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들의 일상을 편견없이 그린 난쟁이 화가...“인간은 추하지만 아름답다” [나를 그린 화가들]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2024. 8. 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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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자화상’, 1882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의 밤을 사랑한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152cm의 작은 키로 공연장과 술집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난쟁이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물랭루주에선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죠. 그곳에서 술을 마시는 손님들, 춤을 추는 당대 스타들을 즐겨 그렸습니다. 그는 ‘물랭루주의 작은 거인’으로 불린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입니다. 로트렉은 물랭루주를 비롯한 당대 공연장을 홍보하는 포스터로도 시대를 휩쓸었습니다. 이번 연재에선 로트렉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난쟁이 귀공자
3세 때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로트렉은 1864년 부유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던 그는 부족한 게 없어 보였습니다. 어린 시절 ‘작은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받았죠.

그런데 로트렉은 유난히 허약했습니다. 십대 때 두 번의 낙상 사고로 다리가 부러졌고, 이후 성장이 멈췄습니다.

사실 로트렉에게 장애가 있던 이유는 그의 부모가 사촌지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문에서 반복된 근친혼으로 로트렉의 사촌들 몇 명도 왜소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치료를 받느라 몸을 자주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로트렉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아델 백작 부인은 로트렉이 그림을 좋아하자 모든 힘을 다해 아들을 지원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말로메 성 살롱에 앉아 있는 아델 드 툴루즈 로트렉 백작부인’, 1887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을 담아 로트렉이 그린 아델 백작 부인의 초상화입니다. 어머니의 존재는 로트렉에게 힘이 되어줬습니다. 로트렉은 아델 백작 부인이 독서하는 모습을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냈습니다.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입니다.
로트렉의 자화상
장애가 있는 로트렉은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자 그는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조차 이방인 신세가 됩니다. 아버지인 알퐁소 백작으로부터 외면받죠. 알퐁소 백작은 로트렉이 집안의 후계자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그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밖에서도 이어집니다. 그림을 공부하러 간 아틀리에에서도 그는 주변의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거울을 보고 그린 자화상’, 1882~1883
‘거울을 보고 그린 자화상’에는 로트렉의 상처가 담겨 있습니다. 다리를 제외하고 그린 상반신 그림에서 그의 콤플렉스가 드러납니다. 얼굴은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 불분명하게 보입니다.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것처럼 느껴지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화가 자신의 캐리커처, 1896
이후 로트렉은 자신을 희화화해서 그렸습니다. 특히 캐리커처처럼 단순하게 그린 것들이 많았죠. 실제보다 자신의 키를 더 작게 과장해서 그렸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화가 자신의 캐리커처, 1896
로트렉의 친구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빈센트 반 고흐의 초상’, 1887
로트렉은 파리에서 여러 화가와 교류했습니다. 이 그림은 친구인 빈센트 반 고흐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두 사람은 스승인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서 만났습니다. 고흐는 당시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만학도였는데요.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로트렉은 고흐와 친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일본 판화에 관심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죠.

이 그림은 고흐의 회화 방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흐가 자주 사용하던 노란 색채가 눈에 띕니다.

고흐는 화랑의 지배인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로트렉 작품을 몇 점 구입하도록 했습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날 곳으로 아프리카와 프랑스의 프로방스, 마르세유 지역을 고민하자 로트렉은 아를 지역을 추천했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숙취’, 1889.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그린 작품.
로트렉은 화가 수잔 발라동과 연인 관계였습니다. 발라동은 세탁부로 일하며 유화와 데생을 공부하다가 서커스단의 공중곡예사가 됐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다친 후 모델이 돼 에드가 드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화가들의 모델이 됐죠.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부기발에서의 춤’, 1883
르누아르와 로트렉의 그림을 잠시 비교하겠습니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그린 발라동입니다. 두 뺨이 붉어진 채 춤을 추는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수잔 발라동의 초상’, 1885
로트렉이 그린 발라동입니다. 르누아르의 그림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을 그린 것 같지 않나요? 로트렉은 인물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발라동의 두 눈은 생각에 잠긴 모습입니다. 턱은 뾰족하게 묘사해 예민해 보이죠. 발라동의 강하고 야심 찬 성격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발라동은 로트렉의 장애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발라동은 자살 소동까지 벌여 가며 로트렉에게 구혼했지만, 로트렉이 이별을 통보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이 납니다.

