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보다 예쁘게 키운 조카가…” 또다시, 왜 죽어야만 했는지 묻다
아리셀·에스코넥 첫 만남 뒤 공식 대화 거부… 지자체 ‘전폭 지원’ 약속 뒤 ‘뒷짐’
“불바닥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유족 울분에도 회사·경찰·지자체 서로 떠밀기만
“내 새끼보다 예쁘게 키웠다”고, 김재형씨를 두고 고모 김신복(58)씨는 말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없이 자란 조카가 안쓰러웠다. 남동생과 함께 조카를 돌봤다. 그렇게 스물셋이 된 재형씨는 2024년 4월12일 한국에 방문취업(H-2) 비자로 입국했다. 첫 일자리를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6월24일, 재형씨는 경기 화성시의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졌다. 이 참사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은 중국·라오스 국적이다. 대부분은 중국 동포였다. “좋은 나라에 왔다고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했는데 그걸 이렇게 보내, 돈도 못 쥐어보고 보내….” 7월26일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한겨레21>과 만난 김씨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배·보상 메시지만 일방 전달… 피해자 알 권리 뒷전
7월25일 김신복씨는 참사 이후 한 달여 만에 처음으로 참사 현장을 찾았다. 그동안 가족들이 만류해 오지 못했지만, 이날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아리셀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비슷한 업무 경험이 있는 김씨가 직접 본 참사 현장은 “공장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화장터” 같았다. 배터리가 출입구 방향에 쌓여 있었기에 희생자들이 불을 넘어가지 않는 한 탈출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김씨는 조카가 “그 불바닥에서 아프다고 소리도 못 지르고 얼마나 많이 무서웠을지”를 생각하면 “현실이 너무 참담해 뼈 마디마디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유족의 아픔은 상실감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자신들을 “여기에서나 저기에서나 떠밀고 있다”는 감각도 고통을 더한다. 아리셀과 아리셀의 모회사 에스코넥은 7월5일 유족으로 구성된 ‘아리셀참사 피해자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와의 첫 만남 이후 공식적인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 유족의 요구에도 회사는 유족 쪽 대리인과 공식 교섭을 하는 대신 배·보상에 대한 문자와 카카오톡을 유족 개개인에게 반복해서 보낼 뿐이다. 그날도 김신복씨를 비롯한 유족들은 아리셀 관계자를 만나지 못했다.
도대체 왜 조카가 죽어야만 했는지, 이후 상황이 어떻게 돼가는지를 정부 기관에 물어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순 없었다. 재난 피해 당사자들의 ‘알 권리’는 후순위로 밀렸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7월8일 수사 상황을 설명하는 중간 브리핑을 열었지만, 언론 보도 이상의 내용이 나오진 않았다. 중간 브리핑에 참석해 질의에 답변할 예정이었던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대책위원회)에 유족에 더해 시민단체 활동가들도 함께한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김씨는 조카가 버스에서 내려 공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이 찍힌 시시티브이(CCTV) 영상만이라도 경찰에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사 중이라 아직은 어렵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김씨는 “모든 게 다 안 된다는 말만 30일 넘게 듣고 있다. 어떻게 어디에다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리셀한테 상황을 해결할 방안을 달라고 해도 거부하고, 화성시청에 면담을 요청해도 거부한다”고 말했다. 고 엄정정씨의 어머니인 이순희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도 “그래도 시장이라면 이 일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화성시는 (유족들을) 경기도로 미루고, 경기도는 또 경찰서에 미룬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내치기만 한다”고 말했다.
화성시 ‘법적 근거 없다’ 지원 일부 중단
참사 이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참사 초기 지방자치단체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경기도는 전례 없이 예비비로 부상자, 희생자의 유가족에게 긴급생계안정비를 지원했다. 화성시는 유족에게 숙박시설과 식사를 지원하고 스포츠센터인 모두누림센터를 유족이 사용하도록 했다. 지자체와 경찰은 사고 발생 이후 유족들에게 전담공무원을 배정해 유족들의 출입국·법률·생활편의·장례 등 각종 행정 절차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참사 초기에서 일정 시점이 지나면서 사회재난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제도에 공백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우선 유족 숙식을 지원하던 화성시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7월10일부터 지원을 일부 중단했다. 법은 유족을 ‘사망자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로 규정하는데, 희생자의 고모 김신복씨처럼 친인척·지인은 지원할 근거가 없다며 친인척·지인에 대한 지원은 중단한다는 것이다. 또 행정안전부 재해구호계획 수립지침은 유족(또는 이재민)에게 숙박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기간을 7일로 규정한다. 화성시는 애초 유족 숙식 지원을 7월31일 이후부터 중단하겠다고 했다가, 7월31일 당일에 이르러 한 달 더 지원을 연장하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재난과 재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일대일로 배치되는 전담공무원의 상황도 비슷하다. 전담공무원들은 유족들을 밀착 지원하며 상황 초기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사건 발생 초 경황이 없는 유족이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돕는 게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들은 평소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이 생기면 일단 현장에 투입부터 된다. 사람마다 업무 능력에 편차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존 업무와 유족 지원을 병행해야 해 장례식을 치르는 초반 상황을 제외하면 밀착 지원은 불가능하다. 유족이 먼저 전담공무원에게 연락해 요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정작 전담공무원들은 유족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면밀하게 알지 못한다. 대응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다.
