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만에 애 데리고 나타난 여친 “난 불치병, 네가 애 아빠”...당신의 선택은?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8. 4.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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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29]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의: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1994)는 2020년대 들어 새로운 논란을 일으켰다. 바로 주인공 검프(톰 행크스)가 너무 호구 같지 않냐는 것이다. 그건 다름이 아닌 그의 인간관계 때문이다. 그는 주변 사람에게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주는데 이 과정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는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오른쪽)가 벤치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다. 사람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그는 누구를 만나도 자기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는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구인 제니(로빈 라이트)와의 관계가 논쟁 대상이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퐁퐁남’이라는 멸칭으로 불렀는데, 이는 배우자에게 모든 주도권을 내준 채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남편을 지칭한다.

그러나 아마도 이 작품은 예상치 못한 논란에 휩싸인 게 아니라, 바로 그 지점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손해 보는 걸 너무 걱정하면 깊은 인간관계로 들어가지 못한단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곁을 지켜준 건 제니였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바보’라고 놀림당하던 검프, 처음으로 친구가 생기다
이야기를 살펴보자. 검프는 IQ가 80이 채 안 되고, 척추 질환 때문에 다리에 보조장치를 달아야 해 어릴 때부터 친구 사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모친의 지극정성으로 일반 학교에 진학하고, 짓궂은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게 된다.

친구 하나 없이 지내던 검프에게 제니는 자기 옆자리를 내줬다. 이는 검프가 엄마 아닌 사람에게 처음으로 받아보는 호의였을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제니는 귀가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방과 후에도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검프가 학폭 가해자들을 피해 도망 다닐 때 제니는 늘 응원해줬다. 그는 결국 보조 장치를 떼고 자기 힘으로 걷게 된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검프가 학폭 가해자들을 피해서 도망 다닐 때도 제니는 늘 응원해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이어진 이 괴롭힘으로부터 달아나는 동안 검프는 다리에 힘을 얻어 보조 장치를 떼게 됐다. 누군가가 옆에서 지켜봐 주지 않았다면 이처럼 극적으로 개선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지쳐 포기하게 될 테니 말이다.
어머니는 남편 없이도 그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이후 검프는 보행 능력을 개선하는 정도를 넘어, 육상선수처럼 잘 달리는 남자가 됐다.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돼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군에 들어가 업적을 세우며 무공훈장을 받는다. 심지어 사업마저도 대박이 나서 그는 평생 일할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된다.
검프는 미식축구 선수로 발탁돼 대학에도 입학한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수많은 성취에도 검프 마음속에는 늘 제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세상을 떠돌던 제니는 그저 가끔씩 검프 앞에 나타날 뿐이다.

제니는 수년 뒤 나타나 고백하는데, 본인이 검프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단 것이다. 검프에게 키워달란 차원에서 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검프는 책임감을 갖고 아이를 돌본다. 불치병에 걸린 제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검프는 홀로 아이를 돌본다.

무작정 전국을 뛰어다니던 검프는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검프가 이용당한 걸까
죽기 직전에 나타나 아이를 맡기고 떠난 제니를 두고 일각에선 검프를 이용했다고 지적한다. 검프가 고백할 때는 정착하지 않다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게 됐을 때야 마음을 내줬다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은 그 부분을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검프가 손해 보는 인생을 살았다고 평가할 수 있냐는 질문이다.

사실 검프는 제니와의 관계 외에도 ‘손익계산서’라는 관점에선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한다. 일례로 군 복무 시절 만난 중위는 늘 인생에 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이라 비즈니스 파트너로는 적절치 않았을 수 있지만 검프는 그에게 사업에 참여할 기회를 준다. 또, 군대에서 사업체에 대한 꿈을 공유했을 뿐인 친구의 유가족에게도 사업 소득의 상당 부분을 넘겼다.

검프는 버바라는 친구와 군 생활을 함께하며 꿈을 공유했다. 버바는 전사하고, 제대 후 검프는 그와 함께 논의했던 사업을 전개한다. 사업이 성공한 이후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버바의 유가족에게 많은 돈을 안긴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그러나 본인에게 이득인지 손해인지 일일이 따지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고 본다. 자기 앞에 나타난 인연을 그 자체로 소중하게 여긴 것이다. 그 덕분에 검프는 미식축구를 하고, 전쟁영웅이 되고, 사업가로 성공하는 기회를 누린다.

무엇보다도 크게 얻은 건 역시 사람이다. 자기가 더 많이 내주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은 사람들을 두게 된 것이다. 엄마 외엔 누구도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삶으로 출발해서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들로 충만한 인생을 살게 됐다.

인간관계를 넘어 인생 전반에 대해서 이 작품은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철저한 계획과 계산으로 삶을 통제하는 건 어려우니, 어느 정도는 큰 흐름에 맡기는 편이 나을 수 있단 것이다. 일단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무엇을 집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명대사가 그렇다. 이 초콜릿이 무슨 맛일지 고민해봤자, 먹기 전까지는 모르니 일단 경험하란 것이다.

또, 몇 년 동안 달리던 그가 갑자기 쉬고 싶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그렇다. 그를 추종하며 함께 달리던 많은 사람은 “우린 어떻게 하냐”고 묻지만, 검프에겐 답이 없다. 뛰고 싶어서 뛰었고, 쉬고 싶어서 쉬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와 말미에 보이는 깃털처럼, 바람의 흐름에 맡겨 삶의 여러 챕터를 경험하라고 얘기한다. 손해 볼까 봐 걱정하며 멈춰 있는 대신에 말이다.

‘포레스트 검프’ 포스터 [파라마운트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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