물랭루주의 작은 거인
로트렉은 파리 몽마르트를 삶의 터전으로 잡고 이곳의 술집을 주요 주제로 삼았습니다. 술집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었습니다. 중년 신사부터 가난과 술에 찌든 이들, 매춘부까지 다양했죠. 로트렉은 사람들이 술과 오락을 즐기면서도 느끼는 내면의 그늘과 불안감, 우울을 포착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 드 라 갈레트’, 1889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로트렉이 자주 드나들었던 몽마르트의 댄스 홀입니다. 뒤편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눈빛이 왠지 쓸쓸해 보이지 않나요.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클럽이나 바에서도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봤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주에서’, 1892
이 그림은 물랭루주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가운데 테이블에 평론가와 무용수, 가수 등이 앉아 있습니다. 테이블 뒤쪽 먼 곳에 서있는 키 작은 남성이 보이시나요? 로트렉은 그림에 자기 자신을 등장시켰습니다. 키가 큰 사촌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이어서 자신의 작은 키를 강조했죠.

그림 오른쪽에 크게 그려진 여성의 얼굴은 조명에 비춰 가면처럼 보입니다.

로트렉은 인기 스타들도 즐겨 그렸습니다. 물랭루주에선 대중적인 성공을 누린 배우, 무용수, 가수들이 있었는데요. 로트렉은 늘 앞줄 테이블에 앉았다고 해요. 로트렉은 인물의 본질을 완전히 추출했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해서 그렸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주에서: 춤’, 1890
이 작품으로도 물랭루주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운데 여성 무용수 라 굴뤼, 그리고 키가 크고 마른 남성 댄서 발랑탱 르 데소세가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광대 샤 위 카오’, 1895
샤 위 카오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물랭루주의 곡예사이자 어릿광대, 무용수였습니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직업이었던 광대 일을 과감하게 선택했고,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점을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샤 위 카오는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요. 푸른색 벽 배경과 샤 위 카오의 노란색 의상이 화려하게 대비를 이룹니다.
새로운 미감, 포스터
포스터는 로트렉의 독창성을 잘 드러냅니다. 로트렉은 물랭루주, 앙바사되르, 자르댕 드 파리, 디방 자포네 등 당대 술집 겸 공연장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그렸습니다.

19세기 말 포스터는 실험적인 장르였습니다. 로트렉은 사람들이 포스터를 보고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단순하고 과감하게 그렸습니다. 인물을 충분히 크게 그렸고, 명암이나 배경 등 세부적인 요소를 배제했습니다. 또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깔로 평면성을 강조했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루주의 라 굴뤼’, 1891
매일 밤 물랭루주에서 무도회와 공연이 열린다는 점을 알리는 포스터입니다. 노란색 램프는 물랭루주가 밤에도 밝다는 점을 보여주죠.

로트렉의 포스터에선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등장합니다. 이 포스터에선 무용수 라 굴뤼가 다리를 높이 올리며 캉캉 춤을 추고 있습니다. 하얀 레이스 속바지가 펄럭이는 모습은 당시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마른 남성 댄서 발랑탱 르 데소세는 그 앞에 그림자처럼 보이죠.

이 포스터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로트렉은 27세의 나이에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됐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수집가들은 벽에 붙은 그의 포스터를 얻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고 해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앙바사되르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1892
이 포스터의 주인공은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입니다.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을 사용해 주의를 끌고 있습니다. 브뤼앙이 쓴 모자는 포스터 글자 일부를 감추고 있는데요. 이 기법은 오늘날의 포스터 디자인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자르댕 드 파리의 잔 아브릴’, 1893
가수이자 무용수인 잔 아브릴이 캉캉을 추고 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를 든 손과 악보는 액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디방 자포네’, 1893
이 그림도 잔 아브릴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아브릴은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림 위쪽 왼편에는 얼굴이 잘린 여성도 그려져 있는데요. 항상 검은색 장갑을 끼던 가수 이베트 길베르입니다.

