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전쟁 10개월…희생자·인질 가족들 “평화 원해요!” [특파원 리포트]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지 어느덧 10개월 가까이 됐습니다. 국제사회, 특히 동맹국인 미국의 휴전 압박에도 이스라엘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른바 친이란 '저항의 축' 연대도 이스라엘에 화력을 쏟아부을 태세입니다. 친이란 무장세력인 예멘 후티 반군의 텔아비브 공격(지난달 18일)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예멘 북부 도시 호데이다 항구 보복 공습(지난달 20일), 뒤이어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 축구장 공습(지난달 27일), 이스라엘이 단행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습(지난달 30일), 하마스 최고지도자 하니예 암살(지난달 30일)까지 이어지면서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으로 중동 정세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간인 공격과 가자지구의 열악한 인도적 상황이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불렀고 여기에 아랍계 표심이 미국 대선에서 중대 변수로 떠오르면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동맹국인 미국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전쟁을 계속 이어가는 걸까요? 이스라엘 정부가 KBS 등 국내 언론과 전문가들을 초청해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에 기습을 당한 현장들을 공개했습니다.
■ 참극의 현장 된 노바 뮤직 페스티벌…360명 살해되거나 납치돼
지난달 중순 찾아간 노바 음악축제장은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차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남부 네게브 사막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가는 길목마다 하마스에 잡혀간 인질들 사진이 내걸린 모습에서 전쟁 중인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바 음악축제장은 이제 더 이상 축제장이 아닌, 대참사의 현장이었습니다. 4천 명의 민간인 참가자 가운데 최소 360명이 하마스에 무참히 살해되거나 납치됐습니다.
10개월이 흐른 테러 현장엔 학생과 군인 등의 추모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추모객들은 섭씨 40도가 넘는 땡볕 더위에도 희생자들 사진을 하나씩 하나씩 마주하며 그날의 아픔을 함께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오펠 씨 부부는 하마스 기습 직후 연락이 두절된 아들 마탄을 찾기 위해 엿새 동안 축제장을 샅샅이 뒤졌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드론을 띄우고 수색견까지 동원했지만, 아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탄은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먼저 살린 의로운 청년이었습니다. 오펠 씨 부부 전언에 따르면, 마탄은 하마스 대원들이 기습한 직후 어떤 상황인지 재빨리 알아채고 무대에 올라 확성기를 틀고 '도망가세요!' 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마스에 발각돼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거의 100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 가자지구 '근접' 키부츠 집단농장 주택 60% 전소…취재 도중에도 '포성'
이스라엘 정부는 그날 가장 피해가 컸던 니르 오즈 키부츠로 취재진을 안내했습니다. 수십 년을 살아온 마을 주택 60% 이상이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주민 3백여 명 가운데 세 명 중 한 명은 하마스에 살해되거나
인질로 잡혀갔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인질이 35명, 이 가운데 13명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이스라엘 정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가자지구에서 불과 1.6킬로미터 떨어진 최전방에 있습니다. 가자지구가 육안으로 훤히 내다보입니다. 건물 대부분은 이스라엘군의 폭격을 당해 이미 폐허가 된 모습이었습니다. 취재 도중에도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포성이 들렸습니다. 니르 오즈 키부츠 주민 이리트 여사는 "키부츠에서 가자지구까지 평지로 쭉 이어져 있고 계곡도 없고 언덕도 없어서 걸어서 15분밖에 안 걸린다"며, "(어렸을 때는) 장벽도 없어서 자전거를 타고 해변까지 가곤 했다"고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트라우마 속 정부에 대한 원망도…가족들 "평화 원해요!"
지난해 10월 7일 중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은 인근의 또 다른 모샤브 집단농장에도 들이닥쳤습니다. 모샤브는 키부츠와 달리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농업 공동체 마을입니다. 여기서 평생을 살아온 80대 일레나 할머니는 아들이 하마스가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참극을 목격했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못 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분노가 치밉니다. 일레나 할머니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아들 시신이 마당에 내던져졌어요.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출동해서 저한테 집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는데 테러리스트들이 저를 죽여도 상관없으니 개들이 아들 시신을 먹지 못하게끔 아들 곁을 지키겠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일레나 할머니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 쉬란 씨는 취재진에게 울먹이면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조카가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데도 두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군대는 없었어요. 지옥 같았습니다. 이런 일은 다시는 어느 누구한테도 일어나서는 안 돼요. 우리가 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단지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이에요."
텔아비브 시내에는 우리의 광화문광장 같은 곳에 인질의 광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인질 가족들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의미의 여러 행사를 개최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만난 인질 가족 히부르 씨도 아들이 사진을 들고 취재진과의 장시간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도 평화였습니다.
"120명의 인질들이 아직 가자지구 안에 있어요. 그들은 단지 포스터의 사진이 아니라 꿈과 야망을 품은 인간입니다. 21세기에 납치가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하마스가 이번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인질로 붙잡고 우리 모두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전쟁을 원한 적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널리 알려주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트라우마는 심각했습니다. 취재진을 안내한 가이드도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가이드도 취재진의 일정에 동행한 이스라엘 외교부 관계자도 가족들의 증언을 함께 들으면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이스라엘 북부도 살얼음판…헤즈볼라와도 매일 교전
이스라엘 정부는 헤즈볼라와 교전이 격화되고 있는 북부 레바논 접경 인근 지역까지 취재진을 안내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북부 최북단 도시인 키르얏 쉐모나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전날 미사일 공습으로 접경 10킬로미터 근방까지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미사일 싸이렌이 울릴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몸소 시범을 보였습니다. 가자지구와는 또 다른 긴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레바논 접경 지역인 이스라엘 북부에선 이미 많은 주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습니다. 현지 이스라엘 군인은 지난해 10월 전쟁 개시 이후 이스라엘 최북단 지역에서 거의 매일 미사일이 쏟아지고 있다며, 관련 영상과 사진을 제공했습니다.
이번 이스라엘 출장 기간 만난 여러 현지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을 계속하는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 입장에선 한국 언론과 전문가들을 현지로 초청해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여론을 돌려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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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주 기자 (sil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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