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대 없었던 윤-한 90분 회동…정책의장 사퇴 갈등으로 냉기 확인
‘3시간 독대’ 김기현 때와 딴판
만남 뒤 정책위의장 인사로 갈등
‘채 상병 특검법’ 등 뇌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독대’했다는 소식은 지난달 30일 밤 11시께 티브이(TV)조선의 단독 보도로 처음 알려졌습니다. 기사의 앞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30일 비공개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오늘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비밀리에 이뤄졌다’며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조율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기사 본문에 독대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티브이조선은 “윤 대통령-한동훈 독대했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독대(獨對)는 본래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단둘이 만나는 일’ 정도의 의미입니다.
첫 기사가 워낙 늦은 시각에 보도된 탓인지 다음날 아침 기사를 지면에 싣지 못한 신문들이 많았습니다. 7월31일치 인터넷판을 살펴보니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가 1면에 기사를 실었습니다.
“윤-한, 어제 오전 대통령실서 독대”(동아일보)
“윤 대통령·한동훈, 대통령실서 독대”(조선일보)“
윤 대통령·한동훈 용산서 비공개 회동”(중앙일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사 내용은 티브이조선과 비슷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권 관계자발로 윤 대통령, 한 대표, 정진석 비서실장 세 사람이 1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고 썼습니다. 한 대표가 인사차 대통령실을 방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공개 회동 ‘내용과 형식’에 촉각
어쨌든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은 중요한 뉴스였습니다. 두 사람은 총선 전 비상대책위원회 시절부터 관계가 크게 악화한 상태였습니다. 7·23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석열계’는 한 대표 당선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습니다. 친윤계 배후에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입니다.
전당대회 다음날인 7월24일 윤 대통령 초청으로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 그리고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원희룡·나경원·윤상현 후보가 만찬을 함께 했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가 금세 좋아질 것이라고 본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지난달 30일 두 사람의 독대가 사실이라면 급속한 관계 개선의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출입 기자들에게 한밤중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31일 아침까지 인터넷과 방송으로 속보를 내보냈습니다. 언론의 관심사는 세가지였습니다.
첫째, 독대 여부입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두 사람만 만난 것과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정치에서 독대는 신뢰의 증표입니다. 독대가 이뤄졌다면 그 자체로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만나서 대화한 시간입니다. 독대든 비공개 회동이든 ‘10분’은 너무 짧습니다. 처음에는 ‘10분’ 보도가 많았지만, 점차 ‘1시간30분’으로 정리됐습니다. ‘10분’ 주장은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 회복을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린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
셋째, 대화 내용입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만나서 한 말은 뭐든지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가지 궁금증에 대해 31일 아침 9시가 지나서야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대표 비서실장 박정하 의원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동훈 대표 혼자 간 것으로 안다.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했는지는 모른다. 11시부터 1시간30분 정도 있었다. ‘당의 일은 대표가 책임지고 잘하면 되는 거다. 그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라’는 정도의 얘기를 한동훈 대표가 들었다고 했다.”
윤-한-비서실장, 셋이서 1시간30분
좀 더 상세한 내용은 1시간 뒤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에게서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실은 워낙 많은 기자가 출입하기 때문에 기자들이 공동 취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기자들을 대신해서 내부 취재를 한 뒤 익명을 전제로 브리핑하는 방식입니다. 이 경우는 취재원을 ‘대통령실 관계자’라고만 쓸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이런 방식을 ‘백 브리핑’이라고 합니다. 가끔 여러 언론에 ‘대통령실 관계자’발로 같은 내용이 보도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형식마저 금지되는 ‘딥백 브리핑’도 있습니다. 이런 취재 방식은 윤 대통령 이전 과거 대통령실에서도 있었습니다. 미국 백악관이나 국무부에도 비슷한 관행이 있습니다.
아무튼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대략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제 오전 11시부터 12시30분까지 1시간30분 동안 면담을 진행했다. 당초 두분 다 약속이 각각 있었지만, 점심 약속을 미루면서 면담 시간이 길어졌다.”
“대통령께서 두가지 정도 조언했다. ‘정치에서는 결국 자기 사람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서 한동훈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조직의 취약점을 강화해서 조직을 잘 이끌어 나가기를 바란다,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 대표는 ‘대통령님 걱정 없이 잘해내겠다’고 답변했다. 당직 개편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지만, 대통령께서 ‘당대표가 알아서 하시라’고 말씀하셨다. 일어나면서 대통령께서 ‘당 인선이 마무리되면, 당 지도부가 정비되면 관저로 초청할 테니 만찬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다음 모임을 기약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다.”
기자들의 궁금증은 역시 독대 여부와 채 상병 특검법에 쏠렸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보충 설명과 추가 내부 취재를 통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1시간30분 동안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엄격히 말해 독대는 없었다.” “해병대 특검법 이야기는 없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였습니다. ‘만나자는 요청은 어느 쪽에서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에서 한동훈 대표가 먼저 요청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결국 “독대는 없었고, 한 대표가 만나자고 해서 대통령이 만나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어간에 ‘냉기’가 배어 있습니다. 이번 만남을 두 사람의 관계 개선이나 신뢰 회복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윤 대통령이 한 대표와 독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평소 정치인들과 전화도 많이 하고 독대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김기현 전 대표는 2022년 11월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 대통령과 무려 3시간 동안 독대를 하며 전당대회 출마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유난히 야박하게 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비대위원장 시절부터 전당대회를 거치며 쌓인 감정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김건희 여사 논란에 대해 한동훈 위원장이 “국민 눈높이”를 말한 것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커 보입니다. 아니면 혹시 총선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오찬 제의를 한동훈 대표가 거절했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뒤끝 작렬’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분량 늘린 ‘7·23 전대 막장 드라마’
이 부분을 가장 예리하게 짚은 기사는 동아일보 8월1일치 신문에 김승련 논설위원이 쓴 ‘횡설수설’인 것 같습니다. ‘윤-한 90분 만났지만 독대는 없었다는데…’라는 제목입니다.
“독대인 듯 독대 아닌 90분 회동은 대통령과 한 대표가 아직은 준비가 덜 됐거나, 독대 후 터져 나올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부담스럽다는 뜻일 수도 있다. 윤-한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시각은 여전히 우세하다.”
실제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지난달 30일 회동 직후 친윤석열계 정점식 정책위의장 거취를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습니다. 정진석 비서실장이 30일 오후 한 대표를 다시 만나 정점식 의장 유임을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한 대표가 임명한 서범수 사무총장은 31일 정점식 의장을 포함해 당직자들에게 일괄 사퇴를 요구했습니다. 정점식 의장은 지난 1일 오전 최고위원회에 참석해 사퇴를 거부했습니다.
한 대표는 “우리 당이 변화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달라는 전당대회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거듭 압박했습니다. 정점식 의장은 결국 오후 5시가 조금 지나서 사퇴 의사를 밝혔습니다. 불쾌하다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한 대표는 2일 새 정책위의장에 4선의 김상훈 의원(대구 서)을 내정했습니다.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공식 임명할 수 있습니다. 지명직 최고위원도 곧 지명할 예정입니다. 최고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5명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채우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한 대표의 승리일까요?
그럴 리가요. 당내에는 여전히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반격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한 대표가 ‘대법원장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꺼내 든다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관계는 파탄으로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슬아슬해 보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막장 드라마’가 ‘윤-한 갈등 시즌 2’라는 제목으로 다시 방영되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어떤 내용으로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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