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낮으면 매력도 낮을 수밖에…‘한화 에너지’ 공개 매수에 시장 냉담한 이유는?[박상영의 기업본색]

박상영 기자 2024. 8. 4.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 제공.
※대한민국보다 대한민국 기업이 더 유명한 세상입니다. 어느새 수 십조원을 굴리고 수 만명을 고용하는 거대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밖에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박상영의 ‘기업본색’은 기업의 딱딱한 보도자료 속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공시자료의 수많은 숫자 안에 가려진 진실을 추적하는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시면 로그인 해주세요!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율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것인지 의문점이 남는다.” 최근 한 증권사는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 공개매수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한화에너지의 지분 매입이 회사 측이 내세운 ‘책임 경영 강화’에 부합하는지 지적한 것이다.

시장 반응도 냉담했다. 지난달 5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된 공개매수에서 실제 매수는 총 389만9000주(지분 5.20%)로, 목표 수량인 600만주(지분 8.0%)의 65% 수준에 그쳤다. 한화는 “당초 목표한 600만주에는 미달했지만 한화그룹 전반의 지배구조 안정성 확보 등 측면에서 유의미한 수량을 매수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헐값에 공개매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회사 측은 당시 주가보다 값을 더 매겨 매입에 나섰는데, 왜 이같은 평가가 나오게 된 걸까.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사들인 배경은

㈜한화는 그룹 내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로, 22.65%의 지분을 보유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최대 주주다. 반면 김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과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은 모두 합쳐 지분이 9.19%에 불과하다. ㈜한화가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만큼 세 아들로서는 추가 지분 매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때 등장한 회사가 한화에너지다. 세 아들이 지분 100%를 소유한 한화에너지를 통해 ㈜한화의 지분을 매입하면 개인이 직접 지분을 매입하는 것보다 비용도 아끼고, 기간도 줄일 수 있다.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 8.0%를 매입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800억원이다. 개인이 조달했다면 큰 금액이지만, 최근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화에너지 입장에서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올 1분기 말 기준 한화에너지 산하 계열사 전체 자산총액은 13조2500억원으로, ㈜한화 별도 자산총액(11조1300억원)을 웃돌았다. 한화에너지가 2007년 한화솔루션으로부터 분할 설립된 점을 고려하면 단기간 내 급성장했다.

한화에너지는 이미 ㈜한화의 지분 9.70%를 보유했다. 만약 계획대로 공개매수가 이뤄졌다면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은 17.70%로 뛰었다. 김 회장 등 총수 일가 측 지분까지 포함하면 50%를 웃돌 것으로 예상됐다. 공개매수 물량이 예상을 밑돌긴 했지만 절반에 가까운 우호지분을 확보했고, 늘어난 지분만큼 한화에너지를 통해 총수 일가가 가져가는 배당액은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공개매수가 그룹 승계의 밑작업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 ?????????.jpg
한화에너지 공개매수는 왜 실패했나

공개매수는 주식의 매입을 희망하는 측이 매입 기간, 수량, 가격을 공표해 증권시장 밖에서 공개적으로 매수하는 방법을 말한다.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공개적으로 매입한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한화에너지가 공개 매수가로 3만원을 제시했을 때부터 시장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싸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화에너지 측의 공개매수 단가는 1개월 평균가 대비 12.92% 프리미엄을 더하는 방식으로 산정됐다. 락앤락, 현대홈쇼핑, 쌍용C&E 등 최근 이뤄진 공개매수 단가가 1개월 평균가 대비 20∼30%가량 높은 수준에서 정해졌다는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지난 3월 2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R&D 캠퍼스를 방문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가운데)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화그룹 제공.

㈜한화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지나치게 낮은 점도 이같은 비판을 부추긴다. PBR은 대표적인 기업가치 지표로, 보통 1배를 밑돌면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장부가로 죄다 팔았을 때 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더 낮다는 의미다. ㈜한화는 PBR이 0.28배 내외 수준에 불과하다. 한화솔루션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생명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렸음에도 기업가치는 현저히 낮은 셈이다. 배당 수익률을 포함한 ㈜한화 총주주수익률은 최근 5년간 1%로 은행 금리보다도 낮다.

적극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함에도 회사 측이 기대보다 저가로 공개 매수에 나선 것이 주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한화그룹 3형제 개인 회사인 한화에너지가 공개매수 이유로 책임경영 강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제시했지만, 장기간 극히 낮은 주가로 피해를 입은 ㈜한화 일반주주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화에너지의 다음 선택은

그룹의 차기 총수로 유력한 김 부회장이 보유한 ㈜한화 지분은 4.91%다. 김 부회장이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지분 5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와 ㈜한화의 합병으로, 합병 비율에 따라 ㈜한화 지분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비상장사인 한화에너지와 저평가 상장사로 꼽히는 ㈜한화의 합병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에 유리하게 합병 비율이 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한화에너지는 내부거래 비중이 커 그룹 차원에서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화에너지 매출액(7870억2000만원) 중 계열사 매출액(2509억8000만원) 비중은 31.9%에 달한다. 한화에너지는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 대상인 만큼 이런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회사에도 부담이다. 이례적으로 비상장인데도 2020년 사외이사제와 부당지원 우려가 있는 거래 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내부거래위원회를 신설한 이유도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합병 대신 한화에너지는 ㈜한화 주식 공개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올 1분기 말 연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9300억원 수준일 정도로 한화에너지는 자금력도 갖췄다. 김 회장이 지분을 자녀에게 직접 증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자녀들이 증여세를 부담해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한화에너지가 ㈜한화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총수 일가에는 유리하다. 그러나 시장 기대보다 낮은 공개 매수가격을 제시한다면 또 다시 흥행에 실패할 수 있다. 한화에너지가 공개매수 목적으로 내건 ‘책임 경영 강화’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