경기도 모두누림센터 2층의 유족 대기실이 있는 공간에 복합기가 설치된 과정은 이 빈틈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면이다. 희생자의 유품을 받거나, 고인의 신원 확인을 위해 디엔에이(DNA) 검사를 해야 할 때, 생계비 지원을 받는 각종 과정에서 유족들은 여권과 신분증 사본 등을 빈번하게 제출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본과 문서를 생산해야 했지만, 정작 공무원들이 일하는 공공기관 건물 안에 있는 유족 대기실에 복합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유족 곁에서 상주하는 대책위원회 활동가들이 이를 보다 못해 곳곳에 수소문한 뒤 복합기를 대여해 설치해야만 했다. 대책위원회의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실제 이 전담공무원 제도가 얼마나 실효성 있게 잘 작동하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운용한다면 이 제도에 대한 평가와 공무원 상시 교육 같은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왜 무엇을 빨리 묻으려 하나
이렇다보니 아리셀 참사의 경우, 피해자 지원은 ‘희생자 장례 치르기’에만 몰두하는 형국으로 보인다. 아리셀 참사 희생자 23명 가운데 14명의 유족은 가해 기업이 책임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기 전까지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가족협의회와 대책위원회는 불법파견·위장도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고용 관련 서류, 안전보건 관리와 관련한 서류를 회사 쪽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자체가 각종 법적·행정적 절차를 지원하기 위해 배치한 법률지원팀 인력이 유족 상담에서 한 이야기도 장례와 산재 처리를 통한 상황 마무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김태윤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행안부 매뉴얼에 있는 전담공무원, 심리상담, 법률지원 등의 실효성이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교섭이 안 되는 상황에서 공무원과 변호사·노무사가 계속해서 산재 신청과 장례를 하라는 건, 역으로 이 죽음에 대한 피해자들의 ‘알 권리’를 묻어버리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질적인 참사 피해자 지원은 알 권리를 보장하고, 가해 기업 대표가 실제 교섭에 나서게 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숙식 지원 등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장례를 잘 치르고 싶은 건 유족이다. 이순희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빨리 조사하고, 빨리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차디찬 곳에 있는 우리 애들도 빨리 보내줄 게 아니겠나. 부모 도리는 그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이 대표는 “유족을 도와 회사가 교섭에 나서게 해서 이 상황을 마무리 짓는 게 시나 도, 경찰이 할 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유해정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센터장도 “지자체는 피해자들이 불리한 국면에 처하지 않게끔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조정해나가야 한다”며 “아리셀이 사과하게 하고 도의적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자들을 화성시청 밖으로 내모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고 짚었다.
유족 불신 더하는 행정 편의주의
“전폭적인” “빈틈없는” 지원을 약속하며 각종 센터를 설치하고 인력을 투입하지만, 유족에겐 충분히 와닿지 못한다. 오히려 일방적인 태도, 행정 편의주의적인 접근에 정부를 향한 불신이 쌓이기만 한다. 7월30일 아리셀 참사 유족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사쪽의 불법적 개별합의 종용을 비판하는 기자간담회를 열면서, 경기도 행정2부지사가 보인 고압적인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김태윤 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나는 설명하러 왔으니 듣기 싫은 사람은 나가라’라는 식이었다. 게다가 유족 설명회에 희생자 임금명세서를 가져왔는데, 이 자료는 유족들이 아무리 고용노동부에 달라고 요청해도 수사 중이라며 주지 않는 자료”라며 “도대체 행정2부지사는 어디서 이 자료를 얻었는가”라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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