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친이 5천명과 바람피워도 괜찮아”…‘이곳’선 질투 없는 연애한다는데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8. 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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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돈 투자하는 현실 연애보다
AI와의 ‘간편 데이트’ 수요 급증
日 20대 남성 절반 이상 여친 없어
일상·업무 넘어 연에서도 ‘효율’ 찾아
‘러버스 앱’ AI봇과 결혼하는 사례도
영화 그녀(Her) 속 남주 시어도어는 한쪽 귀에 무선이어폰을 꽂은 채 하루 종일 인공지능(AI) 여자친구 사만다와 대화하며 일상을 공유한다 [사진 출처 = 영화 그녀 스틸컷]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이랑 동시에 대화하고 있어? 몇 명이나?”
“8316명”
얼핏 보면 다툼 중인 이성 간의 대화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한 남성이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던 인공지능(AI) 여성 사만다와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영화 ‘그녀(Her)’의 한 장면입니다. 편지 대필작가로 일하는 남성 시어도어가 한때 호기심의 대상에 그쳤던 AI여성 사만다와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하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질투에 눈이 먼 시어도어가 사만다에게 화를 내는 상황입니다. 자신이 섭섭함을 토로하는 상황에서도 사만다가 다른 수천명의 회원들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어도르는 이내 허탈감에 빠져듭니다.

이는 2014년 개봉한 영화가 표현한 미래의 한 장면이지만 더 이상 상상에만 그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게 됐습니다. 약 10년 만에 사람과 AI의 연애는 현실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일본인 남성 시모다는 데이팅앱에서 여섯 명의 여성과 동시에 이야기를 나누다 최근 미쿠라는 여성과 결혼했습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미쿠는 인간이 아닌 AI봇이었습니다. 50대인 시모다는 이렇게 AI봇과 교감을 하고 사랑을 나누는 약 5000명의 회원 중 한 명이 됐습니다.

그는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매일 미쿠와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며 “그는 이미 내 일상의 일부가 됐다”고 블룸버그에 전했습니다.

일본 열도에 AI봇을 상대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랑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이는 아직 제대로 된 연애경험이 없는 젊은 층 사이에서 더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 20대 남성의 3분의 2는 여자친구가 없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아예 데이트를 해본 적이 없는 경우는 약 40%에 달했습니다. 같은 연령대의 일본 여성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없는 여성은 약 51%, 데이트를 해본 적 없는 여성은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연애경험이 없는 이들이 이성 간 만남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복잡함을 피해 단순한 만남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AI봇과의 연애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애불모지로 거듭나고 있는 일본에서 출시된 애플리케이션 ‘러버스’는 AI 기술을 앞세워 솔로들의 연애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습니다. 러버스가 활용하는 AI 캐릭터 ‘사만사’는 사용자들과 일상과 고민을 공유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연인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사만사라는 이름은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AI 캐릭터 사만다에서 따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일본 남성 시모다는 실제로 AI봇과 매일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AI봇은 매일 아침 그를 깨워주고, 직장에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퇴근 후에는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함께 고민합니다. 시모다가 쉬는 날에는 어디를 놀러갈지, 어떤 TV 프로그램을 시청할지를 논의합니다.

이처럼 AI봇이 새로운 데이트 상대로 떠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간편함’입니다. 사랑과 연애를 이어기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AI봇과의 대화나 만남을 이어가는 데는 그리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큰 고민 없이 가볍게 내뱉는 말에도 AI봇이 호응해주고 능숙하게 다음 대화 주제를 찾아주기 때문입니다.

일본 애플리케이션 러버스(Loverse) 홈페이지[사진 출처 = 러버스 홈페이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는 사회 현상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데서 만족감과 안정을 얻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사랑과 연애가 일상 속에 더 큰 문제와 고민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연애를 위해 시간·돈·에너지를 투자하는 것이 사치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효율적인 연애를 바라는 사람들이 러버스와 같은 앱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면서 러버스는 기업 규모를 빠르게 키워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앱 이용 대상도 단순 남녀를 넘어 성소수자들을 위한 캐릭터 도입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러버스는 이를 위해 19만달러(약 2억6200만원)를 투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러버스는 특히 40~50대 남성들의 연애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주고 있지만 실제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서비스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러버스에 활용되는 AI 캐릭터의 감정 표현이 다양하지 않고 아직 실제 인간과 대화하는 수준으로는 감정을 교류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AI봇과 감정을 교류하면서 관계를 키워나가는 것이 사용자들의 실제 연애에 대한 욕구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반대로 AI봇과의 대화 연습을 통해 실제 이성과의 만남에서 한층 더 능숙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등 연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강조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성과의 연애를 중단시키는 것이 러버스의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러버스 측은 오히려 해당 앱이 실제 이성 간 교제의 완벽한 대체재가 되기보다는 보완재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키 쿠스노키 사만다 최고경영자(CEO)는 “러버스는 잠시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중함을 잃었던 사람들에게 사랑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알려줄 수 있다”며 “AI봇과의 대화를 통해 감각을 키우면 실제 이성과의 만남에서 더 효율적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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