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제 꿈에 출연한 적 있으신가요?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4. 8. 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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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 때 비디오 가게 '알바'를 시작했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꿈에서 본 사람을 앞에서 직접 보고 싶어 너도나도 폴을 찾는 사람들.

나를 죽이려 드는 폴을 매일 밤 꿈에서 만난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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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시나리오〉
감독: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니컬러스 케이지, 줄리앤 니컬슨

열여섯 살 때 비디오 가게 ‘알바’를 시작했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하지만 매일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모든 게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봐도 “영화로 만들 이야기 같은 건 찾을 길 없는 노르웨이 시골 마을”의 감독 지망생. 떠나야만 했다,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가까운 데부터 가보았다. 바로 자신의 머릿속.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무슨 이야기를 상상해도 괜찮은 곳. “매일 꾸는 꿈이야말로 최고의 로케이션 장소”임을 알아챈 뒤, 칼 융의 책을 탐독하고 꿈 해석과 집단무의식 이론에 푹 빠져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같은 이미지를 공유한다’는 융의 개념을 이렇게 비틀어보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같은 사람 꿈을 꾸게 된다면?

영화 〈드림 시나리오〉의 주인공 폴(니컬러스 케이지)은 대학에서 진화생물학을 가르친다. 유명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무명의 대학교수로 눌러앉았다. 학생이 점점 줄어 강의실엔 빈자리가 늘고 머리카락은 자꾸 빠져서 이마가 뒤통수까지 길어진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던 그의 일상에 갑자기 변화가 찾아온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던가요?” 부쩍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가 곧 밝혀진다. 그들 모두 밤마다 폴의 꿈을 꾸고 있었다. 남의 꿈에 뜬금없이 나타나 맥락 없이 어슬렁거리는 폴의 존재가 알려지며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꿈에서 본 사람을 앞에서 직접 보고 싶어 너도나도 폴을 찾는 사람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뭘 해도 화제가 되는 ‘드림 인플루언서’의 탄생.

누가 봐도 소셜미디어의 은유다. 남의 피드에 뜬금없이 나타나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를 만들어내는’ 쇼츠와 릴스의 알고리즘을 꿈으로 옮겨 유머와 풍자를 곁들인 코미디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상상은 그다음부터. 폴이 나오는 모든 꿈이 별안간 악몽으로 바뀌면서부터다. 나를 죽이려 드는 폴을 매일 밤 꿈에서 만난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아무 잘못도 한 게 없는데 모두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뒤, ’떡상’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추락’이 시작된다.

선 넘은 ‘캔슬 컬처’의 희생양 폴에게 이제 남은 건, 셀 수 없이 많은 밈(meme)뿐이다.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크게 부끄러울 일도 없던 그의 인생이 통째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다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 눈길 주는 사람 하나 없는, 평범했지만 그래서 평온했던 그때의 인생을 다시 살아볼 수 있을까?

몇 해 전, 니컬러스 케이지의 영화 속 격한 표정만 모은 영상이 퍼져 나갔다. 최선을 다해 연기한 순간이 밈으로만 소비되는 현실에 크게 상처 입은 그가 〈드림 시나리오〉 대본을 받아 보았다. “수십 년 연기 경력에서 반드시 출연해야 한다고 확신한 작품”이라며 기꺼이 폴이 되기로 마음먹은 배우.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 더해져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영화가 나왔다. 노르웨이 시골 마을 비디오 가게 알바 출신 감독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찾아낸 이야기가 전 세계 관객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았다. 지난봄 개봉 때 미처 소개하지 못한 이 기발한 영화를 이제라도 힘주어 추천하는 이유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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