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 왜 쿠팡이 되지 못했나[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⑦]
티몬-위메프-쿠팡, 고객 확보 위해 경쟁 치열
2014년부터 전략 달라져
쿠팡, 직매입 모델 '롯켓배송' 도입하며 사업 변화
티몬·위메프 수익성 개선 위해 물류 사업 축소
최저가 경쟁으로 돌아가며 '낭비 없는 성장'이라 강조
[커버스토리: 티메프 사태, 이커머스 포비아]
2010년 3개의 신생 유통 플랫폼이 시장에 등장했다. ‘소셜커머스’라는 새로운 전자상거래 모델을 내세운 쿠팡, 위메프, 티몬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 업체는 모두 ‘온라인 최저가 쇼핑몰’을 표방하며 시장에 진입했다. 경쟁은 치열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최저가 서비스는 출혈경쟁을 피할 수 없었고 이는 적자 구조를 낳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소셜커머스 3사의 사업 모델이 지속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는 “3사가 모두 망하거나 승자독식 체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때마다 각사는 자사가 승기를 잡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2024년 치열했던 3사의 경쟁 스토리는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쿠팡은 지난해 역사적인 흑자전환에 성공한 반면 티몬과 위메프는 유통업계 전반에 ‘도미노’ 위기를 퍼뜨리며 도산 위기에 처했다. 쿠팡과 티몬, 위메프. 3사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장면은 무엇이었나.
#. 2014년의 장면
경제적 해자 가른 ‘물류 전략’
“모든 고객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했고 7월 30일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습니다. 채권자 피해를 보상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가 고개를 숙였다. 양사는 최근 정산 및 환불 지연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자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티메프는 판매자들에게 물품 대금 최대 1조원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티메프의 위기는 예견된 스토리였다. 2010년 소셜커머스 3사가 출범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자본잠식 위기론’이 제기됐다. 소셜커머스는 파격적인 할인으로 공동 구매자를 모아 거래를 성사시키는 서비스였다. 2008년 미국의 그루폰이란 업체의 성공을 시작으로 우후죽순 유사 서비스가 등장했다. 2010년 2월 티몬이, 같은 해 5월에 위메프, 8월 쿠팡이 탄생했다. 혜성같이 등장한 3사는 출혈경쟁 서비스로 성장을 유지했다. 최저가 경쟁인 탓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매일같이 우려의 시선이 나왔다. 그때마다 업체는 ‘계획된 적자’라며 흑자전환을 호언장담했다.
비슷한 서비스와 전략으로 겨누던 3사의 갈림길은 2014년 시작됐다. 그해 쿠팡은 직매입 모델인 ‘로켓배송’으로 사업 모델을 전환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티몬과 위메프가 쿠팡의 우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할 때였다. 쿠팡으로선 한 방의 승부가 필요했다. 김범석 쿠팡 의장이 선택한 ‘물류 직접 제공 전략’은 세계적 유통기업 아마존의 성공방정식이었다. 공공연하게 소셜커머스와는 거리를 두며 “제2의 아마존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던 그다.
이 전략은 물류 센터의 구축이 필요하기에 상당한 규모의 설비 투자가 필요한 일이었다. 유통 공룡 아마존도 1994년 창업 후 2002년 첫 흑자까지 8년이 걸렸다. 모 아니면 도였다. 아마존처럼 성공할 수도 있지만 고정비 증가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도산할 가능성도 있었다.
화력을 불어넣은 건 막대한 자금투자였다. 쿠팡의 가능성을 본 미국 투자사 세콰이어캐피털, 블랙록에 이어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가 무려 1조1000억원을 투자했다. 쿠팡은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다. 2013년 약 93억원에 불과했던 쿠팡의 유형자산은 2014년 591억원까지 증가했고 2018년 4000억원까지 늘었다. 유형자산 규모가 커졌단 건 그만큼 적극적인 인프라 투자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반면 티몬의 유형자산은 2014년 52억원, 2018년 13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위메프도 2014년 67억원, 2018년 144억원이었다. 2014년부터 쿠팡과 티몬, 위메프의 사업전략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한 셈이다.
#. 2018년의 장면
성장 vs 수익성, CEO의 선택
쿠팡이 손정의 등 큰손의 도움으로 천문학적 투자를 지속할 때 티몬과 위메프는 사업전략을 틀어야만 했다. 양사 모두 쿠팡을 따라 배송 경쟁에 동참했지만 투자유치 없이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안정과 성장의 갈림길에서 티메프는 ‘수익성’을 선택했다. 손정의 같은 큰손도 없었지만 김범석처럼 중장기 전략으로 결단을 내릴 CEO도 부재한 탓이 컸다.
