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로를 열고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 을 읽었다 [박찬일의 ‘칼과 책’]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
책장에서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을 찾았다. 실로 묶어 제작된 옛날 판본이다. 종이는 누렇게 변했고, 외갓집 벽장 같은 냄새가 났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 위로받은 시절이 있었다. ‘몽로’라는 간판 하나 달아놓고, 손님은 오지 않던 때였다. 고기 손질을 마치고 나서 핏물 밴 작업복을 입은 채로 화단 옆 시멘트 경계석에 앉아 책을 읽었다. 1층에 있는 카페 ‘이심’에서 모로코식 냉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서. 근처 편의점에서 종이 박스를 하나 얻어 깔고 앉아서 보던 책 중에 〈목로주점〉도 있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주인공들이 겪어가는 가혹한 운명이여!
그러니까 ‘몽로’를 갓 열었을 때다. 나는 가게 이름에 걸맞은 손님이 오기를 원했다. 랑티에와 쿠포, 그리고 독주에 절어버린 주정뱅이들. 말년에 망가져버린 우리의 주인공 제르베즈도. 매일 우리 가게에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 등장하는 그런 인생들이 많이 오기를 바랐다. 내가 싸구려 브랜디와 카시스주와 아니스주를 갖추고 있었던 것도 〈목로주점〉에 바치는 작은 예우였다(19세기 소설 주인공들이 마시던 술을 21세기 서울의 술집에서 내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와서 웃고 울다가 술을 들이붓기도 하는 가게가 되기를 바랐다. 요 뒤에 쓰겠지만, 내가 열었던 ‘몽로’는 실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에 바치는 오마주였다.
생각해보니, 그 ‘몽로’를 시작하게 된 게 2014년이다. 그 무렵 나는 아직 사십 대였다. 새 식당 운영을 제안받았다. 출판사를 하시는 점잖은 어른들 여럿이 나를 기꺼이 쓰겠다고 했다. 사옥 지하층에 목로주점을 하나 넣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 그렇게 해서 내 요리사 인생이 가장 빛났던 ‘서교동 시대’를 열어준 술집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로주점 하면 이연실의 노래를 기억하지만, 나로선 에밀 졸라를 염두에 둔 일이었다.
성실하다는 말을 쉬이들 쓰지만, 인생에 걸쳐서 정결한 투쟁심이 충만하지 않은 자에게는 쓰기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에밀 졸라야말로 가장 성실한 작가가 아니었을까. 소설과 인생에서 그는 모두 엄혹하게 자신을 다루었다. 소설 〈목로주점〉은 에밀 졸라의 정신적 분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 소설을 포함하여 일종의 연작소설 23편으로 이루어진 ‘루공 마카르 총서’를 쓴다.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이 소설이다.
가게 이름이 목로가 아니라 ‘몽로’가 된 건 특별한 사연이 있다. 상호 작명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고민이 없었다. 자연스레 ‘목로주점’으로 하자고 했다. 그건 허름한 대중 술집을 뜻하면서도 앞서 쓴 대로 에밀 졸라에 대한 작은 경의였다. 문제는 목로주점이 일반명사라는 것이었다. 가게 이름으로 등록하기가 어려웠다. 목로를 몇 번 입에서 굴려보니 ‘몽로’가 되었다(듣고 보면 시시한 사연이다).
‘몽로’라는 이름을 한자로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꿈 몽(夢)에 이슬 로(露), 얼마나 좋은가(이슬 로는 진로 소주에서 따왔다). 한데 간판장이 아저씨가 가져온 네온사인은 ‘夢路’였다. 露와 路(길 로)는 다른 글자다.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포기했다. 이슬 로는 너무 획수가 많아 작업이 어려웠을 거라고 이해해주기로 했다. 받고 보니 뜻밖에도 ‘꿈길’이라니. 동료에게 말했다. 이슬 로자보다 낫지 않아? 너무 알코올 중독 냄새가 나잖아. 차라리 잘됐네. 그렇게 몽로가 되었다. 그날 문어를 삶아 시칠리아식으로 레몬즙을 왕창 넣고 무쳤다. 꿈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손님들이 몰려와 브랜디와 값싼 포도주에 문어를 씹었다.
