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도시 청년이 산을 바꿨다…서울 출신 '산농사꾼'
두릅 등 재배작물로 과자도 개발…'꿈앗이 상영회' 지역 커뮤니티 소통도 활발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구례=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보다 산에서 제가 하고 싶은 작물을 재배하면서 훨씬 자유롭다고 느꼈어요."
귀농 7년 차인 문준호(37)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농업의 'ㄴ' 자도 모르고 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부모가 사는 전남 구례에 산이 있어 언젠가는 시골에서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퇴직을 앞둔 아버지의 권유로 그 시기가 당겨졌다.
서비스 직종에서 일했던 그는 경기도의 농업학교에 다니면서 비로소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느꼈다.
농사지을 땅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문씨는 수년간 학교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준비하고 2018년 11월 구례에 내려왔다.
첫해부터 지난해까지는 제빵·물류 공방과 된장 제조 농업 회사에 취직해 '산농사'와 회사 일을 병행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심었던 나무를 베어내고 새로운 작물을 심어서, 나무가 커 가는 동안 다른 소득원이 필요했다.
산농사는 사계절 내내 다양하게 이뤄진다.
고로쇠 물을 시작으로 3월부터는 고사리와 두릅을 준비하고 두릅이 끝나는 4월 말∼5월에는 엄나무 순을 재배한다.
엄나무 순이 끝날 때쯤 고사리를 마무리 수확하고 여름에는 구례·전북 남원·경남에서 많이 먹는 향신료인 초피(진피)나무 열매를 수확한다.
가을에는 꾸지뽕 수확에 나선다.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5만㎡(1만5천평) 임야는 원래 밤나무·매실나무·고사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들인 땀에 비해 소득이 적었고 나무도 너무 오래돼 아버지에게 작물을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자신의 경험과 토박이 농부 친척들의 조언을 들어 반대했지만, 이듬해 수확량을 보고는 아들의 선택을 따르기로 했다.
문씨는 "수요가 많은 작물 통계와 식생 환경을 분석해 덜 힘들고 수익성이 좋은 작물을 심고 싶었다"며 "두릅나무·엄나무·꾸지뽕나무를 심은 지 3∼4년 됐다"고 말했다.
아직 나무가 다 자라진 않았지만, 수확량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올해 초부터는 농업회사도 그만두고 농사일과 지역 사회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경사진 산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거나 손으로 몇시간씩 풀을 베면 물집이 잡히고 다치기도 하지만, 문씨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일을 설계하는 매력이 훨씬 크다고 꼽았다.
그는 1차 농산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가공식품 개발에도 도전했다.
청년 농업인 지원 사업에 선정돼 두릅과 비트 분말을 넣은 과자 '두릅더비트(드랍더빗)'와 꾸지뽕나무 젤리 스틱 '하루한뽕'을 개발해 과자 4만 봉을 완판하기도 했다.
7년간 구례에 살면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밤에 심심하다는 것이다.
문씨는 "도시에서도 바쁘게 살다 보면 친구들을 많이 못 만난다"며 "시골에 사람이 많이 없는 건 맞지만 요즘에는 소규모 주민단체가 활성화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올해부터는 임업인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하는 구례군임업후계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공개 채팅방 '구례꿈앗이'를 만들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돕고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다.
특정 단체에 소속돼 얽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이들도 많기 때문에 소위 '눈팅'만 해도 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역 내 지원사업·교육 정보를 나누고 홍보도 하면서 소소한 소통 행사도 연다.
올해 6월부터는 구례 주조장의 도움을 받아 영화상영회를 세 차례 열었고,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
별 사진 촬영 동아리와 막걸리 제조 동아리 등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며 연대하고 있다.
문씨는 할아버지 땅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귀농·귀촌인과 입장이 달라 조심스럽지만, 준비만 잘한다면 임업을 추천한다고 했다.
문씨는 4일 "요즘 농업은 스마트팜(지능형 농장)이 아니면 큰 수익을 내기 힘들고 논·밭은 땅값도 워낙 비싸 초기 자본이 많이 든다"며 "임업은 땅값이 훨씬 저렴하고 소비자들의 작물 선호도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공부를 잘했던 사람은 아니지만 관심 분야는 철저히 공부했다"며 "먼저 소도시나 시골에 내려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한 뒤 일하려는 분야를 결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문씨는 "정부에서 농어촌에 대해 여러 지원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환경"이라며 "지역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품앗이하며 생명력이 긴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바랐다.
areu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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