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 그 후] “재활센터? 114 상담사가 알려주더라” 73억원 혈세 쏟아부었는데, 실상은?
인력난에 홍보 부족 등으로 도마 올라…방문보단 전화 상담↑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마약과 사투(死鬪)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마약을 좇는 자들과 이러한 마약중독자들을 쫓는 자들이다. 지난해 국내 마약사범은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난 2만7611명을 기록했다. '마약사범 2만 명 시대'가 열린 것이다.
정부는 검거·단속뿐 아니라 치료·재활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그 일환으로 전국에 마약중독재활센터를 확대 설치하고 있다. 조건부 기소유예자를 비롯한 중독자와 이들의 가족 등에게 열린 공간이다. 수사망을 피한 중독자들에게도 '단약(斷藥)'을 위한 동아줄이다. 민간 마약중독재활센터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선 특히 실낱같은 희망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선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내담자는 마약중독재활센터의 존재도 인지하지 못했다. 교육을 책임지는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을 제외한 '최대 규모'라는 부산마약중독재활센터마저 센터장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를 포함해 올해에만 추가 인력 모집 공고가 열 차례 게시됐을 정도다.
시사저널은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에서 진행 중인 마약중독 치료·재활 제도의 실상을 알아봤다. 식약처가 연 73억원의 혈세를 쏟은 마약중독재활센터 현장을 지난 6~7월 찾았다. 국내 첫 마약전담교정시설 현장 취재에 이은 후속 편이다(시사저널 6월24일자 기사 참조).
'성과 내기' 급급한 식약처, 전국에서 우후죽순
6월25일 오전, 올해 초 문을 연 인천 마약중독재활센터로의 초행길은 쉽지 않았다. 인천 마약중독재활센터의 정확한 주소지는 지도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와 마약중독재활센터는 같은 건물에 있다"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마퇴본부 인천지부의 주소지를 급히 찾았다. 검색 결과에 따라 인천 2호선 석남역(인천 서구)으로 향했다. 역에 내려 공사 현장과 시장 등을 지나 15분가량 걸어가니 5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인천지부' 간판이 눈에 띈다. 건물 4층에 올라가자 보이는 '인천 마약류중독재활센터'라는 안내판을 보고서야 제대로 찾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조건부 기소유예자들에겐 필수 코스다. 현 정부는 마약류 단순 투약사범에 한해 '치료-재활' 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를 확대 실시했다. 검거·단속뿐 아니라 중독자의 회복을 위한 조치다. 조건부 기소유예는 일정 기간 특정 조건을 어기지 않을 것을 전제로 기소유예, 즉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한다는 의미다. 검찰은 과거 마약류 단순 투약사범을 기소유예할 때 선도·치료·교육 등 세 종류의 조건을 걸었다. 이젠 치료-재활 연계모델을 포함해 네 종류로 운영된다. 이런 과정에서 핵심은 마약중독재활센터다. 인천 마약중독재활센터 입구 오른편에 조건부 기소유예자를 위한 별도의 교육장이 마련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마약중독재활센터는 일상 속 중독자들에게도 열린 공간이다. 출소자뿐 아니라 검거·단속을 피한 중독자들이 대상이다. 이들의 가족 역시 재활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인천 마약중독재활센터를 방문했을 때에도 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재활교육이 이뤄지는 프로그램실은 센터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데, 10여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방이다. 한 시간가량 재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던 이날 오전 10시50분경, 강사와 중독자 가족 등 7명은 교육에 한창이었다. 20대 남성부터 중년의 여성 등 이들의 연령대와 성별은 다양하다. 오후엔 20~40대로 보이는 여성 3명이 마약중독에서 회복한 체험기를 강사와 공유하고 있었다.
상담 문의도 이어졌다. 프로그램 오전 교육이 끝을 향하던 오전 11시20분경, 직원의 상담 전화는 10분째 지속됐다. 상대가 교육을 위한 중독자들의 모임을 우려하는 듯했다. 직원의 설득 섞인 답변은 계속됐다. "(중독자들의) 가족 가운데 염려하는 이들이 없진 않다. 그러나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도록 강력하게 안내하고 있다. 현장에서 이를 조절하고 있기도 한다." 센터의 오후 시간, 수차례에 걸친 상담 전화가 반복됐다. 이곳에는 과거부터 일해온 마퇴본부 인천지부 직원 3명과 중독재활센터 4명 등 7명이 근무 중이다.
