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잇단 사망 사고'…보행자·탑승자 안전 위협하는 전동 킥보드
정부·지자체, 최고 제한속도 25㎞→20㎞로 낮춰 시범 운영
전문가 "탑승자 스스로 헬멧 등 안전 장비 반드시 갖춰야"
(전국종합=연합뉴스) 전동 킥보드를 타던 이용자가 사고로 숨지거나, 질주하는 전동 킥보드에 보행자가 치여 숨지는 등 관련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전동 킥보드의 최고 속도를 줄이거나 인증 절차를 강화하는 등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용객들의 무면허 운전이나 다인 탑승 등 사고를 유발하는 요인들을 원천 차단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용자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안전 장비 등을 제대로 갖출 것을 권유하면서도 위험 운전을 막을 시스템 개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헬멧 없이 도로·인도 종횡무진…도로 위 '시한폭탄'
전동 킥보드 사고가 사망사고로 이어지기 쉬운 이유는 별다른 안전장치도 없이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주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규정상 헬멧을 착용하게 돼 있지만, 휴대가 번거롭다거나 불법 여부를 몰라 안전 장비 없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4일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전동 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와 관련한 사고가 2천389건 발생해 24명이 숨졌다.
지난 5월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한 도로에선 친구 사이인 고교생 2명이 함께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달리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전동 킥보드 뒤에 타고 있던 1명이 숨졌다. 이들은 원동기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것은 물론 헬멧도 쓰지 않은 채 킥보드를 몰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달 28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의 한 교차로에서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가던 20대 남성이 시내버스와 부딪혀 숨졌다.
같은 달 20일에는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동의 한 도로에서 2명이 탄 킥보드와 버스가 충돌해 1명이 숨지기도 했다.
광주에서 발생한 두 사고 모두 이용자들은 헬멧 등 안전장치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11일 충북 옥천에서는 여중생 2명이 탄 전동 킥보드가 승용차와 부딪혀 1명이 숨졌고, 지난해 7월 울산 남구에서는 전동 킥보드를 몰던 대리운전 기사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전동 킥보드에 보행자가 치여 숨진 사고도 있었다.
지난 6월 8일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산책하던 60대 남편과 아내가 뒤에서 달려온 전동 킥보드에 치였다.
이들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아내는 사고 9일 만에 끝내 숨졌고 남편 역시 중상을 입어 아직 치료받고 있다.
이들을 충격한 전동 킥보드에는 고등학생 2명이 타고 있었으며, 공원 내 자전거 도로를 주행하다가 자전거를 피하는 과정에서 피해 부부를 들이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8월에는 경기도의 한 천변 자전거 도로에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던 30대가 마주 오던 60대를 치어 숨지게 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사고 막아라'…정부·지자체 대책 마련 안간힘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8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전동 킥보드 대여업체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현행법상 시속 25㎞인 개인형 이동장치 최고속도를 시속 20㎞로 제한하는 시범운영 사업을 하기로 했다.
시범운영은 총 10개 업체가 참여하며, 서울과 부산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올해 말까지 시행된다.
행안부는 운행속도 하향 시 정지거리는 26%, 충격량은 36% 감소한다는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분석 결과에 따라 이번 조치가 사고와 인명피해 감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자체들도 조례 개정 등을 통해 전동 킥보드 사고 예방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부터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개인형 이동장치의 최고 속도를 20㎞로 낮춰 시행하고 있다.
지난 1∼6월 대구에서 발생한 개인형 이동장치 관련 사고는 총 5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1건)보다 20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시는 최고 속도를 제한하면서 자연스럽게 사고 확률도 내려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천시도 관내 4개 전동 킥보드 운영업체와 협의해 지난 2월부터 최고 속도를 20㎞로 하향 조정했다. 또 미성년자들의 무면허 운행과 명의도용을 막기 위해 16세 미만 이용자에 대한 인증도 의무화했다.
세종시도 지난 3월부터 관련 업체와 논의해 최고 속도를 20㎞로 낮추고, 학교 정문 등 사고 위험이 큰 구역에 대해 개인형 이동장치 주차금지 구역을 설정했다.
울산시는 지난해 10월 전동 킥보드 이용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 조례를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용자는 안전모 착용, 승차정원 초과 탑승 금지 등을, 대여사업자는 안전 장비 보관함 설치·운영, 불법주정차 신속 조치, 이용자 안전교육, 보험 가입 및 보장범위 안내 등을 준수해야 한다.
경남도는 전동 킥보드 이용자에게 교통 안전용품을 보급하고, 통행량이 많은 지역에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는 전동 킥보드 업체에 안전모 비치를 강력히 권고하고, 경찰서에 교통법규 위반자에 대한 집중 단속 요청했다.
자리 못 잡는 '운전자 주의의무'…"헬멧 반드시 써야"
전동 킥보드의 최고 속도가 줄어들면 확률적으로 인명 사고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전동 킥보드로 인한 사고 자체가 근절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전동 킥보드 운전자의 주의 의무를 강화한 개정 도로교통법이 2021년 5월 시행된 이후 3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대다수 이용자가 헬멧 착용 의무를 모르고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화된 도로교통법은 헬멧 등 인명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전동 킥보드를 타면 2만원, 2명 이상이 같이 타면 4만원의 범칙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또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전동 킥보드를 운전하다 적발되면 부모나 보호자에게 과태료 10만원을 부과한다.
단속을 맡은 경찰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법 개정 이후 1년간 단속된 개인형 이동장치 규정 위반은 9만9천460건에 달했다.
이 중 안전모 미착용이 7만8천891건으로 가장 많았고, 무면허(9천597건), 음주운전(4천36건), 승차정원 위반(543건) 등이 뒤를 이었다.
관련 규정도 신설하고 단속 역시 계속 되고 있음에도 안전 불감증이든, 정보 부족에 의한 것이든 이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및 시스템 개선과 더불어 이용자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교통 전문 경찰관은 "전동 킥보드 사망 사고 중에선 다른 차량과 부딪히지 않고도 방지턱을 넘다 균형을 잃고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숨지는 경우도 많다"며 "안전 장비만 착용했더라도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헬멧 착용이 의무인 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헬멧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우 도로교통공단 안전교육부 교수는 "헬멧을 착용하지 않거나 2인 이상 탑승하는 경우 안전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면허 확인 시스템 고도화나 2인 이상 탑승 시 작동하지 않도록 하는 등 안전 기술 보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수환 장지현 정종호 김혜인 강태현 천경환 김동철 류성무 차근호 최재훈 신민재 권준우 기자)
st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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