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현 3관왕… 양궁 여제, ‘파리의 전설’ 됐다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전이 열리는 앵발리드 사대(射臺). 두 한국 선수가 서 있었다. 임시현(21·한국체대)과 남수현(19·순천시청). 평소엔 누구보다 가까운 선후배 사이지만, 이날 경기에선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승부에서만큼은 사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있었다.
경기는 내내 팽팽했다. 임시현이 10점을 쏘면 남수현도 10점, 임시현이 9점을 쏘면 남수현도 9점을 쐈다. 막상막하 각축전.
임시현이 2세트에서 두번째 화살을 10점 과녁에 꽂으면서 앞서 나간 게 컸다. 반면 남수현은 이 화살을 7점에 맞추면서 임시현이 승점 2점을 가져왔다. 그 뒤 임시현은 3세트도 가져오면서 승기를 잡았고, 4세트를 내준 뒤 5세트에서 마지막 화살을 10점에 꽂으면서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마무리했다.
임시현이 3일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 승점 7대3으로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이전 단체전과 혼성 단체전을 석권한 임시현은 지난 대회 안산(23·광주은행)에 이어 한국 양궁 역사상 두번째 올림픽 ‘3관왕’이 됐다.
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전 우승은 10번째다. 1984 LA 올림픽 서향순 이후 여자 양궁은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11번 중 10번을 우승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만 중국에 금메달을 내준 바 있다.
이날 후배인 남수현도 4세트를 잡아내는 등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임시현은 경기를 마치자마자 남수현을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잠시 울먹였다. 남수현은 활짝 웃으면서 선배 임시현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임시현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양궁과 인연을 맺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자연스레 체육 쪽에 관심이 많아졌다. 축구 선수를 해볼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학교(강릉 노암초)엔 축구부 대신 양궁부가 있었다. 무심코 잡은 활은 운명이 됐다.
최하나 당시 북원여중 코치가 임시현을 눈여겨 봤다. 최 코치는 “코치들 사이에서 시현이가 떡잎이 다르다고 이야기가 많았다.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임시현 역시 진지하게 양궁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양궁부가 있는 강원 원주시 북원여중으로 ‘유학’을 갔다. 20평 남짓한 관사에서 최 코치와 함께 동고동락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살다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임시현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모님도 ‘딸이 너무 일찍 집을 나갔다’며 속상해 하셨다고 한다”고 했다.
그 외로움을 훈련으로 달랬다. 새벽부터 시위를 당겼고 방과 후엔 밤 9시까지 훈련했다. 하루에 화살 1000발을 쏜 날도 있었다. 최하나 코치는 “시현이가 사대에서 조금 집중을 못해서 늦게 쏘는 버릇이 있었다. 망설이는 습관을 훈련으로 덮으려고 한 것”이라며 “시키지도 않았는데 본인이 하더라. 성격이 밝고 어린데도 ‘독기’가 있었다”고 했다.
강도 높은 훈련은 천천히 효과를 나타냈다. 중학교 때는 전국 대회 10위권이었지만, 서울체고 시절에는 전국대회에서 1~3위에 오르며 기량이 만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작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알려진 대로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하면서 ‘신궁’의 반열에 오른데 이어 파리 올림픽에서도 3관왕을 차지하면서 한국 양궁 역사 최고 선수 중 하나로 남게 됐다.
남수현이 양궁을 만난 것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체육 교사 권유에 시작하게 됐다. 그런데 처음 두 달 동안은 화살을 안 쏘고 시위를 당기기만 했다. 어머니가 ‘그게 재밌니?’라고 물었는데 남수현은 그렇다고 답했다.
남수현에게는 쉬는 날이 없었다. 어머니 고수진씨는 “노력이 99%인 아이”라고 했다. 명절에도 다른 곳에 안 가고 혼자 학교에 가서 2~3시간씩 개인 훈련을 했다. 중학교 때는 하루에 700발을 매일 쐈다. 고등학교 때는 코치가 너무 많이 쏜다고 말린 끝에 500발 밑으로 줄였다.
끈기도 만만찮다. 가령 코치가 ‘신체 균형을 위해 복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 되어도 반드시 복근 운동을 하고 자는 식이다. 어머니 고수진씨는 “내 애지만 독한 애”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고씨는 이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동안 정규인 순천여고 감독님, 송효은 코치님이 아이에게 믿음을 주신 것도 컸다. 아이가 지칠 때도 있었는데 풀어줄 때는 풀어주고 상담도 많이 해줬다. 부모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어머니 고씨는 남수현에게 “고생했다는 간단한 말을 해주고 싶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엄마 아빠다. 이렇게 평범한 엄마 아빠에게 아이가 이렇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면서 “집 옥상에서 숯불로 고기를 종종 먹는다. 수현이가 프랑스 가기 전에 이렇게 먹고 싶다고 했었다. 한국에 오면 오빠와 남동생까지 가족 5명이 다 모여서 고기를 구워먹어야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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