본디 건실했던 함석장이 노동자 쿠포는 어느 날 건물 옥상에서 작업하다가 떨어져 큰 부상을 입는다. 아내인 세탁부 제르베즈의 간호에 힘입어 겨우 살아난 그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그가 드나드는 술집이 바로 목로주점이라고 번역된 ‘라소무아르(L'assommoir)’다.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돌발적인 사건”이면서 당시 파리 노동자 지구인 “벨빌에 있던 선술집 이름이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싸구려 독주를 파는 주점(〈목로주점〉 박명숙 옮김, 문학동네 펴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졸라가 아주 적절한 제목을 붙였다. 주인공들은 체념에 빠져 삶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며 선술집의 싸구려 독주에 스러진다. 한때 성실한 노동자였던 쿠포는 큰 부상을 당한 후 아내 제르베즈를 갉아먹으며 자신도 망가져간다.
여담이지만, 오래전에 파리의 어느 한인 민박집에 묵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동네가 바로 벨빌(Belleville)이었다. 중국인과 아랍인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와 살던 허름한 동네였다. 나는 ‘아주반점(亞州飯店)’이라고 한자 간판을 단 중국 식당에서 보졸레누보 와인에 볶음밥을 먹었다. 소설에서 언급된 ‘신선한 포도주’라는 건 아마도 보졸레누보 같은 술이 아니었을까 상상하면서. 그 동네 골목에는 쿠포나 랑티에, 제르베즈 같은 노동자들의 후예들이 바에서 ‘히캬(아니스 술)’를 마시고 있었다. 혀가 얼얼해지면서 마시고 한참이 지나서도 허브캔디 같은 맛이 혀뿌리에 남던, 처음으로 마셔본 아니스 술맛의 충격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소설에 언급되지 않았다면, 내가 그걸 읽고 기억하지 않았다면 술의 존재조차 몰랐을 거다.
〈목로주점〉은 압축해서 말하자면 파멸에 대한 이야기다. ‘먹어 조진다’는 말이 있다. 어떤 희망도 없는 사람들이 먹고 마셔서 인생과 은행 잔고를 탕진해버릴 때 쓰곤 한다. 예고된 파멸이다. 에밀 졸라는 그 예정된 순서를 따라 힌트를 던지면서 독자를 우악스럽게 지독한 결말까지 이끌고 간다. 그러고는 독자마저 파리의 더러운 하수구에 처박아버린다. 우리는 쿠포와 제르베즈와 함께 그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게 된다. 폭식과 폭음은 운명의 종말처리장으로 흐르고 소설은 끝난다.
‘먹어 조지는’ 음식이 끝도 없이 나온다
작가가 소설을 구상하고 취재할 때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가를 확인시켜주는 대목이 허다하다. 술 한 잔의 값, 빵 한 덩어리, 셔츠의 세탁비, 방세, 관리비, 일당, 허름한 식당 웨이터의 팁(2수에 불과함. 2수는 10센트에 해당하는 작은 금액이다), 포도주 1리터의 값….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몇 프랑과 몇 수의 화폐가 쉬지 않고 나온다. 사실 우리 생활도 이런 구매와 지불로 촘촘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만, 에밀 졸라는 마치 지갑을 쥐고 파리의 노동자 구역을 돌아다니며 직접 지불도 해가면서 소설의 초록을 써낸 것 같다. 이런 세심한 묘사와 서술은 아마도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의 설계에서 비롯한 것이리라.
