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때 수행평가로 접한 사격, 8년 뒤 양지인을 올림픽 챔피언으로 만들었다
남원의 하늘중학교 1학년이었던 지난 2016년, 한 소녀는 수행평가로 사격을 경험했다. 우연한 계기로 접한 사격은 그 소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수행평가를 위해 처음 총을 잡은 후 8년이 지났고, 그 소녀는 올림픽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태극기를 바라보며 애국가를 들을 수 있는 세계 최고의 ‘사수’로 성장했다. 사격 여자 25m 권총의 양지인(21·한국체대) 이야기다.
25m 권총은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만 치르는 종목으로, 본선은 완사와 급사 경기를 치른 뒤 점수를 합산해 상위 8명만 결선에 오른다. 양지인은 전날 열린 본선에서 완사와 급사 합계 586점으로 6위에 올라 결선행 티켓을 얻었다.
양지인은 첫 번째 시리즈에서 세 발을 맞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리즈 모두 10발을 모두 명중해 선두로 나섰다. 4번째 시리즈는 첫발을 3초 이내에 쏘지 못해 놓쳤으나 이후 4발은 모두 표적에 명중했다. 5시리즈에서 두 발을 놓친 양지인은 베로니카 마요르(헝가리)에게 1점 차로 추격을 허용했다.
이어 6시리즈에서는 4발에 적중했고, 마요르가 2발 적중에 그쳐 두 선수의 격차는 3점으로 벌어졌다. 대신 마누 바커(인도)가 2점 차로 간격을 유지하고 따라붙었다. 7시리즈를 마쳤을 때 양지인은 27점, 바커와 카밀 예드제예스키(프랑스)는 각각 26점으로 접전을 벌였다.
10시리즈에서 두 선수는 일제히 4발을 맞혀 37점 동점으로 금메달을 가리기 위한 슛오프에 들어갔다. 슛오프에서 양지인은 침착하게 4발을 맞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예드제예스키는 1발에 그쳐 은메달을 가져갔다.
사격 대표팀 내에서 기복없고, 대담하며 쿨한 성격으로 유명한 양지인에게도 생애 첫 올림픽 무대는 긴장되고 떨렸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믹스트존에 들어선 양지인은 “너무 긴장해서 경기장 나오는 데 속이 안 좋더라. 심장이 너무 떨려서 ‘이게 올림픽이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기복없고 대담한 성격은 슛오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양지인은 “슛오프 가서 엄청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그게 헛되지 않도록 했다”면서 “슛오프 도중에는 상대가 한 발씩 쏘는 결과가 저절로 눈이 가더라. ‘제발 한 발만 (놓쳐라)’ 이런 마음으로 경기를 봤다”고 말했다.
긴장감으로 짓눌리던 와중에도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 금메달을 목에 건 양지인은 시상식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듣고 모든 보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 (올림픽)에 태극기를 올려서 정말 기쁘다. 솔직히 부담 많이 됐는데, 태극기가 올라가니까 싹 씻겨 내려가더라”며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내서 행복하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금메달을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도 열심히 도전하겠다. 이곳이 저의 시작이라고 봐달라”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양지인은 이번 대회 사격이 파리가 아닌 샤토루에서 경기가 펼쳐진 게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파리를 즐기지 못해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양지인은 “샤토루에서 저만 행복하면됐다. 그래도 파리에 가면 예쁜 것도 사고, 구경도 하고 싶다. 그동안 열심히 훈련했으니까 조금은 내려놓고 둘러보고 올라가야겠다”며 웃었다.
파리=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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