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인, 동요 않는 '무심 사격'으로 금메달 '탕탕'

▲ 양지인

2024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나라 사격 25ｍ 권총 국가대표 선수들은 '쿨'하기로는 세계 최고로 꼽힙니다.

지난 5월 바쿠 세계사격월드컵 우승 당시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도 무심한 표정을 보인 영상이 화제가 된 김예지(임실군청)는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쿨한 사격 선수'가 됐습니다.

'무심 사격'으로 김예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은 선수가 양지인(한국체대)입니다.

양지인은 3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사격 25ｍ 권총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 선수단에 이번 대회 8번째 금메달을 선사했습니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그는 개인전과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개인전 결선 당시 양지인은 기계 오류로 격발 결과가 모니터에 뜨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를 확인하느라 경기가 지연됐고, 멘털은 요동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지인은 당시를 떠올리며 "내가 바꿀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고 쐈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중에 생긴 돌발 변수에도 동요하지 않은 덕분에 양지인은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었고, 이제 올림픽 무대에서까지 시상대에 섰습니다.

양지인은 스스로 성격 장단점을 '대충 사는 것'으로 꼽고, 좌우명을 '어떻게든 되겠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적을 정도입니다.

운동선수에게 지난 경기에 관한 복기는 꼭 필요하지만, 잘 안 풀린 경기를 복기하다 보면 자책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난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평정심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멘털 스포츠' 사격에서는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양지인이 처음 사격을 시작한 건 중학교 1학년 때입니다.

남원하늘중학교 재학 시절 수행평가로 사격을 경험했는데, 의외로 잘 맞아서 중학교 코치의 권유로 선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2018년에는 회장기 전국사격대회에서 공기권총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일찌감치 천재성을 보였습니다.

순조롭게 기량을 키우던 양지인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한국체대에서 교생실습을 나온 선배로부터 '더 큰 선수가 되려면 서울로 가서 화약총을 접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고향 남원을 떠나 서울체고로 진학했습니다.

권총은 10ｍ 종목까지 공기 권총을 사용하고, 25ｍ는 화약총을 쏩니다.

쏠 때마다 '탕탕'하는 소리가 주는 쾌감을 느낀 양지인은 고등학교에서 25ｍ 권총으로 주 종목을 바꿨고, 이는 최고의 선택이 됐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를 덮친 시기에 고교 생활을 한 양지인은 2021년에는 온라인 대회로 치러진 동아시아 유스 대회에 출전하며 기량을 유지했습니다.

선수는 대회에 출전해야 기량이 성장하는데, 사격 종목 특성상 온라인으로 대회를 치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처럼 성장을 거듭하던 양지인은 2022년 한국체대에 입학했고, 2023년에는 성인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1년 연기돼 2023년에 치러진 건 양지인에게 행운이었습니다.

2022년 치른 아시안게임 대표선발전에서는 뽑히지 못했지만, 2023년 국가대표 선수에게도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주면서 태극마크를 달게 된 겁니다.

김예지가 25ｍ 권총 결선 42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울 당시 종전 기록 보유자는 바로 양지인이었습니다.

양지인은 올해 1월 아시아선수권대회와 5월 사격 월드컵에서 두 차례 결선 41점으로 세계 신기록과 타이기록을 수립했습니다.

양지인은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쿨한 사수'가 누구인지 증명하고 시상대 꼭대기에 섰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박재연 기자 mykite@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