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 상품만 고객에게 추천했나… 금감원, 계열사 ETF 밀어주기 실태 점검키로
규제 없으니 계열사 상품 안 파는 게 이상
점검 나서는 금감원… 은행 조사 집중할 듯
법의 사각지대에서 계열사 간 상장지수펀드(ETF) 밀어주기가 성행한다는 지적에 금융감독원이 실태 점검에 착수하기로 했다. 우리 법은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고객을 상대로 계열 운용사의 펀드를 판매할 때 한도를 둔다. 한 회사의 부실이 계열 금융사로 전이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ETF는 창구 직원의 권유보다 투자자가 알아서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유로 한도 규제에서 빠졌다.
이런 환경에서 자산운용사 간 ETF 시장 점유율 경쟁이 날로 치열해졌고, ETF를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계열 판매사(은행·증권사)를 동원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판매 행태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점검에 나서는 것이다. 금감원은 특히 대형 판매사인 은행 점검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판매사들이 우회적으로 계열 자산운용사 ETF 판매를 돕고 있는지 파악하고자 현장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이번 조사는 본지 보도(관련 기사☞[ETF의 숨은 조력자]③ “고객님 저희 계열사 상품 좀 보세요”… 규제 빈틈 노린 은행 영업)에 이어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당시 강 의원은 자산운용사들이 ETF 순자산총액(AUM)을 키우는 과정에 ‘숨은 조력자’가 있어 종합적인 점검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ETF 시장이 커지면서 당국이 예측 못 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데에 공감한다”며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검사하겠다”고 했다. 이번에 금감원이 검사에 나선다는 건 내부 검토 결과 점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의미다.
자본시장법은 판매사의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에 제한을 두고 있다. 과거 자금난에 빠진 동양그룹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가 계열 금융사인 동양증권 등을 통해 팔리면서 피해자 4만2000명과 피해액 1조7000억원을 낳자 금융당국이 법으로 계열사의 펀드 판매 한도를 정한 것이다. 2013년 연간 신규 판매액의 절반 수준인 50%를 시작으로 2022년에 25%까지 낮췄다.
ETF는 이 한도 규제에서 제외됐다. 어떤 공모펀드와 ETF의 구성 종목이 흡사하더라도 공모펀드는 판매 한도가 있는 반면 ETF는 없다는 의미다. 당시 금융당국은 제도를 설계하면서 ETF가 주식처럼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이고, 창구 직원의 추천보다 본인 판단하에 직접 매수하는 게 일반적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봤다. 공모펀드와 달리 ETF로는 계열 자산운용사를 몰아줄 여력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금융사들은 이 빈틈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계열사 펀드 판매에 잡히지 않는 ETF를 팔기 시작했다. 창구를 찾은 고객에게 계열 운용사의 ETF를 추천하는 식이었다. 실제로 지난달 기자가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KB국민은행 지점을 찾아 “ETF를 사고 싶다”고 말하자 은행원은 KB자산운용 상품을 추천했다. 업계에선 은행에서 팔린 ETF 규모를 1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ETF AUM을 고려하면 16조원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은행에서 팔리는 ETF만이라도 계열사 펀드 판매 한도 규제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증권사와 달리 은행은 ETF를 판매할 때 ‘신탁’이라는 포장지로 싸서 팔아, 신탁 계좌에 담긴 ETF에 대해선 이것만 콕 집어 핀셋처럼 규제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금감원도 은행 점검에 집중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과 비교해 증권사는 계열사 밀어주기를 할 여지가 적다는 판단에서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고객 수가 압도적으로 적고, 창구 방문 고객이 ETF 추천을 요청해도 상품만 구두로 추천하고 고객이 직접 매수하는 게 대부분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이번 조사를 계기로 금융당국이 판매사의 계열 운용사 펀드 판매 제한 범위에 ETF를 포함할지 주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의 ETF 경쟁 과열은 인지하고 있다”며 “판매 과정에서 선을 넘는 부분이 있는지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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