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美 초토화시킨 펜타닐...제약회사 ‘조작’서 시작됐다 [지식人 지식in]

이영욱 기자(leeyw@mk.co.kr) 2024. 8. 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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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마약을 흡입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펜타닐 같은 합성마약에 따른 7만5000여명을 포함해 지난해 전국적으로 10만7000명 이상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현재 역사상 최악의 마약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벤 웨스트호프는 지난 4월 매경 명예기자 리포트 ‘美 덮친 좀비마약 펜타닐, 韓도 안전지대 아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마약에 중독된 미국 사회의 심각한 상황을 전했습니다.

올 한해 매경 명예기자로 활동하는 웨스트호프와 중남미 지역 마약 카르텔의 실상을 파헤친 탐사보도로 이름을 알린 프리랜서 기자 데보라 보넬로가 오는 9월 제25회 세계지식포럼을 찾습니다. 두 프리랜서 기자는 ‘마약과의 전쟁’ 세션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 중독 문제의 심각성과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할 예정입니다.

기적의 진통제 펜타닐은 어떻게 중독 위기를 초래했나
기적의 진통제로 불린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의 치사량은 연필심보다 적은 양인 약 2mg에 불과합니다. 미 마약단속국(DEA) 홈페이지
1959년 얀센의 창업자 파울 얀센은 마약성 진통제(오피오이드)의 일종인 펜타닐을 개발합니다. 펜타닐은 진통제 모르핀의 50~100배에 달하는 약효로 인해 매우 강력한 약물이었습니다. 진통 효과가 탁월해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암환자,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환자, 대형 수술 환자용으로 사용됐죠. 기적의 진통제로 추앙받던 펜타닐은 곧 미국에서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맙니다. 바로 ‘펜타닐 중독’ 입니다.

펜타닐 중독 문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오피오이드 위기’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피오이드 위기는 펜타닐이 아닌 옥시콘틴 서방정(서서히 녹아 약효가 나타나는 약의 형태)이란 약에서 처음 시작됐습니다. 퍼듀파마 경영진은 말기암 환자들이 먹어야 할 진통제를 일반인들에게도 판매하기 위해 옥시콘틴을 보건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평범한 전문의약품으로 승인을 받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퍼듀파마는 마약인 옥시코돈과 달리 옥시콘틴 서방정은 통증을 잡아줄 정도로만 약물이 느리게 체내로 흡수되기 때문에 중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조작된’ 임상실험 결과를 내놓습니다. 또한 로비를 통해 의사들이 제약사에 유리한 증언을 내놓도록 만들었죠. 이 약은 중독 문제가 없다는 거짓 광고 또한 대대적으로 내보냈습니다. 한국과 같은 의료보험제도가 없어 병원비가 비싸게 나오다보니 환자들이 진통제를 먹으며 버티는 미국의 현실을 악용한 것입니다.

결국 제약사의 의도대로 시중에 마약성 진통제가 넘쳐나면서 중독자들이 급증하게 됩니다. 치료가 끝나 더 이상 처방을 받을 수 없었던 옥시콘틴 중독자들이 길거리 마약상들에게 의존하게 됐죠. 그로 인해 옥시콘틴과 같은 오피오이드계 마약 헤로인 판매가 급증하게 됩니다.

펜타닐 전구체를 만들어 수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기업 위안청이 위치한 건물. 벤 웨스트호프 촬영
소비가 생기는 곳엔 공급이 따라옵니다. 미국에서 마약 소비가 급증하자 이를 기회로 본 세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바로 거대 시장 미국으로 끊임없이 마약을 보내고 돈을 쓸어담고 있던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중국이었습니다.