인천을 포함해 올해 설치된 마약중독재활센터는 6곳(7월 기준)이다. 인천·경기·강원·충남·충북·울산 등이다. 현 정부 들어 대전(2023년) 이후 잇따라 설치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8곳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한 올해 예산만 73억3500만원이다. 서울중앙본부(2018년)와 영남권(2020년) 중독재활센터는 과거 설치됐는데, 부산 1호선 연산역(부산광역시 연제구)에서 도보 5분 거리의 영남권 센터는 조만간 초량역(동구) 인근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 사무실로 이전할 계획이다. 식약처는 마약중독재활센터의 새 명칭을 '함께 한걸음센터'로 바꾸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은 먼 듯하다. 전국에 등장한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정작 중독자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이 지난 7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복수의 내담자는 "마약중독재활센터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아래는 50대 가장 김명욱씨(가명)의 이야기다. 그는 20대에 처음 마약에 손을 댄, '필로폰 중독 인생 30년'을 산 인물이다. 마약사범으로 교도소에만 여덟 차례 수감됐다고 한다.
"지난해 혈액암에 걸리고서야 단약을 결심했다. 가족마저 나를 외면한 건 더욱 뼈저렸다. 그런데 정작 어떻게 약을 멈춰야 할지 몰랐다. 방법을 모르고 맴돌던 어느 날 새벽, 혼자 차량에 있다가 문득 114 상담 전화를 걸었다. '마약을 끊고 싶은데 어느 곳으로 가면 되느냐'고 물었다. 상담사가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알려주더라. 그제야 센터 번호를 알았고, 이튿날 직접 전화를 걸었다. 센터 앞까지 와서도 한 시간을 망설였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 상담가에게 과거를 쏟아냈다. 살려 달라며 펑펑 울었다. 올 초의 일이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업무가 없는 요일에는 빠지지 않고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다."
30대 가장 서병식씨(가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0여 년간 대마를 흡입했다는 서씨는 지난해 처음 수사망에 걸렸다. 그가 마약중독재활센터를 방문한 이유였다. "선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변호사가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알려줘 오게 됐다"는 게 조건부 기소유예자인 그의 설명이다. 서씨는 "교육을 듣고서야 재활도 가능하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도 "하지만 중독자 대다수는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부산센터장은 공석…"인력난" 한목소리
인력 문제도 난관이다. 부산마약중독재활센터의 경우, 센터장이 약 한 달째 공석 상태다. 기존 센터장이 새로 개소한 울산센터로 이동하면서다. 부산을 맡을 센터장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7월24일 '2024년도 10차 채용 공고'를 내고 부산을 비롯한 서울·충북센터장, 사회재활·총무회계·상담(24시간 상담센터) 인력 5명 등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마약중독재활센터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마약에 대한 부정적 인식, 고난도 업무 등 여러 이유로 일반 직원 채용도 쉽지 않다"며 "지난해 식약처의 감사에선 높은 퇴직 비율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다른 관계자는 "마약중독재활센터를 급하게 늘리면서 상담 인력 충원도 덩달아 필요하지만 이와 관련한 인력을 위해 쓰이는 예산은 많지 않은 편"이라며 "전문 상담가들 사이에선 '사명감을 가진 중독상담가가 아니라면 누가 오겠는가'라는 현실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식약처가 실시해 공개한 2022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정기종합감사에선 후원금으로 예산 부족액을 충당한 사실이 도마에 올랐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2019~21년 후원금 약 32억4000만원을 사업비 등으로 임의 집행한 사실이 문제로 지목된 것이다. 마퇴본부 관련 국고보조금 예산은 2019년 21억7000만원, 2020년 27억8000만원, 2021년 31억원, 2022년 33억원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약중독재활센터의 사회적 중요도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민간 마약재활중독센터는 사실상 폐업 상태이기도 하다(시사저널 5월28일자 기사 참조). 서울 강동구에 개소하려던 마약중독재활센터가 주민 반대에 부딪혔지만, 이외 다른 지역에선 차질 없이 문을 열고 있다. 마약중독재활센터를 '혐오시설'처럼 여겨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큰 만큼 현장의 비판적 목소리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복수의 관계자들 이야기다.
실제로 마약중독재활센터를 찾는 이들은 증가세인 것으로 보인다. 센터 상담 시 개인정보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대상자 수를 집계하긴 어렵다. 다만 센터가 상담을 요청한 이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건수로 이런 상황을 파악할 순 있다. 시사저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확보한 자료를 보면, 올 6월 기준 전국 센터에서 서비스를 제공받은 경우는 8625건이다. 이 가운데 전화 상담(1342 용기한걸음센터)은 1527건을 차지한다. 올 상반기에만 지난해(1만1645건)의 74%에 달했다(지도 참조).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