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중식당에서 벌어지는 코인 자금세탁[비트코인 AtoZ]
지난해 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캄보디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암호화폐(코인) 자금세탁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기사에는 프놈펜 시내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식당, 옷가게, 미용실 같은 곳이 중국 위안을 코인으로 교환해주는 풍경이 등장합니다. 교환되는 코인은 달러에 가치가 고정된 테더(USDT)입니다.
일단 USDT를 확보하면 세계 여러 코인 시장으로 이전해 현금화하는 길이 열립니다. 이 같은 자금 흐름은 범죄 활동과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 이 기사에서도 도박과 인신매매가 거론됩니다. 물론 자금 은닉을 위한 외화 반출 등 그 밖에도 수요는 많습니다.
지난 5월 2조원 송금한 중국 조직 붙잡혀
이 기사는 중국 위안이 캄보디아를 거쳐 코인 시장에 유입되는 구조를 보여주었습니다. 중국은 2021년부터 코인의 유통을 사실상 전면 금지했지만 여전히 ‘지하’에서는 커다란 코인 시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난 5월 쓰촨성 청두에서는 138억 위안(약 2조6326억원) 규모의 자금을 USDT로 해외에 송금한 조직이 붙잡혔습니다. 같은 달 지린성에서도 21억4000만 위안(약 4082억원) 규모의 암호화폐 관련 범죄가 적발됐는데 역시 코인을 통해 한국에 전송한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캄보디아의 사례는 이들 사건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중국인들을 상대로 위안-코인 환전임에도 중국 국경 밖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캄보디아는 동남아에서 대표적인 친중 성향 국가로 중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후이원(Huione), 중국어로는 ‘후이왕(汇旺)’이라고 불리는 캄보디아 정치 권력과 연계돼 있는 금융 기업입니다. 든든한 뒷배를 가진 합법적 기업의 존재는 중국 고객들을 안심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후이원그룹은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후이원은 2014년 외환 환전소로 시작했고 2018년 QR코드를 이용한 전자결제 서비스 후이원페이와 후이원증권을 출범시켰습니다. 후이원 웹사이트에는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를 지향한다면서 보험, 자산운용, 신탁 등 서비스도 운영한다는 소개가 나옵니다.
실제 후이원의 다양한 금융 서비스는 사실상 은행처럼 운영되며 전국 곳곳에 지점과 창구가 있습니다. 앞서 인용한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기사를 보면 이 창구에서 테더(USDT) 환전 서비스도 해줬다고 합니다. 식당이나 옷가게 같은 곳처럼 후이원에서 중국 위안을 USDT로 바꿀 수 있다는 건데 코인 환전은 그 특성상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이 이뤄졌습니다.
후이원은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 회사 여러 계열사에 이사로 올라 있는 훈 토(Hun To)라는 인물은 현 총리 훈 마넷(Hun Manet)의 사촌입니다. 훈 마넷은 38년 장기집권한 훈 센 전 총리(현 상원의장)로부터 사실상 권좌를 세습한 아들입니다. 곧 훈 토는 훈 센의 조카입니다. 훈 토의 아버지 또한 캄퐁참 주지사입니다. 이들뿐 아니라 훈 센 일가는 오랜 기간 집권하는 동안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기집권 권력자 일가의 흔적
2016년 영국의 NGO 글로벌 위트니스는 훈 센 일가가 무역, 금융, 관광, 에너지, 건설, 교통, 언론, 유통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211개 기업을 소유하거나 지배하고 있다고 폭로했습니다. 당시 추정한 보유 자산은 2억20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2525억원) 규모였는데 은닉재산을 제외한 것이어서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가족 중에서도 훈 토는 마약밀매, 불법 벌목, 도박 사건에 여러 차례 연루되는 등 악명 높은 인물입니다. 결국 훈 센 일가의 ‘말썽쟁이’가 운영하는 기업(후이원)이 코인을 다루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난 7월 10일 영국의 블록체인 분석기업 엘립틱은 후이원의 계열사 후이원보증(Huione Guarantee)이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 플랫폼으로 활용됐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2021년 출범한 후이원보증은 원래 자동차와 부동산을 다루는 개인 간 거래(P2P) 플랫폼으로 시작했는데 악의적인 이용자들이 이곳을 통해 현금과 암호화폐, 중국의 결제 앱(알리페이 등)의 교환을 해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동남아 여러 범죄 조직의 온상이 된 후이원보증에서 전체 세탁 자금은 110억 달러(약 15조원)로 추정됩니다.
보고서가 세간의 화제가 된 지 나흘 뒤 지난 5월에 해킹당한 일본 코인 거래소 ‘DMM 비트코인’의 코인이 후이원보증에서 ‘세탁’됐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도난당한 코인은 무려 482억 엔(약 4343억원)어치였습니다. 다시 이틀이 지나 후이원이 해커 집단 라자루스그룹의 자금 은닉에 사용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습니다. 미 법무부 등 여러 나라 수사·정보 당국은 라자루스의 배후가 북한이라고 특정하고 있고 해킹 수익은 무기 개발에 쓰인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로이터 보도를 보면 라자루스 해커들은 코인 기업에서 훔친 15만 달러 상당의 코인을 후이원페이로 보낸 것이 드러났습니다.
후이원이 범죄 자금, 도난 코인, 테러 자금 등의 흐름에 연루됐다고 지목된 상황. 테더 측은 수사 당국 요청에 따른 조치라며 후이원이 보유한 코인 2900만 달러(약 402억원)어치를 동결시켰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돈은 어느 곳으로도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범죄 자금, 도난 코인이 거쳐갔다
훈 토 또는 그가 속한 훈 가문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후이원보증을 통해 거래된 품목 중에는 전자발찌와 몽둥이 등 인신매매 관련 물품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훈 토는 2022년 언론 기사로 인신매매 연루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를 보도한 매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그중 한 곳인 호주 매체는 엘립틱 보고서가 나오기 하루 전 기사 철회 및 정정보도를 조건으로 소송 취하 합의를 했습니다.
훈 토의 승리로 볼 수 있지만 합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면서 다른 매체 소송은 장담하기 힘들어졌습니다. 후이원보증 측은 거래 플랫폼일 뿐 직접 상품이나 거래에 관여한 것은 아닌 만큼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캄보디아 중앙은행은 지급결제 플랫폼이 암호화폐를 다룬 것은 불법이라는 입장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특정 산업의 여러 특징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캄보디아 후이원 사건은 저개발국가의 정경유착, 기술을 통한 금융 발전, 강한 규제와 자금 유출, 코인 추적 기술의 긍정적 효과 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다양하게 회자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한국·일본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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