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을 초일류 자율제조 도시로 만들겠다”

정위용 기자 2024. 8. 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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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시를 가다] 홍남표 창원시장의 ‘지방 살리기’ 청사진

● 디지털·문화콘텐츠로 산업 다변화… 최고 정주 여건 마련
● ‘스마트팩토리’처럼 경쟁력 갖춘 도시로 탈바꿈 계획
● 도시 통합해도 역량 없으면 수도권 의존 여전
● SMR 지원 사업에서 ‘경북과 상생’ 제안

2022년 7월 취임한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은 창원을 초일류 자율제조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대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지방 소멸과 제조업 붕괴가 현실로 다가온 오늘날, 지방 도시들은 팍팍한 일상을 헤쳐나가고 있다. 산업의 역군이었던 1955~60년대생 베이비부머 세대가 물러나자 지방의 인력 공백은 전례 없이 심각해졌다. 이제는 인구 유출과 지방 소멸 위기를 방치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정부도 지방을 살리기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지만 아직 청신호가 뜨지 않았다. 지금까지 겉돌기 정책, 땜질 정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인구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한 것만 봐도 중앙정부의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수도권 밖의 시·군·구는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을 만나 지방이 맞닥뜨린 현실과 대안을 짚어봤다.

창원은 2010년 마산과 진해를 합쳐 통합창원시로 출범했다. 올해 7월 1일로 통합 14주년을 맞았다. 통합 이후 창원, 마산, 진해의 인구 합계는 109만 명에서 정점을 찍었다. 지금은 101만 명, 곧 100만 명이 무너진다고 한다. 요즘에는 특례시 인구 기준을 지금의 100만 이상에서 80만 명 이상으로 낮추자는 말도 나오고 있다.

도시 통합 후에도 원심력 나타나

마산, 창원, 진해가 통합된 지 14년이 지났다. 어떠한 통합 효과가 나왔나.

"14년 동안 마산, 진해, 창원이 각각의 역량에 주력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동안 마산은 야구장을 지었고, 진해는 신항구 건설에 들어가는 등 저마다 성과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변화를 선도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내는 데까지 아직 나아가지 못했다."

마산고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홍 시장은 기술고시 18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과학기술부에서 기획예산담당관과 재정기획관을 거친 뒤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 국장, 과학기술전략본부장 등을 지냈다. 2022년 7월 1일 창원특례시장에 취임했다. 창원에선 홍 시장이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홍 시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수도권 밖의 도시 통합이 인구와 산업을 키우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인상도 받는다. 대구-경북, 전주-완주 등 지역 통합 논의에 참조할 만하다.

특례시 출범 이후 중복 사업과 같은 재정 낭비나 부작용은 없었나.

"통합 이후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마산의 어떤 축제를 지원하겠다고 하면 진해나 창원에서도 똑같은 축제를 열어달라고 한다. 짧은 시간 말로 다 설명하지 못하지만 부작용이 곳곳에 남아 있고, 그게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통합 이전 창원은 재정자립도가 80%에 육박했는데 지금 통합시의 자립도는 30% 안팎으로 떨어져 있다. 지방이 독자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변화를 선도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수도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찰 결과다."

중앙정부에서 바라본 지방의 모습과 최근 2년 동안 시장으로서 지켜본 지방자치의 현실은 얼마나 다른가.

"중앙정부는 '기획(planning)' 기능이 강한 반면, 지방정부는 '집행' 기능이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겪어보니 실제로 그랬다. 지방정부는 홍수가 오면 즉각 대응하는 등 각종 재난에 대처하는 일에 능숙하지만 기획 기능의 보강이 필요하다.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면 자치 분권이 제대로 작동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책 수립, 인사, 조직 예산 측면에서 더 많은 자율권이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자체가 지방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예산과 인사의 자율권이 필요한데 그 벽을 넘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현재 특례시와 관련된 특별법은 4·10총선 이후 수많은 정략적 이슈에 묻혀 관심을 끌기도 힘든 상태다. 그렇다면 홍 시장의 복안은 무엇일까.

