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성화봉송, 알고보면 ‘이것’ 홍보 위한 빅 픽처?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4. 8. 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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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 성화 봉송 루트.
4년 마다 돌아오는 지구촌 스포츠 축제, 파리 올림픽이 시작됐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이후 100년 만에 파리에서 열리는 올림픽인데다, 최초로 주경기장이 아닌 센강을 따라 열린 개회식 등 시작부터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막식의 백미는 누가 뭐라해도 성화(聖火) 봉송이죠. 성화는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신전에서 태양으로부터 채화해 개최국 전역으로 퍼레이드 후 올림픽 경기가 개최되는 주경기장의 성화대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타오릅니다.

특히 파리 올림픽은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칼 루이스(미국), 나디야 코마네치(루나이아) 등 타국 출신 스포츠 스타에게 성화 봉송 일부를 맡겼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깼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성화는 4월16일 이미 그리스 신전에서 채화됐고요. 5월8일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한 후 2달여 동안 본국을 포함한 해외 영토를 돌고 난 후에 지난 26일(현지시각) 파리 올림픽 개막식에서 점화됐습니다.

프랑스는 자타공인 와인 종주국이고, 전 국토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죠. 성화 봉송지는 프랑스가 직접 정했는데요. 가만 따져보면 프랑스 국토를 돌며, 제법 많은 와인 산지들을 거쳐갔습니다.

오늘 와인프릭은 파리 올림픽 조직위가 밝힌 성화 봉송 68단계(스테이지) 중 프랑스 주요 와인 산지와 그 봉송 주자들을 살펴봅니다. 어쩌면 성화 봉송 루트는 프랑스의 자랑인 와인을 홍보하기 위한 빅픽쳐일지도 모릅니다.

토니 파커 인스타그램 캡쳐.
토니 파커, 은퇴 후 양조자로 변신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가장 먼저 도착한 프랑스땅은 항구도시 마르세유였습니다. 프랑스의 농구 선수이자 미국 프로농구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4번의 챔피언십을 차지한 토니 파커가 마르세유에서 1단계 성화 봉송을 맡았죠.

첫 봉송 주자였던 토니 파커는 와인과 어떤 인연이 있을까요? 파커는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랐고, 프랑스 농구 국가대표팀으로 활동했습니다. 세계 최고라고 불리는 미국 프로농구 NBA 명예의 전당 멤버기도 합니다.

토니 파커는 농구 선수 은퇴 후에는 프랑스 남부 로제의 지방인 프로방스에서 샤또 라 마스카로네(Chateau La Mascaronne)의 공동 소유주이자 와인 양조자로써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와이너리는 주로 로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토니 파커는 성화 봉송 인터뷰에서 “프랑스가 유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와인”이라며 “NBA 선수들이 자신이 마시는 빈티지를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성화를 봉송하고 있는 제라르 베르트랑. 인스타그램 캡쳐.
이젠 양조자로 더 유명한 베르트랑
5월12일에는 성화가 4단계 지역인 알프스 산맥 자락에 위치한 부슈 뒤 론(Bouches-du-Rhone)을 돌았습니다. 프로방스 지방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죠. 프로방스는 예전 와인프릭에서 다뤘듯 로제 와인의 성지 입니다.

브래드 피트부터 조지 루카스, 포스트 말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인이 이 지역의 로제 와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면서 유명인사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같은 달 16일에는 오드(Aude)에서 제라르 베르트랑(Gerard Bertrand)이 8단계로 성화를 봉송했습니다. 베르트랑은 전 프랑스 럭비 선수(프로팀 스타드 프랑세 파리의 주장)였고, 은퇴 후에는 가족 농장을 인수해 랑그독-루시용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메이커 중 한 명이 됐습니다.

생뗴밀리옹 도시의 모습.
성화는 23일 14번째 단계로 보르도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생떼밀리옹(Saint-Emilion)을 지나갔습니다. 보르도 우안(Right bank)의 인구 2000여명이 사는 생떼밀리옹 마을은 자갈밭인 좌안과 달리 석회질과 진흙이 많은 토양 탓에 메를로(Merlot) 품종을 주로 생산합니다.

덕분에 메를로 비율이 높은 와인을 주로 양조하는데, 메를로의 우아하고 풍부한 뉘앙스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성화는 특히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샤또 슈발블랑(Chateau Cheval Blanc)과 샤또 앙젤뤼스(Chateau Angelus) 지나갔습니다.

샤또 슈발 블랑성.
생떼밀리옹과 앙주 지나가기도
5일 뒤인 28일, 성화는 18번째 단계로 루아르 밸리를 지나쳤습니다. 루아르 밸리는 프랑스 중부를 관통하는 루아르 강을 따라 와이너리들과 고성들이 늘어선 지역이죠.

