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피어난 스포츠맨십…‘각본 있는’ 올림픽 영화가 주는 울림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2024. 8. 3. 1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영화의 바이블부터 ‘태극마크’의 감동까지

(시사저널=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역시, 전투 민족!" 2024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총(사격)·칼(펜싱)·활(양궁) 금빛 신바람이 이어지자, 온라인에 쏟아지고 있는 우스갯소리다. 개막 나흘 만에 목표치인 금메달 5개를 세 종목으로 모두 달성했으니, 설득력이 꽤 있는 말이긴 하다. 대한민국 대표팀뿐 아니라 세계 각국 선수들이 최고 자리를 두고 자신과의 싸움을 펼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승자의 손을 번쩍 들어주는 패자의 모습 등은 올림픽 정신의 가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0.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고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를 보며, 각본 있는 '올림픽 영화'들을 돌아봤다.

영화 《불의 전차》의 한 장면 ⓒ(주)라이크콘텐츠 제공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1)

올림픽 영화 최고봉이자, 스포츠 영화의 바이블로 꼽히는 작품. 제8회 파리올림픽(1924) 육상 금메달리스트 '해롤드 에이브라함'과 '에릭 리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그러고 보니 배경도 파리올림픽이다. 주인공 해롤드(벤 크로스)와 에릭(이언 찰슨)은 영국 육상 대표선수. 출신 배경도 성격도 다른 해롤드와 에릭에게 강한 교집합이 있다면 그것은 강한 신념이다. 그들은 세속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달린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온 해롤드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에릭은 신앙을 위해 달린다.

자신이 믿는 신념 아래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두 선수의 이이기는 '스포츠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절묘하게 보여주며 호평받았고,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의상상 그리고 음악상 등 4개 부문 수상으로 이어졌다. 음악이 주는 감동도 확실한 작품이다. 주제곡 《체리어츠 오브 파이어(Chariots of Fire)》는 위대한 영화 음악 중 하나로 평가받는 곡. 작곡가 반젤리스를 세계적인 음악가 반열에 올리기도 했다. 무슨 음악인가 궁금하면, 관련 OST를 찾아 들어보시라. 올림픽 때마다 방송국들이 틀어주기에 분명 "아, 그 음악?" 할 거다. 반젤리스는 2002년 한일월드컵 테마곡 《앤섬(Anthem)》을 작곡하기도 했다.

영화 《올림피아》 포스터 ⓒ위키피디아 제공

《올림피아》(Olympia, 1938)

올림픽에 선수들의 경쟁과 열정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이름 뒤로 외교와 스폰서와 미디어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몰려드는 곳이 올림픽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이번 파리올림픽 최대 수혜주는 삼성이 아닐까 싶다.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이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직접 기념사진을 찍는 '빅토리 셀피' 순서가 공식적으로 마련됐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영화적으로 가장 논쟁적인 다큐멘터리도 올림픽과 관련이 있다. 1938년 4월20일 히틀러 생일에 공개된 《올림피아》(1938)가 그것이다.

리펜슈탈이 연출한 《올림피아》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경기 장면을 촬영한 기록영화. 독일 민족의 우수성과 체제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한 선전 도구로서의 영화였다. 아이러니(?)는 영화가 보여준 미학적 성취가 너무 훌륭했다는 것이다. 양립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예술성과 선정성을 동시에 아우른 문제작이랄까. 그래서 《올림피아》엔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다. '저주받은 걸작'. 참고로 이 다큐는 우리에게도 각별한데,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경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여서다. 손기정의 꿈이 히틀러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선전영화를 통해 영원으로 기록됐다는 것. 이 역시 역사와 올림픽이라는 축제가 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영화 《뮌헨》의 한 장면 ⓒ왓챠피디아 제공

《뮌헨》(Munich, 2006)

경찰 4만5000명, 군인 1만 명, 민간 경호원 2만2000명, 이번 파리올림픽 기간 내, 파리 시내 주요 랜드마크에 배치되는 인원이다. 올림픽은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는 축제지만, 테러 위험과 국제사회의 예민한 사안들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실제로 올림픽 역사에는 테러의 흔적이 강하게 새겨져 있다. 1972년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인 '검은 9월단'이 뮌헨올림픽에 참가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을 살해한 '뭔헨 참사'가 그것이다.

당시 선수단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들이 요구한 건, 이스라엘에 투옥 중인 234명의 팔레스타인 죄수 석방이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30분 간격으로 인질을 죽이겠다는 협박은, 이스라엘이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자 인질 전원 살해라는 비극으로 끝났다.

