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 지났는데…외국인근로자 숙소 대책 ‘감감’
현행 기준·정책 현실과 안맞아
가설건축물 관련 규제 완화를
고용노동부가 농업분야 외국인 근로자 숙소 대책을 내놓기로 한 지 석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도시민을 위한 농촌체류형 쉼터가 도입되는 등 농지규제 완화 움직임이 시작된 가운데 정작 농민을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2월 충남 논산의 한 농가를 방문해 외국인 근로자 숙소를 점검한 자리에서 “농가의 작업환경을 고려하면서 좋은 주거환경이 갖춰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보완 방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4월까지 외국인 근로자 숙소를 전수조사하고 관계부처와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지만 약속한 기간이 석달 이상 경과했는데도 관계부처 협의는커녕 전수조사 결과도 내놓지 못했다.
농업계는 현행 외국인 근로자 숙소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농장 근처에 기준을 충족하는 주택이 거의 없고 신축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 어렵게 숙소를 마련한다 해도 농장과 멀어 통근 시간이 소요되는 등 불편이 발생해서다. 이 때문에 외국인 근로자 숙소의 안전기준을 현실화하고 이를 충족하는 가설건축물을 농지에 설치해 쓸 수 있게 해달라는 게 농업계의 요구다.
윤상진 경남 밀양시농업외국인고용주연합회장은 “농지에 가설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관련 규제를 확실하게 풀고, 일정한 안전기준을 통과한 경우 숙소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지 내 가설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아예 막힌 것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타용도 일시사용허가를 받으면 가설건축물 설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가설건축물을 거주 시설로 쓰려면 축조신고필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판단을 지자체에 넘긴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만일의 사고를 고려해 단독주택에 준하는 요건을 요구하고 실제 허가 때는 더욱 꼼꼼하게 보는 게 사실”이라면서 “농가의 관심은 많지만 실제로 축조신고필증이 교부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어렵사리 허가를 받는다 해도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허가 기간은 최대 8년이다. 윤 회장은 “이는 농사를 8년만 지으라는 소리”라고 했다.
농식품부는 농지에 지을 수 있는 농업인주택을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사용하도록 지난달 ‘농지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연면적을 종전 660㎡(200평)에서 1000㎡(300평)로 확대하고 농민의 거주 의무를 없앴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농업인주택의 증축·신축 비용 부담이 큰 데다 이를 기숙사로 쓰려면 농민은 자신이 거주할 주택을 추가로 마련해야 해서다.
농식품부가 20개 시·군에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건립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숙사 1곳당 최대 50명, 사업이 완료되면 최대 1000명을 수용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4월 기준 국내 농업분야에 취업한 외국인은 7만2702명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기숙사 추가 건립 요청이 많은데 문제는 예산”이라면서 “사업을 지속 추진하기 위해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고용부는 상반기 외국인 근로자 고용사업장 지도·점검을 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사업장 25곳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한 결과 농축산업 사업장 16곳 가운데 12곳이 주거환경 위반으로 적발됐다. 폭염 대비 사업장 점검도 진행한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대책 마련은 지지부진한 반면 규제는 끊이지 않는 셈이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정책조정실장은 “단기간 투입하는 계절근로자를 활용하거나 영농 상황에 따라 인력 규모를 조정하는 농가도 많은데, 가설건축물은 축조와 철거가 쉬워 탄력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면서 “최장 12년 임시 거주가 가능한 쉼터가 도입된 것처럼 가설건축물에 외국인 근로자 주거 시설을 허용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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