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싱크탱크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 확보 위해 핵무기고 확대해야"
중국과 러시아의 핵 위협이 점차 커지면서 강대국간 전쟁을 피하고 신뢰할 만한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핵 전력을 대폭 증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싱크탱크 해리티지 재단은 지난달 30일 발표한 '차기 미국 행정부를 위한 핵 태세 검토:21세기 핵무기고 구축' 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핵 위협이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훼손한다면서 "강대국간 전쟁을 피하기 위해 차기 미국 정부는 새로운 핵무기고를 건설하고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의 '핵무기 없는 세상' 만들기 시도가 실패했다면서 그 결과 지난 10년간 글로벌 안보 환경이 크게 악화됐다고 평가한다. 2009년 4월 오바마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후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및 핵안보정상회담, 양자 및 다자회담 등을 통해 핵무기 통제와 군축을 시도했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오히려 안보 현실은 이러한 노력과 정반대로 흘러왔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우크라이나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을 향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고 있고, 중국은 매년 수십개의 핵탄두를 제조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핵강국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전략핵탄두는 1500여 개로 미국과 동일한 수준이지만 비전략핵무기에 있어서 미국의 150개에 비해 10배가 넘는 2200여 개를 배치하고 있다. 이외에도 유럽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과 초음속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으며 다량의 생화학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러시아의 핵 우위가 서방에 중대한 도전이라면서 "2년이 넘는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 영토를 확보하려는 러시아의 노력은 전장에서의 패배를 막고 향후 NATO 국가들을 강압하기 위해 핵무기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5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는 1000개 이상의 작전용 핵탄두를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초음속 미사일과 핵폭격기, 일본과 괌, 호주까지 타격 가능한 순항 및 탄도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다. 보고서는 "중국은 명목상 핵 선제 사용 금지 원칙을 유지해 왔지만 최근 중국 지도자들의 성명과 변화된 핵태세는 위기 시 핵무기를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북한과 이란의 핵 위협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상당한 수준의 강력한 탄도 및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20년간 꾸준히 핵무기 능력을 제고시켰다.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사관 추방과 이란 핵시설에서 발견된 고농축 우라늄의 미량 입자 등은 핵무기 확보에 머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핵 위협에 대응하는 미국의 핵전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탄도미사일 잠수함(SLBM), 전략폭격기와 비전략핵무기 등 3가지로 구성된다. 그러나 미국의 핵전력은 대부분 노후화 됐다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동안 수명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핵전력을 유지했으며 새로운 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못했고 의미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려면 10년 후에야 가능하다. 2010년에야 핵 현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현재보다 훨씬 온건하고 안정적인 안보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됐고 그마저도 대부분 비용 초과와 일정 지연을 겪고 있다.
보고서는 2010년 도입된 이러한 핵 현대화 프로그램이 충분하지 않다면서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가 보유한 것만큼 핵무기를 배치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주요 동맹국에 대한 전략적 공격이나 침략을 저지할 만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 21세기의 핵무기고를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미국이 2030년대까지 신뢰할 만한 핵 억지력을 배치하지 못한다면 중국은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도달하고 현재 미국의 핵전력은 고령화될 것이다. 대담해진 적대 세력들은 미국에 맞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며 1945년 이래 처음으로 핵무기를 사용하게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따라서 보고서는 적대 세력의 핵 우위를 억지하고 위협을 상쇄하기 위해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전략적 억지력을 유지하려면 훨씬 대규모의 핵전력과 다양한 비전략핵무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은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과 협력해 악화되는 안보 환경을 안정화하기 위해 비전략 핵무기를 전방 배치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핵위협에 대응해 동맹국 내의 핵무기를 다양화하며, 아시아에서는 한반도 등지에 핵무기 저장시설을 재개하고 비전략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논의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아울러 보고서는 미국의 충분한 억지력이 없다면 중국과 러시아 등 핵위협 국가들은 점점 더 대담해 질것이며 이웃과 동맹국을 향해 핵 강압에 나설 것이라며 "신뢰할 수 있는 핵 억지력은 저렴하지 않지만 핵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핵 프로그램의 목표는 그러한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며 이를 위해 미국은 다음 반세기 동안 새로운 핵무기고를 건설하고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상희 기자 ksh15@mt.co.kr 최성근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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