티몬은 2015년 창업자 신현성 전 대표의 지분을 사모펀드에 넘기면서 대주주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염두에 둬야 했고, 위메프도 2013년 창업자 허민 전 대표가 경영에서 손을 떼고 나서부턴 외형 확대보단 수익성 회복이 급선무였다.
양사 모두 밑 빠진 독인 물류사업을 접고 최저가 경쟁에 다시 돌입했다. 오픈마켓 운영으로 곳간 채우기에 나선 것이다. 위메프는 2018년 신선식품을 익일배송하는 서비스를 중단했고 직매입 서비스도 축소했다. 대신 업계 최저가 제품 공급으로 전략을 틀었다. 당시 위메프의 대표는 “낭비 없는 성장”이란 표현을 썼다.
티몬도 전략을 수정했다. 2018년 매출이 5000억원에 육박한 시점에 티몬 대주주가 돌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선회하면서 물류 서비스를 중단하며 배송전쟁에서 발을 뺐다. 대신에 시간마다 다양한 특가상품을 제공하는 ‘타임 커머스’ 서비스를 도입했다. 특가 서비스로 연간흑자에 도전하고 기업공개(IPO)를 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였다.
허리띠를 졸라맨 양사의 수익은 좋았다. 2020년 위메프의 영업손실은 5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9%나 개선됐다. 티몬도 2020년 3월 처음으로 월간 흑자를 냈다. 출범 10년 만의 성과이자 소셜 3사 출신 유통사 중에서도 최초의 흑자 기록이었다.
‘치킨게임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티메프의 전략 선회는 당시 업계에선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오히려 영업손실을 확대하는 쿠팡의 전략에 의구심이 증폭될 때였다. 2015년 5000억원대 수준이던 적자는 2018년 1조원을 돌파했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란 표현으로 시장을 설득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아마존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쿠팡이 언젠가 망할 것”이란 회의적 시각은 짙어지기만 했다.
상황이 180도 바뀐 건 2019년 쿠팡이 이커머스 업체 중 처음으로 매출 7조원을 돌파하고 영업손실을 7200억원까지 줄이며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였을 때부터다. 장기간의 투자가 드디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의 성장 규모가 쪼그라든 것은 물론이었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존재감도 옅어지기 시작했다.
임희석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쿠팡이 택한 직매입 전략은 어마어마한 설비투자를 요구하지만 1위 사업자가 된다면 규모의 경제를 발생시키면서 후발주자를 따돌리는 데 쉬운 일이기도 했다”며 “물류센터 투자로 초반 적자가 거대했지만 1위 사업자가 된 뒤에는 그만한 투자 규모로 경쟁을 걸어오는 곳이 사라졌기에 가격에 대한 결정력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그는 “티메프는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전략을 고수했으나 말 그대로 마켓을 여는 것은 특별한 ‘경제적 해자’를 가진다고 볼 순 없었다”며 “전자상거래 시장 자체가 고성장하던 2010~2020년까지는 시장 규모가 급속히 커지면서 오는 낙수효과를 일정 부분 누릴 수 있었으나 전자상거래 시장이 10%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는 성숙 시장으로 가면서 그것조차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 2022년의 장면
쉬운 M&A에 도사린 독
‘규모의 경제’는 2021년 쿠팡이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더 큰 격차로 벌어졌다. 그해 3월 12일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데뷔 첫 날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기록해 국내 상장사 중 삼성전자(당시 시총 489조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몸값을 기록했다. 쿠팡이 100조원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보다 더 공격적 투자에 나설 때 2010년 소셜커머스 3사로 불렸던 티몬과 위메프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 누구도 3사를 경쟁사로 부르지 않았다. IPO를 추진하던 티몬은 상장 계획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접어야만 했다. 2020년 매출액 13조원을 달성한 쿠팡과 달리 티몬은 151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8년까지만 해도 엇비슷했던 총거래액(GMV) 규모도 현저하게 차이가 났다. 티몬의 몸값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대주주인 사모펀드의 투자 회수에도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었다.
