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저 쏘자 드론 ‘활활’…‘한국형 스타워즈’ 실전배치된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4. 8. 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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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 3, 2, 1. 레이저 발사!” 지난달 30일 오후 충남 태안 소재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종합시험장. ADD 관계자가 지시한 지 수 초만에 공중에서 비행하던 드론에 불꽃이 튀었다.

잠시 후 화염에 휩싸인 드론은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ADD 주도로 개발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의 위력이 검증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쓰인 것은 시제품이지만, 양산품과 성능상 차이는 없다고 ADD는 설명했다.

영국이 개발한 드래곤 파이어 레이저 무기가 공중에 있는 표적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제공
레이저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쓰이는 기술이다. 포인터 등의 사무용품, 정밀 절단, 마킹 등을 위한 산업용 장비가 대표적이다.

국방에서도 생화학 작용제 탐지, 거리측정 등에 저출력 레이저를 썼다. 하지만 레이저를 통한 절삭 기술 등이 확산하면서 ‘절삭도 가능한 레이저로 표적을 공격하는데 쓰면 어떨까?’라는 인식이 생겼다. 

표적을 파괴할 수 있는 레이저 무기 개발에 관심이 쏠린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실제로 미국, 유럽, 이스라엘, 중국 등에선 레이저 무기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1990년대부터 레이저 무기 연구를 진행했던 한국도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을 개발, 연내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블록-Ⅰ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작전운용방식도 더 유연한 장비 개발 움직임도 활발하다. 

◆의외로 깊은 역사 지닌 레이저 기술

‘빛을 한데 모아 표적을 태운다’는 레이저 무기의 핵심 개념은 생각보다 역사가 깊다. 

기원전 3세기 로마와 카르타고가 지중해 패건을 놓고 충돌한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아르키메데스는 청동거울을 여러 개 배치해 로마 함선을 격퇴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레이저의 개념과 유사하다. 다만 레이저가 인공 빛인 것과 달리 아르키메데스는 자연광을 이용했다는 차이가 있는 정도다.

레이저 무기가 공중의 드론들을 요격하는 상상도. 세계일보 자료사진
레이저가 군사적 용도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옛소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격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전략방위구상(SDI)이란 미사일방어계획을 수립했다.

‘스타워즈’라 불릴 정도로 첨단 기술이 총동원된 SDI엔 레이저 무기 사용도 포함됐다.

ICBM 요격을 위해선 매우 높은 수준의 출력이 필요했다. 때문에 핵폭탄을 활용해서 X선 레이저를 발생시켜 ICBM을 일거에 요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금에선 상상하기도 어려운, 냉전의 광풍이 낳은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다행스럽게도 실현되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과 더불어 냉전 종식에 따라 SDI가 다른 계획으로 바뀐 덕분이었다.

이후 미국과 중국, 러시아, 유럽 등에서 레이저 무기 연구가 활발해졌다. 대부분은 공중 표적을 요격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재 레이저 무기는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프랑스 정부가 드론방어용으로 헬마(HELMA)-P 레이저를 배치할 정도로 세계 각국에서 사용이 확산하는 추세다.

이같은 움직임은 기술 축적과 전장 환경 변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저렴하고 성능이 우수한 민수용 레이저 장비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군 관계자들은 레이저를 군사용으로 활용했을 때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민간 기술을 응용하면 리스크와 비용 증가를 억제하면서도 쓸만한 수준의 레이저 무기 제작이 가능하다.

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탑재된 단거리 레이저 방공 무기 M-SHORAD. 세계일보 자료사진
2000년대 이후 본격화한 ‘테러와의 전쟁’도 레이저 무기 개발을 촉진했다. 테러와의 전쟁에선 로켓이나 드론 공격이 급증했는데,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는 로켓과 드론 공격은 기존 지대공미사일로는 요격이 어려웠다. 

레이저 무기를 사용하면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고, 이는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 증가로 이어졌다.

미국은 레이저 무기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다. 함정에 탑재되어 미사일 근거리 요격 역할을 맡은 LAWS 등의 레이저 무기를 만들었던 미국은 올해까지 박격포탄이나 드론, 로켓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100㎾ 이하 수준의 레이저를 개발할 예정이다.

2030년까지는 순항미사일과 항공기를 요격하는 200~500㎾급을, 2030년 이후엔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미사일도 파괴할 수 있는 메가와트급 레이저 무기를 만든다는 방침이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하는 레이저 무기는 하드 킬과 소프트 킬 방식으로 구분된다. 하드 킬은 고출력 빛을 쏘면 열에너지가 발생해 표적을 태워버린다. 소프트킬은 낮은 출력의 빛을 발사해 센서 등을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레이저 출력을 조절하면 양쪽 방식을 모두 쓸 수 있다.

레이저는 장단점이 뚜렷한 기술이다. 우선 장점으론 탄약 공급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 꼽힌다.

벌컨이나 비호 등의 대공기관포는 막대한 양의 탄약을 사용한다. 따라서 탄약 보급을 꾸준히 해야 한다.