성화는 15세기 중세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아름다운 몽소로 성(Chateau de Montsoreau)의 안뜰을 지나, 페이 드 라 루아르(Pays de la Loire) 지역에 위치한 앙주(Anjou) 아펠라시옹의 꼬또 뒤 레이용(Coteaux du Layon)을 생산하는 여러 와이너리들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꼬또 뒤 레이용은 주로 슈냉 블랑(Chenin Blanc)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달콤한 화이트 와인입니다. 루아르 계곡의 레이용 강 주변에 자욱하게 끼는 안개 덕분에 귀부병(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에 감염된 포도를 사용합니다.

귀부병은 포도 알맹이의 껍질을 부패시켜서 햇빛에 수분이 증발하게 만들고, 포도는 건포도화된 열매만 남습니다. 농축된 당도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풍부한 과일 향과 복잡한 맛을 지닌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샤또 몽소로
칼바도스도 와인이다…노르망디
30일 성화는 북쪽으로 달리면서 노르망디(Normandy) 외곽(20단계)에 도착합니다.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사과 혹은 배를 이용한 브랜디 칼바도스(Calvados)를 만들죠.

칼바도스는 법적으로 보호받는 아펠라시옹 도리진 콩트롤레(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 AOC)입니다. 오로지 이 지역에서만 특정 규칙을 따라 생산됩니다.

맛은 일반적으로 신선한 사과, 배, 바닐라, 그리고 숙성된 오크향이 조화를 이루고, 사용된 사과의 품종, 증류 방식, 그리고 숙성 기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로 식사 후 디저트나 치즈와 함께 즐기거나 칵테일의 재료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노르망디 지역에서 칼바도스를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수확한 사과들.
빼놓을 수 없지, 샴페인
이로부터 한 달 뒤인 6월30일, 성화는 45단계로 샴페인 생산지인 에페르네(Epernay)의 샹파뉴 거리(Avenue de Champagne)를 지났습니다. 샴페인 거리는 2015년부터 ’샴페인 언덕, 집, 그리고 지하 저장고(Champagne Hillsides, Houses and Cellars)‘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성화는 에페르네에 본사를 둔 모엣샹동(Moet & Chandon)과 페리에 주에(Perrier-Jouet), 폴 로저(Pol Roger) 등을 지났고, 특히 봉송 주자는 돔 페리뇽(Dom Perignon)의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에페르네의 샴페인 거리.
샤블리와 끌로 드 부조까지
7월11일, 올림픽 개막 2주를 앞두고 성화는 봉송 54단계로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Yonne)을 지났습니다. 파리와의 거리는 불과 수백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 욘은 샤블리(Chablis) 마을로 유명한 지역이죠.

이 지역을 지날 때 성화 봉송 주자 중에는 쿠랑주-라-비뇌즈(Coulanges-la-Vineuse) 지역 도멘 보흐그낫(Domaine Borgnat)의 와인메이커인 에글란틴 보흐그낫(Eglantine Borgnat)과 샤블리의 도멘 핀손(Domaine Pinson)의 와인메이커인 로랑 핀손(Laurent Pinson)이 포함됐습니다.

이튿날인 12일, 성화는 부르고뉴 핵심 산지 중 하나인 꼬뜨 도르(Cote d’Ore·황금 언덕)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부르고뉴에서 가장 뛰어난 그랑크뤼 밭이 이어지는 루트 뒤 그랑크뤼스(Route des Grands Crus)의 한 가운데, 샤또 뒤 끌로 드 부조(Chateau du Clos de Vougeot)에서 멈춥니다.

끌로 드 부조는 12세기 시토회 수도사들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있죠. 성화와 봉송 주자는 이 와이너리에서 호화로운 만찬과 축복 의식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전통의 와인 시음컵 기사단(슈발리에 뒤 따스뜨뱅·Confrerie des Chevaliers du Tastevin)도 참석했다고 합니다.

끌로 뒤 부조 성과 주변 포도밭들.
한편 올림픽과 와인은 꽤 잘 어울립니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각각 그 기원과 전통이 풍부하죠. 올림픽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국제 스포츠 대회로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며, 와인은 고대부터 다양한 문화에서 중요한 음료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또 둘 다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올림픽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즐기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문화 교류와 이해를 촉진합니다. 와인 역시 다양한 국가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며,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죠.

품질과 탁월성 면에서도 올림픽은 스포츠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성을 기념하는 자리이며, 선수들은 최고의 성과를 위해 노력합니다. 와인도 마찬가지로 생산 과정에서 높은 품질을 추구하며 포도의 품질, 양조 기술, 숙성 과정 등이 와인의 탁월성을 결정합니다.

결정적으로 올림픽과 와인 모두 이기고 지는 것, 메달을 따는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따로 있죠. 이번 올림픽은 일맥상통하는 와인과 함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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