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가성비 ②행복감 ③인류애...이 게임, 지금도 '요노족' 오픈런 부른다

장수현 2024. 8. 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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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출시 4년 넘게 꾸준한 인기 누려
과금 없는 콘텐츠로 높은 가성비
게임 속에서 '5대 욕구' 대리 충족
타인과 호혜성 키우는 현실 교류도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관람객들이 '모여봐요 동물의 숲'과의 컬래버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지난달 31일 오전 9시 30분, 개장 전인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쿠아리움 입구 앞에 100여 명이 늘어섰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학부모, 대학생, 연차를 낸 직장인까지 '오픈런(영업 시작 전 대기)'을 위해 모였다. 기다림에 지칠 때쯤 하나둘씩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한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이었다.

동물의 숲은 사용자가 자신만의 섬에서 동물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온라인 게임 시리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오랜 격리 생활에 지친 2030세대 위주로 유행을 탄 이 게임은 지금도 청년층에게 사랑받고 있다. △가성비가 높고 △행복감이 쉽게 충족되고 △호혜성 있는 현실 속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어서다. 이러한 요인이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겠다'는 요즘 세태와 맞물리며 모동숲은 또 하나의 오픈런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동물의 숲' 전시장 가보니...2030이 절반

매일 개장하는 아쿠아리움에 이날 이례적으로 긴 행렬이 생긴 건 모동숲과의 컬래버레이션 행사 때문이었다. 아쿠아리움은 지난달 29일부터 내부를 동물의 숲처럼 꾸며놓고 도장 이벤트, 포토존, 굿즈(기념품) 가게 등을 마련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아쿠아리움 앞에 입장 대기 줄이 서 있다. 장수현 기자
지난달 31일 X에 올라온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닌텐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컬래버 전시 후기. X 캡처

전시장을 돌아보니 20·30대 방문자가 절반에 가까웠다. 엑스(X), 네이버 블로그 등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날 오전 4시에 일어나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왔다는 공재원(20)씨는 "캐릭터 굿즈를 판다길래 큰마음먹고 서울까지 왔다"며 " '동물의숲'만의 아기자기한 감성을 좋아한다"고 했다. 취업 준비생인 서모(27)씨도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이 게임으로 힐링 중"이라며 "실사화된 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서 왔다"고 밝혔다.


발매 4년 지나도 꾸준한 인기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페이스북 캡처

동물의 숲 게임 시리즈의 최신 버전인 모동숲은 2020년 3월 출시 직후부터 큰 인기를 모았다. 발매 첫 6주 만에 전 세계적으로 1,300만 장이 팔렸다. 같은 해 9월 당시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동물의 숲 게임의 가상공간에서 선거운동을 벌일 정도였다.

게임은 4년 넘게 새 시리즈가 나오지 않은 현재까지도 여전히 인기다. 발매 10개월이 지난 2021년 1월 판매량 2,600만 장을 돌파했고 지난해 12월엔 4,500만 장에 달했다. '반짝 유행'이 아니라 꾸준히 팔렸다는 뜻이다. 한국 상황도 비슷하다. 국내 최대 콘솔게임 판매 업체 '한우리' 집계에 따르면 전체 콘솔 게임 중 모동숲의 판매 순위는 지난달 4주 차 6위, 3주 차 4위를 기록하는 등 올해 내내 10위 언저리를 유지하고 있다.

2020년 9월 당시 미국 민주당 대통령 부통령 후보였던 조 바이든(오른쪽)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X 캡처

어른들이 이 게임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① 높은 가성비다. 지속적인 과금을 유도하는 다른 게임들과 달리 약 6만5,000원짜리 게임팩만 사면 추가 구매 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닌텐도 기기 가격은 36만 원 정도지만, 중고거래가 활발해 10만 원대면 쉽게 산다. 김보리(20)씨는 "지난해 수험생활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해서 닌텐도 기기와 게임팩을 샀다"며 "당근마켓에 물건이 많아서 (정가보다) 훨씬 쌌다"고 했다. 최혜림(27)씨도 "엔딩이 없는 게임이라 몇 년을 해도 안 질려서 좋다"고 했다.

이는 고물가·고금리에 지친 2030의 소비 행태가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에서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요노'(YONO·You Only Need One)로 바뀐 상황과도 맞닿았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질 높은 소비 환경을 경험해온 청년 세대는 소득이 줄어도 임의재(사치재) 소비를 완전히 멈추진 못한다"며 "최대한 돈이 덜 들지만 만족감은 큰 취미를 찾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한 번 구매한 물품은 소유해야만 가치가 있다고 보는 세대와 달리 2030은 본인에게 사용성이 없어지면 언제든 (게임 기계 등을) 재판매하기에 총비용도 적게 든다"고 분석했다.


손쉬운 내 집 마련, 이곳에선 가능합니다

닌텐도 스위치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서 집 대출금을 다 갚은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② 팍팍한 현실과는 달리 동물의 숲에선 인간의 '5대 욕구'(생리적 욕구·안전의 욕구·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자아실현의 욕구)가 쉽게 채워진다는 장점도 있다. 독일 비아드리나유럽대 연구진은 2021년 12월 발표된 사례 연구에서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에 기반해 이 게임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바로보기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full/10.1002/hbe2.288 )

이 연구는 동물의 숲 게임 속에선 쉽게 돈을 벌고 내 집 마련을 하며(안전), 여러 이웃 주민들과 매일 소통한다(애정과 소속)고 짚는다. 각종 대회에 참가해 성과를 내고(자아실현), 물고기만 잡아도 동물 주민에게 박수를 받는다(존경)고 설명한다. 연구진은 "가상 세계에서 놀며 현실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확인했다""이는 비디오 게임에서의 긍정적 경험이 현실로 확장되는 현상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마지막으로 ③ 게임을 계기로 현실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동물의 숲에서 통신 기능을 이용하면 서로의 섬에 놀러가 함께 작업을 하거나 아이템을 교환하는 등의 활동이 가능하다. 31만여 명이 가입한 포털의 '동물의 숲 커뮤니티' 카페에는 매일 통신을 요청하는 글이 100건 이상씩 올라올 정도로 통신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사용자들은 '호혜성'을 동물의 숲만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민주(27)씨는 "다른 사용자와 경쟁하는 게임들과 다르게 여기선 모르는 사람과 자주 협력하다보니 인류애가 생기는 기분"이라고 했다. 백재은(47)씨는 "현실에선 직장생활에 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지만 동물의 숲에서 통신을 하면서 모르는 사람과 선물을 주고받곤 한다"며 "온라인이지만 친구를 사귄다는 만족감이 있다"고 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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