취임 이후 2년 동안 통합 시너지를 내기 위한 정책은 얼마나 추진했나.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창원에 100만 평(약 330만5785m2) 규모의 새로운 산업단지(산단)를 유치했다. 올해로 50년을 맞는 기존 창원의 국가산단도 제2의 도약을 위해 디지털과 문화를 접목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마산에는 자유무역지대가 2개 만들어졌다. 기존의 자유무역지역은 국가산단으로 지정됐고, 전국 최초로 디지털 자유무역지역도 지정받았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진해는 군사도시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물류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마산, 진해, 창원 각각의 역량을 끌어올린 뒤에는 3개 도시의 연결성을 강화해야 시너지가 나온다. '성을 쌓은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옛말도 있다. 그런 말을 되새기며 17년 만에 3개 지역을 연결하는 버스노선을 개편했다. 수서-창원 SRT 노선 개통 등으로 외부 지역 간의 연결성도 강화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직격탄

다른 기초단체에 비해 창원은 중후장대산업이 발달해 있다. 방위산업과 원자력,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두산에너빌리티, 현대위아, 현대로템 같은 대기업이 창원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2021년 창원특례시의 지역내총생산은 39조 원으로 비수도권 기초단체 중 1위였다. 창원의 이 같은 장점을 살리면 지방 소멸을 막는 버팀목이 된다는 게 홍 시장의 지론이다.

창원의 장점을 살린다 해도 심각한 저출산율로 볼 때 비수도권 도시의 인구 감소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인구 감소는 세계적 추세다. 이를 정책 실패로 간주하기보다는 '관리'해야 한다는 관점의 전환도 필요하다. 창원에서 좋은 일자리와 문화시설 등 우수한 정주 여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구 감소에 대처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과 기업 간 협업 생태계를 잘 구축하는 것도 지방 소멸을 막는 방법 중 하나다. 미국의 주요 도시들은 지역마다 좋은 대학을 두고 있다. 창원도 도시 전체를 캠퍼스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겠다. 미래 인재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창원에 유치하고 기업과 대학의 협업 수준을 끌어올리겠다. 창원문화복합시설과 같은 문화시설도 대폭 확충할 것이다."

기술고시 출신으로 이공계 보직 이력이 풍부한 홍 시장은 미래 산업 육성 정책에 대한 각론에서 막힘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원자력국장을 지낸 경력을 보고 창원의 원자력산업에 대해 먼저 물어봤다.

창원은 문재인 정부 후반 제조업 위기를 맞았다. 창원시 조사 결과 2020년 한 해에만 지역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였다. 이것도 탈(脫)원전 정책 때문인가.

"에너지 수급에 대한 대책 없는 탈원전 정책으로 지역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원자력발전소는 기본적으로 기계산업의 결집체다. 부품, 소재, 장비가 집적돼 하나하나 결합해야 최종 제품이 만들어지고 발전소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산업의 생태계가 상당 부분 붕괴했다. 지금은 그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원전 신속지원센터를 만들었고 금융지원과 원스톱(one-stop) 정책을 통해 신한울 3·4호기 건설과 조기 발주 등으로 기업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사업도 40~50%가 기계산업과 관련이 있다. 폐기물 용기, 운반 장비, 설비 등에 기계산업의 핵심 기술이 들어간다. 창원시는 방사성폐기물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2022년 지방선거 당시 원전 정상화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SMR(소형모듈원전) 클러스터 육성을 목표 중 하나로 잡았는데, 일부는 경상북도 사업과 중복되고 창원 산업계에서는 기업 유출도 우려하고 있다.

"경북과 창원이 역할 분담을 잘하는 것이 윈윈(win-win) 전략이 될 것이다. 경북 경주에 제2원자력연구원이 설립되고 있는데 SMR 관련 연구개발, 시제품 시험 검증 등의 기능을 경북에 집적시키고 창원에서는 SMR 상용화 이후 제작을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창원은 올해 4월 산업부로부터 로봇을 활용한 SMR 제작지원센터를 유치했다. 이 센터에서는 주기기 제작 기간을 단축하는 노하우를 쌓고 글로벌 강소기업을 육성하겠다."

