기업들이 예상치를 맞추는 것만은 안 된다. 이젠 예상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했다.
실적보다 더 큰 우려는 ‘AI 버블’이었다.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투자사, 증권사 분석가들은 알파벳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에게 “분기당 12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하는 인공지능 투자가 언제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피차이 CEO는 “우리에겐 과소 투자 위험이 과잉 투자의 위험보다 훨씬 크다”고 했다. AI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투자 경쟁에서 밀리면 기술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심지어 우리가 과도하게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분명히 이것들은 우리에게 광범위하게 유용한 인프라다”라고 말하며 투자 의지를 내비쳤다.
MS 클라우드 사업 부진이 뜻하는 것
MS 역시 2분기 전년보다 웃도는 실적을 내놨지만 주가는 거꾸로 갔다. MS의 2분기 매출은 647억27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고 순이익도 220억36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 증가했다.
이에 따라 주당순이익은 2.95달러로 예상치(2.93달러)에 근접했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간 것이다.
하지만 MS의 성장동력에 물음표가 붙었다. 클라우드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한 게 문제였다. 인텔리전트 클라우드 부문 매출은 19% 늘어난 285억 달러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286억8000만 달러)를 소폭 밑돌았다. 실적 발표 후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한때 6% 넘게 떨어졌다.
MS는 AI 투자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이다. 오픈AI에 130억 달러를 투자하며 챗GPT 수혜를 흡수했고 AI 기업들의 인프라 구축에 필수인 서버, 클라우드 사업을 하며 지난해 1월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투자자들이 AI 전략의 핵심인 클라우드 사업의 작은 약세 신호에 얼마나 민감한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월가에서는 최근 빅테크의 AI 과잉 투자에 민감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AI 거품 우려를 키운 건 지난 6월 말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너무 많은 비용, 너무 적은 혜택?’ 제목의 보고서다.
30여 년간 테크기업을 분석한 베테랑 애널리스트 짐 코벨로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 이 기술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빅테크들은 향후 몇 년간 AI 설비투자에 1조 달러 이상을 지출할 예정이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4대 벤처캐피털 중 한 곳인 세콰이어캐피털은 최근 보고서에서 AI에 투자되는 모든 자금을 회수하려면 연간 약 6000억 달러의 매출이 창출돼야 하지만 빅테크의 실적이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의 우려에도 기업들은 더 많은 돈을 쓸 예정이다. MS는 클라우드와 AI 관련 비용을 포함한 자본 지출이 다음 회계연도에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2분기 자본 지출은 전년보다 77.6% 증가한 190억 달러였다. 1분기 140억 달러보다도 크게 증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막대한 기술 투자가 수익으로 이어지기까지 월가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또 다른 신호”라고 했다.
MS가 AI 투자에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반등했다. ADM, TSMC, 브로드컴 역시 동반 상승했다.
AI 거품 논쟁이 치열하지만 지난 1년간 AI에 투자금이 쏠렸던 만큼 단기적인 조정을 받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빅테크 실적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았을 뿐 모두 좋은 실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적과 함께 금리 변동성과 경기 둔화 움직임, 정책 변화 가 미국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지난 1일 발표된 7월 미국의 고용과 제조업 지수가 예상치를 밑돌면서 증시에 공포감이 엄습했다.
미국 경기침체를 가늠하는 '삼의 법칙'에 따르면 미 경제는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삼의 법칙은 3개월 평균 실업률이 1년 전 3개월 평균 저점보다 0.5%p 이상 오르면 경기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본다. 7월 실업률 상승으로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는 앞서 12개월간 기록한 최저치에 비해 0.53%p 높아졌다.
당초 연준의 금리인하는 증시를 끌어올릴 신호탄으로 여겨졌지만, '침체 시그널'로 인해 투자심리는 무너졌다.
지난달 31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올 9월 미국 기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자 증시가 상승 흐름을 타는 것 같았지만, 바로 다음 날 둔화된 제조업 지표와 고용지표가 발표되자 증시가 다시 요동쳤다.
이 때문에 연준의 금리 인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디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은 실수를 저질렀다"며 "몇달 전에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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