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하는 바가 명확했기에 모형 생활을 지금까지 꾸준히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단순히 만듦과 완성이 목표였으면 금방 질렸을 것 같거든요.” - 유승용
동서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자 에어로 모델러인 ‘유승용’ 작가는 대한민국 공군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누구보다도 큰 모델러입니다. 한국 최초의 전투기 ‘F-51D 머스탱’을 시작으로 최신예 전투기에 이르기까지 모형으로 제작해 나아가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공군 특수비행팀
“대한민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세계적인 에어쇼 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 공군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해왔어요.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블랙이글스’가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봐야죠.“
“한국공군 최초의 전투기 ‘F-51D 머스탱’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공군이 미국으로부터 인수해 최초로 운용한 전투기로 대한민국 공군력 근대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전투기예요. 1953년 10월 1일 경상남도 사천 비행장에서 F-51D 4대로 선보인 최초의 특수비행이 블랙이글스의 시작이라 볼 수 있어요.”
“‘T-33A 쇼플라이트팀’은 55년 8월 ‘T-33A 슈팅스타’를 훈련기로 도입해 기초곡예비행훈련을 하고 잠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제10전투비행단장의 지시로 공식적인 정식 훈련을 시작하게 돼요. 그렇게 훈련한지 1년 만에 미국 곡예비행팀이 선보이는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성공리에 곡예비행을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56년 ‘T-33A 쇼플라이트팀(Show Flight Team)’이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특수비행팀 항공기의 제트화 시대를 열게 되는데 59년을 마지막으로 ‘블루세이버팀(Blue Sabre Team)’이라는 새롭게 창설되는 특수 비행팀에 임무를 넘겨주게 되죠.”
“‘F-86F 세이버(Sabre)’으로 구성된 ‘블루세이버’는 59년부터 66년까지 총 8년간 특수비행을 선보이게 됩니다. 대한민국공군 ‘제10전투비행단’과 ‘제11전투비행단’이 교대로 특수비행팀을 편성하여 운용됐는데 서로 다른 비행단에 동일한 블루세이버팀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체 도장과 마크, 행사복 등이 연도별로 다르고 기체도 F-86F의 블록 30형, 40형이 혼재되어 편성되어 있는 점도 주된 특징입니다.”
“66년을 마지막으로 기종을 ‘F-5A’로 전환하면서 팀명을 ‘블랙이글스’로 바꿔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는데 66년까지는 행사가 있을 때만 조직되었던 특수비행단이 ‘상설 특수비행’팀으로 운영이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예요.”
“미국에서 개발된 경량 전투기로 66년부터 78년까지 블랙이글스를 이끌었던 기종인데 가벼운 무게와 기동성으로 곡예비행팀에 적합한 기종이었어요. ‘F-5A’형 블랙이글스 창단 기체인 1966형, 69년형, 73년형, 77년형을 모형으로 제작했습니다. 이후 78년부터 블랙이글스 활동이 잠정 중단되면서 F-5 블랙이글스도 역사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94년 기종을 ‘A-37B’로 교체한 ‘블랙이글스’가 재창설하게 되는데 소형이지만 기동성이 뛰어나 고이도 곡예비행을 선보이며 13년 동안 블랙이글스와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기체의 노후화로 추락과 인명사고가 발생하자 2007년에 공군의 모든 A-37이 퇴역하면서 블랙이글스도 또 다시 활동을 중단하게 되죠.”
“2년의 공백을 깨고 새로운 도장으로 나타난 블랙이글스의 주인공은 ‘T-50B 골든 이글‘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T-50의 도장을 공군이 몇 가지 후보를 내놓고 설문조사, 국민공모로 선정되게 되었어요. 국내 기술로 제작한 세계 12번째 초음속 훈련기인 ‘T-50’의 존재는 대한민국 공군의 큰 의미이죠.”
역사 속 항공기들의 매력에 빠지다
“3.1운동 이후, 1920년 2월 샌프란시스코 북쪽 ‘윌로스 비행학교’에서 ‘독립군 공군 양성’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수십 명의 한인 청년들이 이곳에서 비행사 훈련을 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2명을 비행 장교로 공식 임관시켰다는 기록이 최근 드러났어요. 당시 사진 자료에 담긴 비행기에 새겨진 K.A.C가 ‘Korean Air Corps’로 추정된다 합니다. 20년 4월 독립신문에 최초의 조종사 6명이 탄생했다는 보도와 함께 약 40명의 조종훈련생 이 미국에서 양성되고 있다는 기사를 근거로 하고 있어요.“
“모형으로 구현할 당시 정설이 ‘JN-4D’기체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에 밝혀지길 ‘스탠더드 J-1’이라는 기종이라고 확인됐어요. 키트로 발매된 것이 없어 3D모델링 과정을 거쳐 향후 제작할 계획입니다. 아마 이때부터 한국공군 시리즈 복원을 목표로 삼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
“1922년 12월 10일 5만 명의 구경꾼이 한겨울 추위에도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보기 위해 여의도 비행장에 모여듭니다. 이때 조종했던 비행기에는 조선의 13개 도를 상징하는 한반도 그림과 금강산이 그려져 있었고 ‘금강호’라는 명칭이 한자로 써있었어요. 일본 오쿠리비행 학교의 창고에 버려졌던 여러 부품을 모아 조립해 안창남이 만든 거예요.”
