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도 부패도 결국은 美다 [아트총각의 신세계]
‘내가 경험한 짙은 초록’
죽음과 삶의 반복성 담아
미술작가의 전시회를 다루는 비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절.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과 다른 게 참 많았다. 특히 몇몇 작가가 주장하는 '죽음의 미학'을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죽음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엔 나이도,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일 거다.
사실 필자는 죽음을 극도로 불편하게 여겼다. 생명과학을 전공했지만,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누그러든 편이다. 죽음은 탄생의 과정만큼이나 예정된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서울 연희동에서 최근 개관한 디아 컨템포러리가 8월 24일까지 특별한 전시회를 연다. 서희수 작가의 초대 개인전 '내가 경험한 짙은 초록'이다. 이 전시를 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서 작가의 작품들이 죽음과 삶의 반복성을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을 잘 살펴보면 생명과 죽음이 '하나의 선'처럼 이어진다. 예컨대, 작품 속 숲과 늪지는 위험천만한 곳이지만, 동식물이 살고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이런 혼재성은 서 작가의 특성을 담고 있는 듯하다.
도예를 전공한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도예란 기법 위에 한지를 활용한 조형물과 회화를 얹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들은 전통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이고 또 복합적이다. 조형작품도 회화작품도 아니지만 모든 걸 담고 있다. 흔한 말로 '제대로 만든 융합예술작품'이다.
그럼 서 작가의 작품 중 하나인 '껍질의 시간'을 세밀하게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한지를 한겹 한겹 감싸듯 쌓아올리고 붙여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만든 듯하다.
실제로 종이 작품은 몰입의 산물이다. 티베트불교에 빗대면 만다라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 그도 마치 만다라를 제작하듯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의 외관만큼이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중시한다. 개념미술가 중에선 작품 자체보다 과정을 촬영한 필름이나 작업물을 남기는 이들도 있다. 서 작가도 그렇다. 이번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수행修行'으로 여겼다. 그런 노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껍질의 시간'이다.
'껍질의 시간'은 제주 숲 중에서 가장 척박하다는 '곶자왈 숲'의 소멸성과 자생력, 회복력을 고찰한다. 초록ㆍ주황ㆍ민트 등으로 그린 껍질은 자연의 생태적 순환을 때론 환하게 때론 어둡게 상징한다. 누군가의 눈엔 거친 그림쯤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서 작가가 의도한 것일지 모른다. "상처 입고 부패하고, 소멸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눈길이 간다(작가노트 중)."
서 작가가 작품에서 말하듯 숲은 생명이 순환하는 곳이다. 삶과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규칙이 작동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어쩌면 '지금의 끝이 끝이 아니다'는 간단한 진리를 말해주기도 한다. 삶에 지쳐서 활력을 얻길 원하는 이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김선곤 미술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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