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소설 다르게 읽기

한겨레 2024. 8. 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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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휴가처럼 보내고 싶어 강원도 강릉에 갔는데 종일 바다를 보는 것 말고 할 일은 따로 없다.

수영장에서 물장구치고, 밥 먹고,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책도 없었다.

소일거리 삼을 책을 사고 싶었기 때문에 '고래책방'으로 발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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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만화
애욕의 한국소설

하루라도 휴가처럼 보내고 싶어 강원도 강릉에 갔는데 종일 바다를 보는 것 말고 할 일은 따로 없다. 수영장에서 물장구치고, 밥 먹고,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 바다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해가 쨍할 때 바다는 하늘을 담아 색이 더 깊어지는데 바라보고만 있어도 빠져든다. 휴가지에 뽐내려 입고 온 화려한 옷들과 그 사이로 비치는 구릿빛 피부들이 꽉 찬 공간이라 시끄럽다. 하지만 물색에 홀려 깊이 빠지면 주변의 소음은 지워진다. 실제로 바다에 들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백사장을 덮은 인파도 없다. 호텔 요금은 극성수기를 가리키고 있는데 모두 다 어디 간 걸까? 오키나와 선셋 해변이나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누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요즘은 지역에도 훌륭한 서점들이 많이 있다. 마침 김민섭 작가의 ‘당신의 강릉’이 건물을 지어 새로 문을 여는 날이었다. 주소를 찾아 바람소리 내며 달려갔는데 김동식 작가의 사인회가 열리고 있었다. 지하 갤러리, 1층 카페, 2층 서점, 3층 법인 사무실로 쓰면서 각 층의 기능을 다른 층과 섞는 공간이 있었다. 여러 해 전에 회의 때문에 매달 두어번 보던 시절엔 상상도 못했는데 이렇게 뜻을 세워 짧은 시간 안에 꿈꾸던 공간을 연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사람이 너무 많아 책방 주인과 인사는 하지도 못했다. 책도 없었다.

소일거리 삼을 책을 사고 싶었기 때문에 ‘고래책방’으로 발을 돌렸다. 땡볕만 견딜 수 있다면 걸어서 10분 거리. 거기서 책들을 고르면서 한참을 놀았다. 다시 바닷가로 가기 전에 구매한 책은 ‘키노 씨네필’.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세기말을 풍미했던 영화잡지 ‘키노’의 필진들이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나온 영화에 대해서 ‘키노’의 시선으로 고르고 글을 썼다고 했다.

‘키노’가 나오던 시절, 연초엔 전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서 베스트10을 뽑았는데, 이번엔 2003년부터 2023년까지 20년간의 베스트10을 뽑아 놓았다. 그중에 절반은 사랑 영화다. ‘헤어질 결심’, ‘라라랜드’, ‘이터널 선샤인’, ‘팬텀 스레드’. 이런 한줄평이 각각 달려 있다. “어떤 사랑은 완성되지 못함으로써 완성된다”, “너무 아름다워서 더 후회만 가득한 사랑의 순간들”, “사랑,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 운명에 대한 각인”, “사랑은 독버섯처럼 때론 위험하면서 맛있는 법이다”.

사람에겐 사랑만이 살길인가? ‘애욕의 한국소설’은 우리가 알 만한 소설들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욕망의 결과들을 발라내 과장해서 보여준다. 이광수·현진건부터 황순원·조세희·김훈·한강을 지나 강화길과 최은영까지 스물다섯명의 작가와 더 많은 수의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많은 작품을 읽었고 제목이라도 아는 작품들이라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이 만화가 던지는 유머에 낄낄대는 건 또 다른 피서법이다.

나는 왜 ‘광장’의 이명준이 가진 괴이한 여성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보지 못했지? ‘새의 선물’의 진희에 공감한, 성장이 멈춘 어른들은 왜 이렇게 많지?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가 했을 고민을 제대로 읽지 못했었구나. 익숙한 소설의 살을 발라내고 보면 다른 관점에 설 수 있다. 이 만화의 작가는 “문학성을 추구하는 소위 순수소설이 소수의 전문가와 마니아를 위한 장르가 된 건 오래된 일”이라고 한탄하지만 이 만화는 수렁에 빠진 한국소설을 구해보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만화 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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