무엇보다 ‘먹어 조지는’ 음식의 끝도 없는 등장은 소설의 파멸로 다가가는 예리한 예고편처럼 날카롭다.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하게 되는, 애 둘 딸린 장애인 세탁부 제르베즈는 결혼 피로연만은 제대로 치르려 한다. 시청과 성당에서 혼례를 마친 부부와 하객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고(이 대목은 길게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1800년대 중후반 루브르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상당히 흥미롭다) 피로연을 치를 식당에 당도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인공들은 절제하고 검약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서 낭비를 피하려 하지만,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하객 메보트 때문에 꽤 큰돈을 치르게 된다. 고기완자 파이로 시작해서 몇 가지 요리로 마칠 줄 알았던 메뉴는 끝도 없이 먹어대는 메보트 때문에 주문이 늘어나게 된다. 포타주와 버미셀리 수프, 토끼고기 프리카세에 송아지 고기찜, 통닭, 달걀 푸딩 디저트까지 먹는다. 아마도 근대소설에서 이처럼 상세한 식탁 장면이 끝없이 펼쳐지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꽤 흐르고 제르베즈의 생일잔치에 모인 사람들은 이제 살림을 거덜 낼 듯 먹어댄다. 송아지고기 스튜, 거위 통구이, 돼지 등뼈 감자탕에 완두콩 베이컨, 그리고 꽤 괜찮은 와인도 마신다. 그들은 신나게 여흥을 즐기고 행복감은 고양된다. 그러나 이는 비극을 향한 최후의 만찬이다. 주급을 받는 일개 세탁부에서 일솜씨를 인정받아 세탁소를 직접 차려 행복한 삶을 누리는 제르베즈 부부가 한껏 멋을 낸 생일 잔칫상. 하지만 그것은 예정된 나락의 낙차를 더 극명하게 보이기 위한 작가의 장치 같다.
큰 시간차가 있지만 1970년대의 서울 한 변두리에도 목로주점이 있고, 제르베즈 같은 비운의 여인과 쿠포 같은 술꾼 남편이 있었다. 동네 어느 구석에는 우리가 ‘니나놋집’이라고 부르는 술집이 있었다. 한복을 입고 분 냄새를 피우는 작부들과 젓가락 장단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취객들, 엄마의 성화에 아버지를 데리러 술집까지 찾아온 아이들이 종내는 큰 덩치의 아버지를 부축해서 걸어오던 어두컴컴한 골목길이 기억난다. 소설에서 아내를 두들겨 패서 죽이고 여덟 살 어린 딸아이에게 채찍을 휘두르던 비자르 영감 같은 남정네들의 끔찍한 가정폭력을 목격하던 곳도 그런 골목이었다. 더러 어떤 놈들은 취해서 시퍼런 부엌칼을 들고 배를 그어가며 동네 구경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들도 모두 〈목로주점〉의 남자들처럼 스스로 무너지던 일당 노동자들이었다. 머리채를 서로 쥐어뜯으며 세상에 모든 저주와 욕설을 퍼부으며 싸우던 여자들을 구경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세상은 절망적이었고 끼니는 무서웠으며 내일이 두려운 사람들이 우리에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다만 젓가락 장단의 목로주점이 사라졌을 뿐. 어릴 때 무슨 일인지 한 패의 술꾼들과 작부들이 뒤엉켜 있던 니나놋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악다구니 같은 노래와 번들거리는 욕정, 나무 탁자에 채찍 자국처럼 빗금으로 새겨져 있던 쇠젓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말로 목로주점이란 의미는 좀 특이하다. 한국의 전형적인 서민형 술집으로 조선 후기부터 존재했던 걸로 보인다. 목로란 안주를 진열하는 나무판자를 뜻한다. 대개는 서서 마시는 사람이 많았으니 ‘선술집’일 수도 있다. 한국어판보다 먼저 나왔을, 이 소설의 일본어판 제목은 ‘이자카야’다. 썩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목로주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이자카야는 일본에서 포괄적 의미의 술집인 데 비해 목로주점은 성격이 좀 더 또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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