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36년 동안 36명이 일궈낸 ‘올림픽 신화’

김경무 스포츠 칼럼니스트 2024. 8. 3. 1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양궁 여자단체 10연패의 무게…“전 종목 통틀어 불멸의 최고기록 중 하나”

(시사저널=김경무 스포츠 칼럼니스트)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근대올림픽에선 숱한 영웅이 명멸했다. 그리고 33회째를 맞은 2024 파리올림픽에선 양궁 종목에서 새로운 불멸의 대기록과 별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양궁 여자대표팀 삼총사 전훈영(30·인천시청)-남수현(19·순천시청)-임시현(21·한국체대)이다. 이들은 양궁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누르고 이 종목 10연패 고지에 오르며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스포츠 전문가들에 따르면, 역대 하계올림픽 단체종목(구기 포함)에서 10연패 달성 기록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이 육상 남자 장대높이뛰기에서 1896년 1회 대회부터 1968년 멕시코시티대회까지 무려 16회 연속 금메달을 가져갔고, 이는  최다 연속 우승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종목이다. 단체종목의 10연패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난 36년 동안 총 36명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프랑스 파리에서 쏘아올린 한국 양궁의 여자단체전 10연패. 그 가치는 여느 올림픽 정식종목을 막론하고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미국이 수영 남자 4×100m 혼계영에서 2020 도쿄올림픽 때 10연패를 이룬 적이 있고 이번에 11연패를 노리고 있다.

그동안 스포츠 관련 책을 32권이나 저술한 스포츠 평론가 기영로씨(70)는 올림픽 10연패의 가치와 관련해 "3명이, 아니 거의 40년 동안 36명이 다 잘해서 이룬 것으로, 양궁 세계 최강 코리아를 다시 한번 입증한 쾌거다. 올림픽 역사상 불멸의 최고기록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것은 앞으로도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11연패를 넘어 그 이상도 가능하다.

7월28일(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 중국과의 결승에서 전훈영의 슈팅을 임시현과 남수현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절체절명의 순간 드러난 세계 최강 저력 

영광의 순간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두 번이나 패배 직전까지 가는 등 절체절명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경험이 전무한 삼총사는 보란 듯이 고비를 넘기며 대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7월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 특설 양궁장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결승. 4세트까지 한국과 중국이 4대4로 동점을 기록해 실시된 슛오프(Shoot off). 

한국팀 마지막 선수로 나선 임시현이 쏜 이번 결승전 마지막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70m를 날아 과녁에 꽂혔다. 화살은 10점과 9점을 가르는 동그라미선 부근에 애매하게 걸쳤다. 10점 같기도 했고 9점 같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 쪽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금메달, 금메달". 최종 확인이 필요한 순간. 초조하게 수십 초가 흘렀다.

한국은 첫 번째로 나선 전훈영이 임시현처럼 9점인지 10점인지 불분명한 점수를 만들어냈고, 두 번째로 나선 남수현은 9점을 쐈다. 중국은 3명의 선수가 8-10-9점을 잇따라 쐈다. 경기 후 전광판에도 두 팀 합계 점수가 27-27로 찍혀 있었다.

전훈영과 임시현의 점수는 10점이 아닌 9*라고 새겨져 있었고, 판정관의 과녁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그리고 결국 모두 10점 인정. 한국은 29-27로 슛오프에서 앞서며 극적으로 금메달의 감격을 맛봤다. 방송해설자로 나선 한국 여자 양궁 레전드 기보배는 "정말 믿기지 않는 순간"이라며 감격했다. 5대4의 통쾌한 승리였다.

7월28일(현지시간) 2024 파리올림픽 양궁 여자단체전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대표팀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불신·우려 딛고 완성한 대업

3년 전 1년 연기돼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강채영(현대모비스), 장민희(인천대), 안산(광주여대)이 러시아(ROC)를 결승에서 6대0으로 완파하고 여자단체전 9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선수들에 대해 "웃는 얼굴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제압했다"고 평가했다. 

이들 3명은 그러나 이번에 출전할 수 없었다. 이들조차도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힘든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양궁의 저변과 경쟁력이 강했기 때문이다.

애초 10연패를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감에다, 한국 지도자를 영입한 중국 등 다른 나라가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파리올림픽에서 앞서 한국 양궁계에선 불안한 시선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3명의 경우 올림픽 경험 부족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항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임시현은 건재했고, 30세의 노련한 전훈영, 10대인 남수현도 보란 듯이 잘 버텨줬다. 

대한양궁협회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슈팅 로봇과 선수들의 대결로 경쟁력을 높였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대표팀 선발의 공정성이 양궁 강국 코리아의 원동력이다.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이 6~7개월에 걸쳐 수천 발을 쏘는 1~3차 국가대표 선발전, 그리고 최종 두 차례 대표팀 평가전에서 탈락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번 쾌거를 일궈낸 삼총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임시현 빼고 2명은 곡절이 적지 않았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임시현은 지도자의 피드백을 변명 없이 수용하는 게 장점이다. 스펀치처럼 흡수하는 훈련 태도는 성장 속도에 날개를 달게 했다. 어지간해서는 긴장하지 않는 강심장 소유자로도 알려졌다.

중국과의 슛오프에서 두 팀 마지막 선수로 나서 10점을 쏜 것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174cm 훤칠한 키와 팔다리 소유자로 양궁선수로서 더없이 좋은 신체조건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활의 장력도 42파운드로, 보통 여자선수들의 평균 38~40을 넘는다.  

맏언니 전훈영은 중학교 때부터 될성부른 떡잎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때 불운을 겪었다. 대표팀  선발전을 어렵게 통과했으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회가 연기돼 나가지 못했다. 1년 후 다시 치러진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파리행 대표팀 선발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막내 남수현은 국가대표 상비군 첫해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선수였다. 지난해까지 국가대표 후보였다. 그러나 대표팀 최종 선발전에서 4위에 고작 1점을 앞서며 파리행 막차를 탔다.

불멸의 올림픽 기록…미국 남자농구 7연패

한편, 역대 하계올림픽에서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시작된 남자농구에서 미국이 7연패로 구기 종목 사상 연속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그때부터 1968년 멕시코시티까지 금메달을 모두 가져갔다. 57전 57승.

그러나 1972년 뮌헨올림픽 때  결승에서 당시 소련에 50대51로 패하면서 대기록 행진이 중단됐다. 당시에는 그 유명한 '3초 사건'이 있었다. 미국이 50대49로 경기를 끝내며 8연패를 확정하는가 싶었으나, 국제농구연맹(FIVA) 사무총장과 심판들이 소련에 3초의 공격을 더 주면서 경기가 뒤집힌 것이다. 

탁구에서는 중국이 여자단식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부터 도쿄올림픽까지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안고 9연패를 달성한 바 있다. 이번에 세계랭킹 1위 쑨잉샤가 금메달을 따내면 10연패 고지에 오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남녀 단체전에서는 중국이 각각 4연패를 달성했고, 이번에 5연패를 노리고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