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과서 준비 됐나" 학생 볼모로 삼은 세계 최초란 굴레
내년 3월 디지털 교과서 도입
2028년까지 단계적 전환 예정
도입 반대 목소리 갈수록 커져
AI 서비스 활용해본 교사 적어
현재 도입 8개월 앞뒀는데
디지털 교과서 시스템 미비
교과서도 아직 공개하지 않아
관리 시스템 하반기에 시범운영
지난해 교육부는 2025년 1학기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공교육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는 건 세계 최초다. 하지만 도입을 8개월여 앞둔 지금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교육부가 디지털 교과서를 제대로 운영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서다. '세계 최초'에 매몰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PC 또는 앱으로 교과서에 로그인한다. 학교와 학년에 맞는 교과서가 나열된 '내 서재'가 첫 화면에 뜬다. 원하는 교과서를 클릭하면 '뷰어'로 연결된다. 교과서 중간중간엔 동영상 자료 또는 퀴즈가 있다. 증강현실(AR)과 같은 실감형 콘텐츠도 시청할 수 있다.
단체 활동 땐 디지털 교과서에 있는 공유 기능을 활용한다. 자료를 한번에 내려받고 피드백을 공유할 수 있다. 학생들의 퀴즈 응답과 과제 활동도 저절로 기록돼 공유된다. 인공지능(AI) 기능은 학생별 맞춤형 교육을 도와준다. 학생은 AI 챗봇에 궁금한 내용을 맘껏 물어볼 수 있다. AI는 학생의 과제에 피드백을 해주며 학생별 학습 이해도를 파악한다.
이 이야기는 가상이 아니다. 학습 콘텐츠를 디지털 기기로 제공하는 '디지털 교과서'의 구현 사례다. 교육부는 2025년 1학기부터 이런 기능을 갖고 있는 디지털 교과서를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대상은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2028년까지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하는 학년과 과목을 조금씩 늘리겠다는 게 교육부의 방침이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의 AI 서비스를 활용하면 학생별 교육이 가능해져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 계획 자체에 의문을 갖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거다. 지난 6월 기준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재검토하라"는 내용의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한 이들의 수는 5만6000명을 돌파했다.
특히 학부모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에 더 의존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이미 학교 바깥에서 스마트폰을 온종일 사용하고 있는데 학교에서도 디지털 기기를 사용해야 하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교과서를 제대로 운영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도입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초'에 매몰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공교육 교과서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건 한국이 최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보다 일선 교사 중 AI 기반의 학습에 익숙한 이들이 많지 않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교사 1000명 중 62.1%가 AI 서비스를 수업에 활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그중 40.8%는 AI 서비스를 들어봤지만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21.3%는 AI 서비스 자체를 "들어본 적 없다"고 답했다.
또 다른 문제는 디지털 교과서의 실체가 아직도 모호하단 거다. 시행을 8개월 앞둔 지금까지 디지털 교과서는 베일에 싸여 있다. 검정심사가 끝나는 11월에야 공개된다. 교육부의 계획상 당장 내년에 시범 도입하는데, 일선 교사와 학생들은 디지털 교과서를 접해보지 못했다. 지난 7월 '교실혁명 선도 교사' 연수 과정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했다지만 '프로토타입(시험용·prototype)'에 불과했다.
디지털 교과서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 관리를 전담하는 '디지털 튜터', 네트워크 품질을 점검하고 오류가 발생할 시 조치하는 '기술지원기관(테크센터)'도 올해 하반기 시범운영한다. 이러다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벌이는 촌극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특수교육 학자인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교육부 방침대로 내년 학교 현장에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면 적어도 현시점에선 상당한 수준의 장단점 분석을 마쳤어야 한다"며 "디지털 교과서가 과연 종이 교과서보다 효과적인지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숙의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고 꼬집었다.
교육 전문가의 목소리도 비슷하다. 한정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AI 기반 맞춤형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현장 교사와 학생들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명확한 안내와 연수가 필요하다"며 또한 "디지털 기기 과의존, 디지털 윤리 문제와 같은 부작용을 예방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교육이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부재하면 '디지털 약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교육 분야도 마찬가지다. 김병찬 경희대 교육대학원(교육행정) 교수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해선 철저한 연구과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교육 주체들 사이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최소 1~2년의 교원 연수와 시범사업을 실시한 다음 문제점을 보완해 전면 도입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준비 없는 정책은 언제나 부작용을 남기고, 그 피해는 정책 대상자가 감당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의 대상은 학생이다. '세계 최초'라는 디지털 교과서 정책은 이대로 괜찮을까.
조서영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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