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현정 씨가 '한국의집'에서 잔치를 벌인 이유

박민주 기자 2024. 8. 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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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집 한부모 대상 돌잔치 치른 장현정 씨
"척박한 현실에도 보호시설에서 안정 찾아"
여전히 부족한 지원···"국가 지원 늘었으면"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한부모 가정 돌잔치를 위해 제공하는 잔치상. 사진 제공=국가유산진흥원
[서울경제]

스물 여섯의 장현정 씨는 지난해 소중한 아이 ‘수현(가명)’을 만났다. 사랑 속에 태어난 아이지만, 현정 씨를 둘러싼 환경은 거칠기만 했다. 이미 수현의 생부와는 인연을 끊었고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현이 아팠다. 수현이 ‘선천성 거대세포바이러스(CMV)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현정 씨는 수현을 잠시 떠나야만 했다. 수천만 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현정 씨는 ‘베이비박스’를 통해 보호소에 8개월 간 수현을 맡겼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수현의 첫 돌이 지났지만, 돌잔치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돌잔치를 치르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은 숱하다. 현정 씨처럼 경제적 어려움과 척박한 현실 때문에 돌잔치를 생각하다 포기하기 일쑤다. 그러나 만일 아름드리 나무와 근사한 한옥에서 무료로 아이의 첫 돌을 기념할 수 있다면 어떨까.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만난 현정 씨는 “올 5월 한국의집에서 열었던 수현이 돌잔치 사진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

아이와 함께하기까지, 현정 씨의 기쁨과 슬픔···아직은 어렵기만 한 현실
지난 5월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열었던 미혼모 장현정 씨와 아이 수현(가명)의 돌잔치 사진. 사진 제공=국가유산진흥원

부산 출신의 현정 씨는 수현을 낳은 후 일자리를 찾다가 월세가 밀려 살던 집에서 강제로 나가야만 했다. 수현의 선천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4000만 원의 병원비가 필요했다. 주민센터와 구청의 도움을 받아 수현의 치료비로 국가건강공단에서 300만 원 상당을 지원받았지만, 여전히 돈은 모자랐고 아이를 챙길 여력은 되지 않았다. 모텔과 여관을 전전하면서 지내는 나날이 이어졌다. 견디다 못한 현정 씨는 영아보호소에 아이를 맡기고 주어지는 대로 일을 했지만 수현을 데리러 갈 날은 멀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중 구청의 도움을 받아 알게 된 장소가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인 ‘동광모자원’이었다.

서울 노원구에 소재한 동광모자원을 택한 이유는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의료부터 교육·생계·심리지원까지, 가장 시급한 주거부터 시작해 수현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이뤄진다는 사실이 현정 씨의 마음을 이끌었다. 입소 첫 날부터 현정 씨는 기저귀와 젖병, 분유 등 육아용품을 한아름 전달받았다고 했다.

“나라에서 기저귀바우처가 나오지만 바우처몰에서만 쓸 수 있더라고요. 다른 쇼핑몰보다 비싼 가격인 데다가 아이가 쓰는 양을 생각하면 한 철밖에 되지 않았어요.” 기초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현정 씨는 마음을 다잡고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위기 임산부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달 19일부터 ‘보호출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으로 인해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임산부는 보호출산제를 활용해 가명으로 의료기관에서 산전 검진과 출산을 할 수 있다.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이후 지자체·의료기관에서도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게 됐다. 이 때문에 위기 임산부가 병원 출산 자체를 기피할 수 있다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제도가 보호출산제다. 다만 철저히 익명으로 출산이 이뤄지는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호출산제가 영아 유기를 합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날 한국의집에서 현정 씨와 함께 만난 추남숙 동광모자원 원장(64)은 보호출산제의 필요성에 대해 “내가 노출된다는 사실 때문에 낙태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보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엄마들에게도 국가가 ‘키워줄 수 있다’는 신호를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출산 이후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미혼모에게 부족한 지원은 여전한 숙제다. 생활지원시설인 동광모자원의 경우에도 법률상 ‘8세 미만 자녀를 동반한 한부모가족에게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주거 등을 지원하는 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영아 육아에 대한 국가 지원이 부족하다. 미혼모 등을 지원하는 출산지원시설은 기저귀·분유 등 육아에 필요한 비용이나 아이돌보미까지 지원받는 것과는 상반된다.

개인 후원에 대해서도 추 원장은 “아동·장애인 지원 시설에 비해 모자지원 등 여성 지원 시설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적다”면서 “인터넷을 통해 후원을 홍보해도 반응이 적어 지인들에게 십시일반 후원을 부탁하는 형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시설을 찾는 99%의 엄마들은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국가에서 도우려면 궁극적으로는 한부모가정의 자립까지 더욱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처럼, 동전처럼 살아라···"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돌잡이를 치렀으면"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한부모 가정 돌잔치를 위해 제공하는 잔치상. 사진 제공=국가유산진흥원

“돌잔치에서 수현이는 동전과 실을 잡았어요. 그만큼 수현이가 앞으로 안 아프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너무나 많이 아팠으니까.”

미혼모에게 아이를 키우는 현실은 고되다. 그럼에도 현정 씨는 “한국의집에서 돌잔치를 치르게 됐다”며 걸려 온 통화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좋은 조건에 한순간 ‘신종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가유산진흥원에서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지원 사업으로 한국의집에서 혼례식(기초생활수급자·장애인·다문화가정·새터민 등 대상)과 돌잔치(한부모가족·청소년한부모가족)을 실시하고 있다. 전통 공간에서 이뤄지는 이 소담한 행사는 한복·메이크업·돌상·사진 촬영 등 전 과정이 무료로 이뤄진다. 국가유산진흥원 관계자는 “향후 생애주기에 맞춰 각종 예식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정 씨가 추천한 한국의집 최고의 돌잔치 사진 촬영지는 청우정과 녹음정이다. 현정 씨는 “예스러운 정자 앞에서 수현이의 보조개가 사랑스럽게 찍혔다”며 “저와 수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좋은 기억을 선물로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다”고 웃었다.

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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