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늘구멍’ 세리머니… 여자 양궁 ‘3관왕’ 임시현 “이제 목표는 롱런… 우진 오빠 같은 선수 되고 싶어”
올림픽 금메달보다도 더 뚫기 힘들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1위로 뚫어낸 자에게 붙여지는 칭호. 에이스. 이는 허투루 붙는 게 아니었다. 여자 양궁 대표팀의 에이스 임시현이 개인전 4강과 결승에서 치러진 ‘집안 싸움’을 모두 이겨내며 개인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단체전, 혼성 단체전에 이은 또 한 번의 금메달. 에이스라는 무거운 왕관을 버틴 그에게는 ‘3관왕’이라는 더없는 영광이 함께 하게 됐다.
임시현은 3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앵발리드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대표팀 막내인 남수현(19·순천시청)을 7-3(29-29 29-26 30-27 29-30 28-26)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단일 대회 3관왕에 오른 것은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양궁의 안산(광주은행)에 이어 두 번째다. 2020 도쿄 대회 이전까진 여자 선수가 따낼 수 있는 금메달은 개인전과 단체전 2개에 불과했지만, 2020 도쿄에서 혼성 단체전이 신설됐다. 안산이 3년 전 도쿄에서 처음 3관왕에 오른 데 이어 임시현이 두 번째로 등극한 것이다. ‘여자 양궁 에이스=3관왕’이라는 공식이 생길 판이다.
임시현은 시상식을 마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은메달을 딴 남수현과 함께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섰다. 임시현은 “여자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에서는 결과에 집중했던 것 같다. 개인전은 과정에 집중해보고 싶어 조금 더 즐겁게 경기를 했다. 그런데 결과까지 이렇게 좋게 따라와줘서 너무 감사하고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 선수끼리의 연이은 대결에 부담스러울 법 했지만, 개인전의 모토를 ‘결과보다는 과정’으로 잡은 임시현은 맞대결을 즐겼다. 임시현은 “결승전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남)수현이랑 주먹을 맞부딪히며 올랐다”라면서 “4강과 결승에서 한국 선수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오히려 과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4강에서 (전)훈영 언니랑 붙었을 때도 누가 이겨도 한국 선수가 결승전에 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수현이랑 붙은 결승도 둘 다 메달을 이미 딴 것이니까 조금 더 재밌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임시현은 ‘롤모델’로 전날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김우진(32·청주시청)을 꼽았다. 현역 최고의 궁사로 꼽히는 김우진은 2010년 처음 국가대표에 선발된 뒤 2013년을 제외하면 매년 국가대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임시현은 “우진 오빠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 우진 오빠의 장점이 꾸준함이라 생각하는데, 그 위치에서 꾸준할 수 있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계속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우겠다”고 말했다.
양창훈 감독은 임시현의 강점 중 하나로 ‘예민하지 않은 것’이라고 꼽기도 했다. 양 감독은 “시현이가 예민하지 않으니 ‘져도 잃을 게 없다’라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걱정이 크게 없는 낙천적인 성격에 꼼꼼하기도 하다. 3관왕 자격이 충분하다”라고 치켜세웠다.
임시현은 파리에서 모든 일정을 마쳤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인 파리인 만큼 유명한 명소나 박물관 등을 가보고 싶을 법 하지만, 임시현의 첫 번째 버킷리스트는 잠, 그리고 휴식이었다. 임시현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하루에 많을 때는 600발씩 화살을 쐈어요. 이제 다 끝났으니 잠을 좀 자고 푹 쉬고 싶어요”라고 버킷리스트를 공개했다.
첫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따낸 임시현은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 1개를 따내면 전설적인 ‘신궁’인 김수녕(금메달 4개)과 동률을 이룰 수 있다. 2개를 따내면 김수녕을 넘어 역대 여자 양궁 최다 금메달 보유자가 된다. 하지만 임시현은 4년 뒤 미래를 아직 생각하고 싶지는 않단다. 임시현은 “다음 올림픽은 아직 4년이나 남았잖아요. 저는 지금, 현재를 조금 더 즐겨보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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