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판매, 전체적으론 ‘주춤’, 이유를 따져봤다 [ESC]
중, 주행거리 늘어난 PHEV 인기
독, 보조금 폐지·전기료 인상 악재
연일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오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으로 기후변화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이 많다. 올해 초 유엔(UN) 산하 세계기상기구(WMO)가 발표한 ‘2023 기후과학 합동보고서’에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의 8년은 기상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온도가 높은 기간이라고 한다. 1850~1900년과 비교해 기온이 1.18도 상승(2023년 상반기 기준)했는데, 인간에 의한 인위적 상승분이 1.14도라고 한다. 지금의 고통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세계적 경기 침체와 고금리 요인
세계적으로 화석연료를 태워 나오는 이산화탄소 중 약 24%가 수송 부문에서 만들어지고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 중에서도 45%다. 결국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자동차에서 나오는 건 10.8%다. 이를 줄이기 위해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을 대체해야 하는데 전기차 판매량은 주춤하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 통계를 제공하는 로모션은 올해 상반기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약 700만대로 지난해 상반기(580만대) 대비 20% 정도 성장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 약 40%를 기록했던 성장률의 절반 수준이고, 국가·지역별로 판매 증가율 변화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감소세는 작년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가장 큰 원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6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최신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의 성장률이 각각 3.2%와 3.3%가 되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평균 3.5%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기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으로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전기차에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또 미국 5.5%, 영국 5.25%, 유럽 4.25% 등 주요 국가의 고금리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해 1월부터 3.5%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준금리와 함께 높아진 소비자물가 때문에 실질구매력이 정체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역시나 전기차에는 불리한 환경이다.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410만대를 팔아 전년 대비 30%가 늘었다. 6월에만 34만대를 판 비야디(BYD)의 역할이 컸다. 특히 중국에서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가 전체 판매의 41%를 차지하며 크게 늘어났다. 여러 회사들이 새 모델을 출시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 것이 특징이다. 특히 배터리 용량을 키워 전기로 달릴 수 있는 거리를 100㎞ 이상으로 크게 늘린 주행거리 연장형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순수 배터리 전기차에 비해 충전시간이 짧다는 장점과 함께 충전하지 못했더라도 차에 달린 내연기관이 발전기 역할을 할 수 있어 불안함을 줄인 것이 장점이다.
두번째로 큰 시장인 유럽연합과 영국은 150만대가 팔리면서 전년 대비 1% 증가에 그쳤다. 그 전해 증가율은 17.4%였다. 유럽 최대 자동차 판매국인 독일에서 전년 대비 8% 감소한 게 결정적이었다. 지난해 12월 독일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코로나19 대책 예산 중 600억유로(약 85조4000억원)를 기후변화대책기금으로 전용한 것을 위헌으로 판단하며 전기차 보조금이 사라지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전기요금이 올라간 것이 원인이다. 반면 보조금 축소에도 프랑스와 영국은 각각 8%, 13%가 늘었고, 새로운 인센티브 프로그램이 도입된 이탈리아는 6월에만 2만대의 전기차가 팔렸고 하반기에는 판매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올해 상반기에 80만대가 판매되며 10%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1년 전(55% 증가)과 비교하면 역시 성장세가 둔화했다. 시장 점유율이 높은 테슬라 차량 판매가 주춤하는 사이, 1분기 대비 2분기에 지엠(GM)은 34%, 포드는 17%나 판매량을 늘렸다. 특히 지엠은 멕시코 공장에서 쉐보레 블레이저와 이쿼녹스 등 대중적인 전기차 생산을 크게 늘리면서 판매를 끌어 올렸다. 혼다도 새로운 전기 스포츠실용차(SUV)를 내놓으며 소비자 요구를 채워줄 차량이 늘고 있어 전망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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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필요한 국산 전기차 모델
우리나라는 지난해 상반기 7만8404대의 전기차가 팔렸지만 올해 6만5451대가 등록되어 약 17%가 줄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전기차 판매가 지난해 상반기 6만2758대에서 3만3388대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다. 같은 기간 동안 수입차는 1만5268대에서 2만8021대로, 현대차그룹이 아닌 다른 국산 전기차 판매는 1만5646대에서 3만2063대로 크게 늘었다. 현대차 전기차의 부진은 그동안 국산 전기차 판매를 이끌어온 아이오닉5와 기아 이브(EV)6의 신선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두 차종은 모두 2021년 상반기에 출시되었는데 2022년에 5만2251대가 팔렸지만 3년 차가 된 지난해엔 3만3655대로 확 줄었다. 대부분의 자동차는 출시 후 판매가 증가하다가 3~4년 차에 판매량이 떨어질 때쯤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으며 반전을 꾀한다. 실제로 구형 아이오닉5는 올해 4월까지 2065대가 팔렸으나 신형인 더 뉴 아이오닉5가 5~6월 두 달 동안 4835대가 팔리며 다시 회복세로 돌아서긴 했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2024년 세계자동차소비자 조사 결과는 전 세계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 이유 중에 낮은 연료비용과 정부 보조금, 낮은 유지비용 등 경제성이 핵심임을 보여준다. ‘실질적인 이득’이 있어야 전기차를 산다는 것이다. 또 내가 원하는 브랜드와 차종에 전기차가 없으면 굳이 구매할 사람은 없다. 이 조건이 충족될 때 전기차가 더 많이 팔린다는 말이 된다. 하반기가 되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다양한 전기차들이 출시되면 판매량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기차를 타라고 강제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확하게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전기차가 더 팔려야 하는 당위성은 분명하다. 자동차 제조사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 만한 다양한 전기차를 내놓고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자동차생활’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여러 수입차 브랜드에서 상품기획, 교육, 영업을 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다양한 글을 쓰고, 자동차 관련 교육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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