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덕’이 된 미국 할배… “아이유, 나를 셀럽처럼 대해”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8. 4.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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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세 제브 라테트씨 인터뷰
아이유 ‘덕질’ 5년… 콘서트 초대 받아 면담까지
부친·딸 떠나보낸 슬픔, 한국 드라마로 치유
”인간은 선하고, 사랑이 미움 이긴다는 믿음 확인”
제브 라테트씨가 3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라테트가 매고 있는 빨간색 나비 넥타이는 아이유가 선물한 것이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무대 뒤로 가니 아이유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최고의 톱스타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셀러브리티(유명인)’처럼 대해줬습니다. 그 마음에 감동 받아 녹아내렸어요.”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페어팩스에 사는 제브 라테트(76)씨는 지난달 30일부로 자타가 공인하는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다. 2019년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보고 가수 아이유(31·본명 이지은)에 푹 빠진지 5년 만에 콘서트에 초대받고 아이유와 단독 면담을 하는 영예를 누렸기 때문이다.

2018년 부친을 여의고 암투병하던 딸도 떠나보낸 라테트를 구원한 건 아이유의 ‘밤편지’(2017년 3월 공개), 그리고 거칠게 살아온 이지안(아이유 분)이 주변의 좋은 이웃을 만나 삶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나의 아저씨’(2018년 3~5월 방영)였다. 아이유 팬덤인 ‘유애나’ 에서 이미 화제의 인물로 거듭난 라테트는 3일 본지와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돈, 섹스, 권력을 위해 행동하는 캐릭터들로 가득한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K-드라마 근저에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결국 사랑이 미움을 이긴다는 믿음이 깔려있어 감동적”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세상에 좋은 사람 많다는 믿음, 아이유와 팬들 보며 확인”

지난달 30일 가수 아이유(가운데)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북미 콘서트 이후 제브 라테트(오른쪽)씨 부부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아이유의 데뷔 후 첫 북미 콘서트였다. 초대받아 참석한 소감은.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콘서트를 보러 갔는데 수십 명의 팬들이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라테트는 아이유 공식 팬클럽인 ‘유애나’에서 이미 잘 알려진 유명 인사다.) 셀카를 수도 없이 찍었고, 정말 멋진 선물들도 많이 받았다. 한국 사람들이 내 유튜브 채널에 사랑스러운 말이 담긴 댓글을 수십, 수백 개씩 달아주는데 매일 아침 이걸 읽고 있으면 기분이 너무 좋다. 아내와 나는 이 댓글을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 아이유와 15분 면담한 후기가 궁금하다.

“그냥 줄 서서 연예인과 악수하고 떠나는 그런 느낌일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톱스타 아이유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셀럽처럼 대해줬다. 공연이 끝나고 내가 무대 뒤로 갔을 때 아이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장이 멈출 뻔했고, 마음은 녹아내렸다. 우리는 서로 포옹했고 나는 그녀에 압도당했다. 아이유의 남동생을 만난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데 단 한 번도 얼굴이 공개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는데 친절함이 이 집안의 내력인 것처럼 느껴졌다.”

- 거의 매일 같이 아이유 리액션(반응) 영상을 올린다. 유튜브는 따로 배운 건가.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아내가 프랑스어 교사인데 과거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을 도와준 적이 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동네 친구가 아이유와 한국 드라마에 대한 나의 열정을 보고 유튜브 채널을 하나 만들라고 권유했다. 그 친구가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촬영하고, 캐주얼하게 이것저것 물어본 것이 이 채널의 시초다.” (라테트는 1976년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보고 감명을 받아 지역 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사회복지사, 소프트웨어 회사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으로 일하다 5년 전 은퇴했다고 한다.)

◇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내 삶도 치유받아”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아이유(왼쪽)와 고 이선균 배우가 주연이었다. /tvN

- 많고 많은 한국의 스타 중 유독 아이유에 꽂히게 된 이유는.

“내 영혼을 부드럽게 해줬다. 휴대폰에 노래가 250곡이 저장돼 있는데 이 중 70곡이 아이유 노래다. 아이유가 연기한 ‘나의 아저씨’는 내가 본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다. 무당벌레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기억하나? 거칠게 살아온 아이유가 가차 없이 파리채를 내리쳐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에서 이미 여주인공의 캐릭터가 드러나고 드라마의 분위기가 조성된다. 연출가의 놀라운 힘을 느끼게 된다. 사채업자가 아이유를 때리는 장면을 보고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끝까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며느리가 ‘눈을 감더라도 정주행하라’고 권하더라. 캐릭터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 드라마 속 표현된 우정 모두 너무 현실적이었다. 슬프고 외롭고 잔인한 삶을 마주한 젊은 여성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픔을 극복하고 치유하고 새로운 삶을 찾게 되는 모습을 보고 뭉클해졌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 대목에서 라테트는 눈시울을 붉혔다.)

- 한국 드라마를 통해 본인의 삶도 치유됐다고 들었는데.

“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자세히 얘기하기는 힘든 얘기다. 2018년 1월에 나와 매우 가까웠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가 그해 은퇴했는데 5일 만에 딸이 죽었다. 암을 앓았었고 완치됐다고 생각했는데 1년 만에 재발한 것이다. 마침 그해에 내가 한국 드라마를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돈, 섹스, 권력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만 있는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한국 드라마에는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친절함이 있고,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다는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 ‘아이유 덕후’인 당신을 보고 배우자가 질투하지는 않나.

“우리는 결혼한 지 42년이나 됐다. 내 인생의 반려자다. 좋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가 서로의 사랑에 대해 완전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처음엔 아이유에 대한 나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콘서트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유가 훌륭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이해한다고 하더라.”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제브 라테트(가운데)씨가 서울 성동구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를 찾아 K팝 댄스를 배우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5월 한국 방문은 어땠고 무엇이 가장 인상 깊었나.

“드라마 속에서만 보던 궁궐을 실제로 가본 것이다. 한복을 입고 돌아다녔는데, 특히 여자 한복은 정말 아름다운 전통 의상이라 생각한다. 원래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 방문을 계획했는데 좌절됐다. 내년에 다시 벚꽃을 보러 갈 것이다. 전통 건축에 관심이 많아 전주도 가보고 싶다. 고속열차(KTX)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 것도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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