마약상들은 중독자들이 찾는 가짜 옥시콘틴을 만드는 과정에서 헤로인을 사용했는데, 헤로인의 값싼 대체제인 펜타닐에 주목하게 됩니다. 펜타닐은 헤로인보다 저렴한데다 만들기 쉬웠고, 무엇보다 중독성이 더 강했습니다. 중독자들이 마약에 더 의존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다수의 마약중독자들이 마약에 취한 채 길거리를 배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중국이 마약 원료 공급” 잠입 취재로 펜타닐 문제 심각성 알린 벤 웨스트호프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벤 웨스트호프는 펜타닐 원료를 수출하던 중국 기업에 잠입 취재해 중국이 사실상 마약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을 폭로했습니다. <벤 웨스트호프>
미국의 탐사 보도 전문기자 벤 웨스트호프는 펜타닐 문제의 심각성을 취재하던 중 중국이 펜타닐 원료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웨스트호프는 펜타닐 원료 구매자로 가장해 중국 기업인 위안청 관계자에 접근할 수 있었고, 잠입 취재를 통해 위안청이 전 세계로 펜타닐 전구체(화학반응 등으로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특정 물질이 되기 전 단계의 물질) 원료를 수출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벤 웨스트호프가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간한 책 펜타닐 <벤 웨스트호프>
웨스트호프는 취재 후기에서 “펜타닐 성분과 같은 화학물질 중 일부는 미국과 같은 서구 국가에선 불법이며, 이 회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며 “위안청의 판매 사원들은 민감한 제품을 보낼 때 사용하는 가짜 포장을 보여줬다”고 밝혔습니다. 자신들의 행위가 타국에선 불법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버젓이 마약 원료를 수출해 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죠. 웨스트호프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책 ‘펜타닐’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하원의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지난 4월 ‘펜타닐 위기에서 중국 공산당의 역할’이란 보고서를 통해 “중국 정부가 세금 환급을 통해 불법 펜타닐 원료, 기타 합성 마약의 생산 및 수출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보고서는 “중국 정부는 펜타닐 원료 및 합성 마약을 공개적으로 밀매하는 기업들에 금전적 보조금과 포상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은 나름대로 마약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펜타닐 전구체 일부 판매업체를 폐쇄했습니다. 이들 업체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펜타닐 원료를 공급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중국 공안부 마약단속국은 펜타닐 전구체 단속 캠페인을 벌여 온라인 스토어 1000여개의 문을 닫게 만들었고, 미 정보기관의 도움을 받은 중국 공안은 멕시코 시날로아 카르텔의 자금세탁에 관여한 용의자를 체포했습니다.

중국의 이같은 노력은 미국과의 호의적인 관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관세, 대만 문제 등으로 미중 관계가 경색될 경우 중국이 언제든 마약 문제에 눈감을 수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죠.

마약조직 보스는 다 남성이다? 중남미 여성 마약상들에 주목한 데보라 보넬로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는 탐사보도 전문기자 데보라 보넬로는 중남미 마약조직, 그 중에서도 마약 조직을 이끈 여성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정리해 ‘나르카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데보라 보넬로>
넷플릭스 시리즈의 영향일 수도 있지만 중남미 하면 마약, 마약조직의 두목이라고 한다면 배우 와그너 모라가 연기한 콜롬비아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파블로 에스코바르를 먼저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는 탐사보도 전문기자 데보라 보넬로가 중남미 여성 마약상들을 탐사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간한 ‘나르카스’ <비컨 프레스>
15년 간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마약 문제를 집중 취재한 탐사보도 전문기자 데보라 보넬로는 중남미에서 악명을 떨친 ‘여성’ 마약 조직 거물들을 기사로 다뤘습니다. 에스코바르, 엘 차포 구즈만, 미구엘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 등 남성 마약 카르텔 보스들에 가려져 있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들인 ‘라스 나르카스(Las Narcas)’인 디그나 발레, 과달루페 페르난데즈 발렌시아, 마리사 레무스, 맬러리 차콘 등에 대해 집중 조명했죠. 보넬로는 여성 마약 카르텔 보스들도 (남성 못지않게) 야심차고, 혁신적이었으며 무자비한 인물들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보넬로 역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르카스’라는 책을 출간했죠.

보넬로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중남미의 경제사회적 문제들이 여성들을 범죄 조직에 가담하게 만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여성들에게) 조직 범죄만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지만 많은 여성들이 속한 노동자 계층, 특히 시골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다면 일자리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조직범죄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권한 그리고 지위를 부여해준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이애미, 뉴욕, 캘리포니아에서 마약 유통망을 구축한 ‘코카인 대모’ 그리셀다 블랑코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그리셀다. 데보라 보넬로는 블랑코를 비롯한 중남미 여성 마약상들에 주목했습니다. <넷플릭스>
보넬로는 올해 초 방영된 넷플릭스 시리즈 ‘그리셀다’의 주인공 그리셀다 블랑코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생전 에스코바르가 ‘내가 두려워했던 사람’이라고 언급했던 그리셀다는 1970년대 콜롬비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약 밀매에 뛰어들었으며 마이애미에서 시작해 뉴욕, 캘리포니아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코카인의 대모’로 불린 인물입니다.

보넬로는 BBC와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중남미인들은 조직 범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거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알고 있다”며 “조직 범죄는 중남미의 공공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는데, 중요한 점은 (영화나 드라마 등) 그들을 미화하는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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