한때 1조원대 이상의 기업가치를 올렸던 티몬의 몸값은 2022년 5800억대에서 2000억대까지 내려왔다. 실사에 참여했던 회사들이 발을 빼며 해외 직구 업체인 ‘큐텐’이 단독 협상자가 됐고 패를 쥔 큐텐에서 기업가치를 대폭 깎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주주들도 매각 가격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지만 티몬이 10년째 완전자본잠식 상태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티몬 경영권을 매각할 의지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해 9월 티몬 투자사로부터 큐텐이 티몬 지분 100%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주주인 사모펀드들이 보유한 티몬 지분 100%와 큐텐의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의 지분을 교환하는 형태였다. 사모펀드들은 티몬 지분을 큐텐에 전달하고 큐익스프레스가 발행한 신주를 받기로 했다. 큐익스프레스는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양사 모두 비상장사, 인수 금액 규모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듬해 4월엔 자본잠식 상태의 위메프가 큐텐의 품에 안겼다. 티몬과 동일한 방식이었다. 큐텐은 위메프의 최대주주인 원더홀딩스가 보유한 위메프의 지분 전량(86.2%)을 인수하고 위메프 경영권을 갖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원더홀딩스 지분을 100% 보유했던 위메프의 창업주 허민 전 대표가 위메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이 역시 인수 금액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티몬과 위메프, 즉 티메프를 품에 안은 큐텐은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서 무리한 프로모션을 이어나갔다. 특별한 전략은 없었다. 소셜커머스의 2010년 생존 방정식 그대로 출혈 마케팅이었다. 해피머니, 컬쳐랜드 등 온라인상품권도 할인판매했다. 만성적자 기업이지만 적자 폭을 줄여나가던 위메프는 큐텐 품 안에서 적자 폭을 더욱 확대한 반면 매출은 감소했다. 최악의 성적표였다. 티몬은 재무제표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티메프 모두 월간이용자수가 급감하고 있었다. 업계에선 큐텐 인수 후 티메프의 경쟁력이 상실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큐텐 측의 별도 조치는 없었다. 이 무렵 큐텐이 나스닥 상장에 시동을 건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업가치를 높여야 상장에 유리했다. 큐텐이 국내 시장에서 티몬, 인터파크커머스, 위메프를 잇달아 인수한 것도 나스닥 상장을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대주주의 엑시트를 위해선 기업가치 상승이 필요했고 전략은 단기간의 무리한 프로모션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임희석 애널리스트는 “티메프는 엑시트를 위한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서라도 무리한 프로모션을 진행해 GMV 성장률을 최소한 방어하는 전략을 택했다”며 “(이러한 전략으로) 적자 확대는 지속됨에 따라 정산주기가 길어지고 결국 이번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한때는 혁신의 상징이었는데…
신현성(티몬), 허민(위메프), 김범석(쿠팡).
2010년 소셜커머스 3사를 출범시킨 3인의 CEO는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통했다. 미국의 그루폰이 성공한 뒤 한국에선 제2의 그루폰을 노리는 소셜커머스 업체가 1000여 개까지 늘었다. 그중 살아남은 건 소셜커머스 3사를 이끈 이 3인방이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건 신현성 전 대표였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한 신 전 대표는 이른바 ‘명문가 자제’였지만 국내에는 네트워크가 전무한 청년 재미교포였다. 그런 그가 대학 동기들과 함께 3개사 중 가장 처음으로 소셜커머스 서비스를 선보였다. 신 전 대표는 2015~2017년에도 ‘업계 최초 서비스’를 연달아 내놓으면서 “지금의 이커머스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현재 업계 전반에서 쓰이는 ‘라이브 커머스’의 전신도 2017년 티몬에서 나왔을 정도다.
이러한 티몬이 고꾸라진 건 대주주의 빈번한 교체였다. 사업 초기부터 리빙소셜과 그루폰으로 두 차례 주인이 바뀌며 풍파를 겪었다. 2015년 신 전 대표가 사모펀드와 함께 경영권을 되찾았지만 이때부터는 사실상 사모펀드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 최초의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고도 수익성을 우선하는 대주주 때문에 전략을 수정해야만 했다. 쿠팡이 한창 투자 규모를 늘리며 치고 나갈 때 티몬은 CEO를 4번이나 갈아치우면서 방향성을 잃고 표류했다.
신 전 대표는 2017년 CEO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직을 맡았다. 그러곤 블록체인에 눈을 돌린다. 이때 만난 게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이다. 두 사람은 테라폼랩스를 공동으로 창업해 블록체인 업계에 발을 들였다. 신 전 대표는 현재 ‘테라·루나’ 사태 관련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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