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 먹을지도] ① 한치물회로 무더위 싹? "잡혀야 먹지"
어민·업주 "바다가 이상하다"…원인은 오리무중
[※ 편집자 주 =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를 느끼는 데는 둔감합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왔습니다. 어릴 적 식탁에서 흔히 보이던 단골 국과 반찬이 어느새 귀한 먹거리가 됐습니다.밥상에 찾아온 변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기사를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에서 여름철 꼭 먹어야 할 음식을 꼽자면 단연 '물회'다.
다른 지역 물회에 들어가는 고추장 대신 된장을 살살 푼 냉국에 식초를 넣어 시큼함을 더하고, 잘게 다진 초피나무잎으로 톡 쏘는 맛을 가미한 물회 한 사발이면 한여름 무더위가 절로 가신다.
이맘때면 자리물회에 들어가는 자리돔은 뼈가 억세져 6∼9월 제철을 맞은 한치물회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하지만 해가 더할수록 '제철 한치물회' 먹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돼 가고 있다.
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한치철을 맞은 지난 6월 제주지역 한치(활어·선어) 어획량은 55t으로 전년 동기 93t과 비교해 40.9%(38t) 감소했다.
최근 5년간 제주지역 6월 한치 어획량은 2020년 81t, 2021년 215t, 2022년 103t, 2023년 93t, 2024년 55t으로 감소 추세다.
반면 2020년 이전만 해도 10t 내외 수준이었던 5월 한치 어획량은 2021년부터 31t으로 껑충 뛰더니 올해는 47t이나 됐다.
수산 관계자들은 수온이 높아지면서 난류성 어종인 한치 어획 시기가 앞당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여름이 한창인 요즘 수요는 많지만 공급이 감소하면서 한치는 그야말로 '귀족 식재료'가 됐다.
한치물회를 먹기 위해 찾은 제주시 연동 'ㅅ' 음식점 사장 김모(53)씨는 6∼7월 내내 한치물회를 주문하는 손님에게 "없다"고 말하는 게 일이었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날씨가 더워지면서 한치물회를 찾는 손님이 많은데 6월은 한치 가격이 비싸 도저히 팔 수가 없었고, 7월 들어서는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7년간 물회를 팔아오면서 이렇게까지 한치가 없어 못 판 적은 올해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여름철만 되면 물회를 찾는 손님이 줄을 서는 제주시 연동 'ㅎ' 향토 음식전문점도 사정은 같아 올해 들어서는 활한치 대신 작년에 구해 얼려 놓은 냉동 한치로만 물회를 팔고 있다.
활 한치물회와 냉동 한치물회는 식감에 차이가 많이 난다.
제철 활어회 전문점인 제주시 도남동 'ㄷ' 회센터 업주는 "한치 철에 하루 100∼150㎏ 잡혔던 것이 최근에는 20∼30㎏만 겨우 잡힌다"며 "30년 넘게 한치를 전문으로 팔다 보니 거래처로부터 한치를 먼저 받고는 있지만 비쌀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치가 난류성 어종이지만 너무 뜨거워도 죽어버린다"며 "요새는 시원한 물을 찾아가는지 거제나 부산에서 한치가 더 많이 잡힌다. 언젠가는 북한 앞바다에서 한치가 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직접 조업하는 어민도 한치를 구경하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라고 입을 모았다.
한치잡이를 하는 조모(63)씨는 "제철이 6∼9월로 알려진 것과 달리 몇년 전 부터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잡히고 있다"며 "올해는 5월과 6월 조업량이 비슷했다. 한치 철이 따로 없이 그냥 한치가 나오는 때가 제철이 됐다"고 말했다.
제주시 이호동에서 체험 낚싯배를 운영하는 선장 박모씨는 "수온이 25도까지 오르면 한치 조업 환경이 조성됐다고 판단하는데 올해는 빗나갔다"며 "4월 말부터 나기 시작한 한치가 6월 들어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더니 지난달 중순부터야 다시 조금씩 잡히고 있다. 다만 이마저도 10마리 중 8마리는 오징어"라고 말했다.
그는 "한치를 낚을 때는 군집을 깨지 않도록 주변 낚싯배와 조업 수심을 공유한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그 수심이 낚싯배마다 20m에서 50m까지 중구난방에다 차이도 커 조업 성공률도 크게 낮아졌다. 바닷속이 뭔가 이상하다"고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수산 관계자들은 "바다가 이상하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지만 한치가 자취를 감춘 뚜렷한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김중진 연구사는 "제주 연안과 근해 표층 수온이 최근 여름철 수온과 비교했을 때 아주 특징적으로 뜨거운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환경적 특이점으로 인해 조업이 안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대표 식재료인 '갈치' 또한 뜨거워지는 바다로 조업이 예전같지 않다.
갈치는 남획으로 한때 자원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고, 한일어업협정 불발로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하면서 식탁에서 멀어졌다.
그랬던 갈치가 수온 상승 영향으로 2017년 20년 만에 대풍을 맞는 등 또다시 제주 해역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8년간 이어진 풍어의 기쁨도 잠시 난류성 어종인 갈치도 뜨거워진 바다로 또다시 식탁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갈치 어획량은 5천636t으로 전년 동기(8천476t) 대비 33.5%나 감소했다.
2021년∼2023년 상반기 누계 평균 7천654t과 비교해도 26.4% 줄어든 수치다.
그마저도 잡힌 갈치 대부분은 폭이 손가락 2.5개 안팎 너비로 씨알 굵은 대갈치는 드물게 잡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지난 4월과 5월 서해 중남부 해역 수온이 평년보다 높게 형성되면서 서해 중남부 해역에서 제주 해역으로 남하하는 갈치 어군이 분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 4월과 5월 서해 남부 해역 표층 수온은 평년(최근 5년간 평균)보다 0.5∼2도 높은 10~13도와 13~15도를 각각 기록했다.
지난 55년간(1968∼2022년) 한국 해역 연평균 표층 수온이 약 1.36도 상승한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변화다.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관계자는 "갑작스럽게 수온이 크게 오르면서 어군이 분산됐고, 이에 따라 갈치를 많이 어획하는 제주 북동부 해역 자원 밀도가 낮아졌다"며 "올해 초 조업이 부진해 전체 생산량이 줄었지만, 하반기부터는 평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어장이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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