전 세계 TV를 통해 생중계된 이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이는 유대인인 스티븐 스필버그다. 《뮌헨》에서 스필버그는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를 죽인 팔레스타인 그룹에 대한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의 복수극을 그린다. 유대인 감독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뤘으니, 이스라엘에 유리한 시선이 담겼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스필버그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감독이 아니다. 오히려 스필버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응징 방법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가자지구 전쟁이 10개월째 이어지는 상황에서, 스필버그의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한 장면 ⓒ싸이더스 제공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약팀이라고 늘 지라는 법 없고, 강팀이라고 이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스포츠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쓴다. '공은 둥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명승부를 펼친 여자 핸드볼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공이 둥글다'는 표현이 더없이 어울리는 작품이다.

영화의 모티브였던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은 소집부터 난항이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일당 2만원, 대부분이 노장, 실업팀도 5개밖에 없었던 터라 은퇴한 선수들을 불러들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약체라는 평가가 쏟아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투혼을 발휘하며 결승까지 진출하더니, 실업팀 1035개를 보유한 핸드볼 세계 최강 덴마크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그리고 열아홉 번의 동점 끝에 연장전-재연장전-승부 던지기를 거치는 접전을 펼쳤다. 비록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결과를 떠나 혼신을 다한 투혼이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보여준 명경기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이 경기를 최고 명승부로 선정했다.

최약체로 평가받은 핸드볼팀만큼이나, 영화 《우생순》 역시 용감한 기획으로 평가받은 영화다. 흥행이 안 된다고 알려진 스포츠 영화에(《우생순》 흥행으로 이후 스포츠 영화들이 기획되기 시작했다), 여성 영화라는 점에서 그 누구도 흥행을 점치지 않았다. 그러나 400만 관객을 흡수하며 핸드볼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 단체 구기 종목은 여자 핸드볼이 유일하다. 대한민국 핸드볼 대표팀, 파이팅!

영화 《킹콩을 들다》의 한 장면 ⓒ(주)NEW 제공

《킹콩을 들다》(2009)

다시 한번 손기정 이야기. 일장기를 달고 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오르고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설움을 쏟았던 마라토너 손기정의 서사는 많이들 아는 올림픽의 역사다. 

그렇다면 해방 후,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종목은 무엇이었을까. 정답은, 역도다. 고(故) 김성집 대한체육회 고문은 KOREA라는 국호를 달고 출전한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의 존재를 알렸다.

역도를 소재로 한 영화 《킹콩을 들다》는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2000년 전국체전에서 총 15개 금메달 중에서 14개를 차지한 시골 고등학교 역도부 이야기가 각색됐다. 영화는 88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둔 후 단란주점 웨이터를 전전하던 이지봉(이범수)이 '장성여자중학교' 역도부 코치로 오면서 시작된다. 코치와 아이들의 성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영화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으로 달려 나간다. 2008 베이징올림픽은 장미란과 사재혁이 동시에 금메달을 따내며 한국 역도의 전성기를 연 대회이기도 하다.

2012 런던올림픽부터 한국 역도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이를 뒤집을 역전 드라마가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펼쳐질지 기대가 크다. 그 중심에 있는 건 '포스트 장미란'으로 평가받는 81kg 이상급의 박혜정이다. 박혜정을 비롯한 역도 대표팀이 킹콩을 거뜬하게 들어올리길. 

그리고, '총·칼·활' 영화

앞서 전투 민족을 언급한 게 무색하게, 총·칼·활을 소재로 한 올림픽 영화는 없다. 그러나 활이 주는 쾌감을 100% 활용한 영화가 있으니, 박해일이 조선의 신궁으로 출연한 《최종병기 활》(2011)이다. 이 분야에서 함께 거론될 또 다른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이다. '괴물 잡은 궁사' 남주(배두나)의 활시위가 어찌나 박력 넘치는지! 영화보다 드라마가 좋다는 주몽의 후예들에겐 송일국 주연의 《주몽》(2006)을 추천한다.

총을 활용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방탄유리마저 뚫었던 《아저씨》(2010)의 아저씨(원빈)부터 살인 병기로 길러진 《악녀》(2017)의 숙희(김옥빈)까지 다양한 명사수가 있으니 취향대로 골라 보길. 국내 영화 중에 펜싱검을 활용한 영화는, 아무리 쥐어짜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그냥 오상욱 주연의 펜싱 영화 추진은 어떨까. 180도 다리찢기부터 실력에 매너까지, 모든 게 '영화적'이었으니까.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