반면 레이저는 전력망만 갖추고 있다면 얼마든지 발사가 가능하다. 발사에 드는 비용도 발당 2000원 수준이다. 표적이 보이면 곧바로 사격할 수 있어서 교전에 소요되는 시간도 짧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 방위사업청 제공
표적이 아무리 빠르고 급격하게 움직여도 포착해서 추적할 수만 있다면, 표적에 레이저를 명중시킬 수 있다. 

단점도 있다. 곡사 기능이 없으므로 중간에 큰 산이나 건물이 있어 표적을 가리게 되면 발사가 불가능하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대기조건에 민감한 셈이다.

한번에 하나의 표적만 격추할 수 있어서 여러 개의 표적이 한꺼번에 날아오면 대응이 어려운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한국도 레이저 사용 범위 넓어질 듯

한국은 지난 1999년 ADD가 DF레이저장치를 안흥종합시험장에 구축하면서 레이저 무기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그때 당시 ADD가 만든 장치는 크기가 매우 컸지만, 출력도 높았다.

ADD는 이후 2015년부터 광섬유 레이저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북한 무인기가 휴전선을 넘어와 청와대 상공 사진을 촬영하면서 무인기 위협이 커진 것 때문이었다. 그 결과 2019년에 레이저요격장치가 만들어졌고, 지난해에는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을 만들었다.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은 컨테이너 크기의 녹갈색 박스 모양을 띠고 있는 발사장치 위에 빔집속기가 설치되어 있다.

발사장치에는 레이저를 생성해서 한데 모은 뒤 충분한 에너지를 지닌 채 표적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도록 하는 장비들이 탑재됐다. 

내부 제어실엔 사격통제반장을 비롯한 3명의 요원이 탑승해서 사격지휘, 발사통제, 연동통제작업을 진행한다.

지난 30일 오후 충남 태안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에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이 발사한 빔에 쿼드콥터가 격추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발사장치 위에 있는 빔집속기는 발사장치에서 만들어진 레이저를 쏘는 장비다. 필요할 때는 발사장치 안에 수납할 수 있다.

빔집속기에는 전자광학(EO)·적외선(IR) 카메라가 설치되어 표적을 조준한다. 에어컨 실외기보다 훨씬 큰 소음을 내는 냉각장치는 레이저 무기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열을 낮추는 기능을 한다. 높이 7m의 표적위치확인장치도 사용된다.

카메라와 거리측정기 등으로 구성된 전자광학장비로 표적을 포착하면 20kw 출력의 광섬유 레이저를 쏜다. 섭씨 700도 이상의 열에너지로 표적을 태워버린다.

1회 발사에 드는 비용이 2000원 정도에 불과해 가성비가 매우 우수하다. 사거리는 표적의 크기 등에 따라 2∼3㎞ 정도다. 국지방공레이더에서 포착해 방공자동화체계를 통해 전달받은 정보를 토대로 표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은 고정식으로서 국가 중요시설 방호에 주로 투입될 예정이다. 다만 고출력으로 인한 부피와 무게로 기동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천무 다연장로켓을 탑재하는 8륜 트럭과 유사한 전술차량에 빔집속기와 발사장치, 표적확인장치 등을 함께 탑재해 기동성을 높인 블록-Ⅱ 개발이 이뤄질 예정이다.

ADD는 로켓, 곡사포, 박격포처럼 고속으로 낙하하는 포탄을 요격하는 C-RAM 레이저 무장 관련 핵심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빔집속기와 발사장치, 냉각장치가 결합된 형태를 띄고 있다. 100㎾급 고출력 레이저를 목표로 2단계에 걸쳐서 핵심기술 개발을 진행할 방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LIG넥스원을 비롯한 방산업계에서도 드론 요격 등을 염두에 둔 소형 레이저 무기 개발을 추진중이다.

향후 한국군의 레이저 무기는 출력을 높이면서 경량화·소형화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한 레이저 대공무기 블록-Ⅰ의 빔집속기. 발사장치에서 생성된 레이저를 표적에 발사한다. 방위사업청 제공
주요시설이나 휴전선 일대 방어용이라면 무게나 부피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계화부대 방공작전을 위해선 차륜형장갑차에 고에너지 레이저를 탑재해야 한다. 미군도 스트라이커 차륜형장갑차에 레이저 방공무기를 탑재하고 있다.

전투기나 무인정찰기에 레이저를 탑재하려면 경량화와 소형화 수준은 지상보다 더 높게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레이저 발진기, 냉각장치, 탐지장비 소형화가 필수다. 우선 전원 공급 대비 레이저 전환 비율을 높여야 한다. 고온에서도 잘 작동하는 구성품을 개발하면 냉각 소요를 낮출 수 있고 냉각장치 소형화도 쉬워진다. 냉각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경량화와 소형화에 집중하면서도 레이저 출력 강화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드론 요격에 한정한다면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순항미사일과 박격포탄, 로켓탄을 파괴하려면 출력은 지금보다 2~3배 정도까지 높일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기술 개발 투자가 필수인 셈이다.

레이저 무기는 향후 방공작전에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선진국도 기술개발을 꾸준히 진행하는 만큼 우리도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레이저 분야에서 선진국에 밀리지 않는 수준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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