이 포스터는 일본 판화인 ‘우키요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우키요에의 특성인 평면성과 강렬한 색조, 인물을 그릴 때 나타내는 테두리 선 등이 이 포스터에도 드러나죠.

금기를 그리다
로트렉은 자신이 자라온 귀족 사회보다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창가를 배경으로 그림도 많이 그렸죠.

성매매 여성을 그린 로트렉의 그림은 당시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로트렉은 이들을 그리면서 어떤 도덕적 판단도 하지 않는 접근방식을 보였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로트렉은 창녀들의 공동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매춘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가 됐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가의 사창가’, 1894
로트렉이 다룬 사창가의 일상입니다. 그림 속 여인들은 법적 의무인 의료 검진을 위해 속옷을 들어올린 채 서 있습니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몸은 없습니다. 오히려 결점을 드러내는 피곤한 육신만 존재합니다. 일상의 진부함, 권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입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몸단장’, 1896
‘몸단장’은 하루를 준비하는 매춘부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죠. 빼빼 마른 여성의 등 뒤로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물랭가의 살롱에서’, 1894
성매매 여성들을 대각선 구도로 배치한 그림입니다. 맨 앞 여성은 편하게 앉아 있는 반면 그 옆의 여성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있습니다. 꼿꼿하게 앉고 목까지 가리는 옷을 입은 이 여성은 술집의 여주인으로 매춘부를 관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로트렉은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로트렉은 창녀를 소재로 한 그림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누드화에 관음증적인 시선이 많은 점과 대조적이죠. 하지만 사창가를 주제를 그린다는 이유로 로트렉은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타락한 인간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침대에서’, 1891
동성애를 주제로 한 그림도 그렸습니다. 사창가에 있던 여성들은 함께 갇혀 있는 동료와 애정 관계를 맺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림 속 여성들은 서로 마주 보는 자세로 느긋하게 누워 잠을 자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키스’, 1892
머리가 짧은 두 여성이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
술을 과하게 마셨던 로트렉은 알코올 중독에 빠집니다. 당시 사람들이 마시던 술인 압생트는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어 치명적이었죠.

술에 중독된 로트렉은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정신착란증을 겪고, 상상 속의 거미를 향해 권총을 쏘아댔죠. 격렬한 발작을 일으킨 후 그는 1899년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이후 병원에서 퇴원하지만 로트렉은 여전히 술을 끊지 못했습니다. 1901년 어머니가 지켜보는 앞에서 만 3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습니다.

1892년 무렵 툴루즈 로트렉
장애로 인해 소외당한 로트렉은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습니다. 타인에게 편견과 선입견 없이 다가갔죠. 부도덕하다고 낙인찍힌 매춘부, 선술집에서 인생을 낭비해 낙오자로 여겨진 이들을 묘사한 그림에선 그의 시선이 드러납니다. 로트렉은 이들을 풍자하지도, 동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 인간으로 그렸습니다.

로트렉은 “인간은 추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름답거나 미화된 표현을 자제했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못나고 나약한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로트렉의 인물들은 예쁘고 멋있지 않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매력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더 특별하고 진실한 느낌을 줍니다. 1800년대 말 몽마르트에서 춤추고 웃고 고뇌하고 외로워하던 이들은 로트렉의 그림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앙리 페뤼쇼(2009),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다빈치

-엔리카 크리스피노(2009), 툴루즈 로트레크 : 몽마르트르의 밤을 사랑한 화가, 마로니에북스

-다니엘르 드뱅크(2005), 앙리드 툴루즈-로트렉 :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열화당

-더글라스 쿠퍼(1991),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중앙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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