“키트를 구할 수가 없어 1/48 ‘뉴포르16’버전을 15버전의 기체로 다운그레이드 시키며 작업을 시작했었어요. 동체 조립보다 더 어려웠던 부분은 기체 전반의 도색과 데칼(스티커 일종) 부분의 고증과 구현이었는데 사진 자료가 명확하지 않아 실제적인 기체와 비례가 애매해 개인적 판단이 많이 반영됐어요. 현재 ‘국립항공박물관’에 모형이 전시되어 있어요.”
“독립 후 일본군 육군 항공대나 중국군 공군 출신 항공인들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을 꾸준히 추진했다는데 당시 비행기도 한 대 없고 육군 소속의 항공기지 부대만 있었을 때였어요. 48년 9월 미 육군 7사단 항공대로부터 ‘L-4’ 부품 10대분을 인수해 서울 여의도 비행장에서 3일 만에 조립하고, 이를 기념하고자 전시비행을 하게됩니다.”
“‘L-4 정찰기’는 빈약한 항공기였지만 공군이 창설되기까지 ‘여순사건’,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 등 지원작전을 수행했고 ‘L-5’의 경우는 항속거리 미달로 임무 수행이 어려워진 L-4를 대처하고자 미군으로부터 2대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후 대한민국 공군은 L-4, L-5항공기를 기반으로 창설하게 되는데 정치적 갈등 속에서 군내 암약하던 좌익에 의해 48년 L-4 한 대, 49년 L-5 한 대가 월북하는 사건도 있었어요.”
“6.25전쟁이 발발하고 무장이 없던 관측.정찰기였던 L-4, L-5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후방석에 앉은 정비사가 폭탄을 창 밖으로 던지는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작고 왜소하지만 한국 공군의 역사의 한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중요한 항공기였고, 공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존재이기에 해당 모형 제작을 하게 되었죠.”
“6-25전쟁이 정전상태로 끝나고 모든 것이 피폐한 상황에서 공군은 공군기술학교 교관진이 중심이 돼 우리만의 항공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1953년 항공기 설계 제작 실습 및 훈련기로 제작된 ‘부활호’의 탄생입니다. 당시 이름도 없는 상태에서 제작된 ‘부활호’는 훈련기와 연락기로 사용되다가 1954년 4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 ‘부활‘이라는 휘호를 하사해 ‘부활호’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부활호 모형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를 오래전부터 수집해왔는데 관련 업계의 지인으로부터 입수한 당시 외형 도면을 기초로 3D 프린터를 활용해 출력해 완성했습니다.”
모형이라는 취미
“지금 까지 100대 이상은 만들었어요. 한창 만들 때는 1년에 한 25대 만든 적도 있었죠. 요즘은 그렇게는 못 하고 한 달에 하나 정도는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처음에는 다작했다면 지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에 더 디테일을 신경 쓰면서 제작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만 꾸준히 즐기는 사람들은 많진 않아요. 맛만 보고 접고 좀 어렵다 싶으면 이건 내 취미가 아니라 생각하고 접는데 , 취미를 취미로 즐겨야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거죠. 완벽하게 만들고는 싶은데 중간 과정을 거치기는 힘들고, 그 중간을 많이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특히 스케일 모형쪽이 고증을 따져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더 그래요.”
“고증이 틀린 작품이면 틀린 대로, 망가지면 망가진 대로 경험치가 쌓여 가는 건데 그것 때문에 취미생활 하다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 보면 안타깝죠. 중요한 건 본인이 지향하는 방향이 명확해야 모형 생활도 발전하고 재밌어지는것 같아요.”
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
“국방일보에 ‘모형으로 만나는 항공기 세상’을 제목으로 연재했었어요. 대한민국 공군 초창기 기종부터 히스토리를 다 쓰고 싶었는데 F-86까지밖에 못 쓰고 연재가 종료됐어요. 60년대 초반까지죠. 개인적인 욕심으로 우리나라 모든 항공기를 풀셋을 만들어 ‘대한민국 공군 항공기’의 역사를 제대로, 대한민국 공군, 육군, 해군, 해병대에서 운영했던 모든 항공기를 다 만들고 정리하는 게 목표예요.“
“물론 키트가 다 있는 건 아닌데 요즘은 3D프린터 퀄리티가 너무 좋아져서 키트가 없더라도 만들어지더라고요. 이렇게 수단이 좋아졌으니 계획대로 책을 집필해 볼 생각입니다. 당연히 모형 제작과 함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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