창원에는 이미 원전의 핵심 주기기(원자로 내 제어봉, 증기발생기 등) 생산업체, 중소기업들이 밸류체인(value chain)을 통해 원전 설비를 생산하고 있다. 미래 산업인 SMR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는 경북과 분업이 이뤄지면 중복 투자와 불필요한 인구 및 산업 유치 경쟁을 줄일 수 있다는 게 홍 시장의 이야기다. 지금 세계 각국은 80~90개의 SMR 노형을 개발하고 표준화와 상용화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창원은 SMR 상용화 이후 제조 단계에서 독보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계획이다.

홍 시장은 지난해 1월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할 당시 기초단체장으로는 유일하게 수행하며 아부다비 공무원들을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수소 산업에서도 창원이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목에서 미래 일자리 창출과 산업 다변화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도 내비쳤다.

"미래 첨단산업, 고용과 낙수효과 가능"

제조업이 첨단화하면 공정 자동화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을까.

"기술 수준이 어중간한 업종에서 구인난과 구직난이 나타나면서 일자리가 많이 없어지고 있다. 반면 경쟁력 있는 첨단산업은 그렇지 않다. 첨단산업은 새로운 기술과 협업이 가능한 인력을 확대 채용하기도 한다. 기술을 활용해서 더불어 협업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지역 대학에서 첨단기술을 익히는 고급 인력을 양성하면 지역 인재의 고용을 창출할 기회가 많아지고 산업과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다. 지역에 입주한 기업의 매출이 인근 지역 상권으로 흘러가게 하는 낙수효과도 거둘 수 있다."

마산해양신도시에 지정된 디지털 자유무역지역에서는 어떤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가.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초연결과 인공지능 기술이 모든 산업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다. 지금까지 마산 자유무역지역에서 수출하는 재화는 제조업에 기반한 제품 위주였다. 새로 지정된 디지털 자유무역지역에서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서비스 상품을 창출하는 기업을 집적시킬 계획이다. 디지털 서비스 상품은 게임과 콘텐츠 등 무궁무진하다. 디지털 자유무역지역에 입주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주거 및 문화시설 등 최고의 정주 여건을 제공할 계획이다."

"제조업 없이는 생존 불가"

창원시가 추진하는 의료바이오 사업 육성은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지 않나.

"창원은 거대한 기계산업이 대세였다. 미래에는 의료바이오와 같은 사업에서 산업 다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중후장대산업의 소프트웨어는 바이오 산업이 쓰는 소프트웨어에 그대로 접목할 수 있다. 창원의 기술과 창원시 밖에 있는 바이오 기술을 접목한 장치산업을 육성한다면 비교우위가 있다고 본다. 바이오 창업 1세대가 만든 초음파 진단 장비와 같은 제품을 창원에서 생산하겠다는 것이 우리 전략이다. 의료바이오 중 상용화에 근접한 기술을 접목하면 시장 진입 실패를 줄이는 동시에 고부가가치산업을 집중 육성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지역에서 산업 다변화와 함께 고용 창출을 유발할 것으로 기대한다."

홍 시장이 그리는 창원의 미래는 스마트팩토리(smart factory)가 돌아가는 도시와 유사하다. 창원의 산업 기반과 문화콘텐츠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도록 혁신을 거듭하면 일자리와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런 도시를 '초일류 자율제조 도시'라고 불렀다.

"창원의 미래는 대한민국의 미래다. 싱가포르처럼 인구가 적은 국가는 서비스업만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인구 5000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은 제조업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창원은 제조 산업 도시이자 문화예술이 뛰어난 예향의 도시다. 초일류의 자율제조 도시로 탈바꿈, 문화와 콘텐츠를 접목한 최고의 여건을 갖춘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대혁신을 진행하고 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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