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6위, 그러나 아이들 절반은 운동하지 않는 나라[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이미지 기자 2024. 8. 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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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임종훈-신유빈 선수가 혼합복식 동메달전 경기를 치르고 있다. 뉴시스
2024 파리 올림픽이 한창이다. 3일 현재 한국은 금메달 8개 등을 수확해 전체 순위 6위라는 높은 성적에 올라 있다. 올림픽 때면 TV에서 정말 다양한 스포츠 종목을 만날 수 있다. 스포츠부와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덕에 한국 선수들이 출전한 경기를 예선부터 지켜봤다. 경기 결과나 결승전만 볼 때는 몰랐던 많은 종목 국내 최고 선수들의 분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대표단은 144명으로 그 종목은 22개나 된다. 축구, 배구 등 주요 구기종목이 출전에 실패한 걸 감안하면 전체 32개 종목의 거의 대부분에서 선수를 낸 셈이다.

이렇게 올림픽만 되면 여러 스포츠가 TV를 장식하는데 정작 우리 생활에선 이런 스포츠를 반의반도 볼 수 없다. 종목은 물론이거니와 운동하는 사람 자체가 적다. 특히 한창 잘 먹고 뛰어놀아야 할 성장기에 주기적으로 운동하거나 운동을 배우는 청소년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방학인데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도 썰렁하다.

청소년수련관에서 국궁체험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뉴시스
● 韓 청소년, 권장운동량 못 채운 비율 94% ‘세계 꼴찌’

지난해 독일에 출장 갔을 때다. 취재처를 찾아가는 길에 비가 내려서 잠시 눈에 보이는 시설 안으로 들어갔다. 지도를 보니 청소년 체육시설이었다. 3월 말이었는데 방학인지, 학기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고등학생 같아 보이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독일은 생활체육이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동네마다 자생적으로 생긴 스포츠클럽이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도 많다. 운동을 접할 기회가 잦다 보니 독일 주재원 가운데는 사오십 평생 안 해본 운동을 독일 가서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평일에 학생들로 붐비는 체육시설을 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다.

반면 우리는 어떨까. 청소년 대상 체육시설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평일엔 청소년들로 북적대기 쉽지 않다. 남자아이들 중엔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친구들과 모여 자주 운동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주일에 2~3회 30분 이상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는 청소년은 손에 꼽을 것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146개 국가 11∼17세 학생들의 운동량을 비교한 결과 권장 운동량을 채우지 못한 비율이 한국에서 94%로 가장 높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3년 일주일에 단 1회라도 30분 이상 운동하는 비율을 조사했는데(국민생활체육조사) 10대의 경우 그렇다고 답한 이가 47.9%에 불과했다. 전 연령을 통틀어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아이스링크에서 학생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더위를 피하고 있다. 수원=뉴시스
● 학원, 숙제, 방학특강…운동할 때조차 ‘운동 학원’ 다녀야

이유는 깊이 고민할 것도 없다. 우리 청소년들에겐 자유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일과는 영어, 수학, 국어와 같은 교과 공부로 가득하다. 방과 후에도 대부분 이런 학원들에 다니는데 그 수업량이 어마어마하다. 버티고 버티다가 작년부터 첫째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받아오는 숙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험 봐서 들어간다는 대단한 학원도 아니고 그저 동네 초등학생 대상 일반 보습학원이건만 숙제량이 딱 봐도 하루에 다 하기 빠듯한 수준이었다. 숙제할 시간이 모자라 학교에서도 학원 숙제를 한다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다.

방학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보통 방학이 되면 학원가에서 특강이나 보강을 개설하기 때문에 이런 걸 듣는 아이들이 많다. 지난주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퇴근 후 줄넘기를 하기로 했다. 퇴근이 늦어지는 바람에 약속보다 1시간가량 늦게 운동을 나갔는데 애들이 평소 가던 놀이터가 아니라 더 작은 놀이터로 가자고 해서 이유를 물으니 첫째가 말했다. “큰 놀이터는 지금부터 붐빈단 말이야.” 그때가 오후 8시 반이었는데, 아이들이 그제야 학원이 끝나 놀이터에 몰린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방학 중인 초등학생 아이들 귀가 시각이 40대 직장인 늦은 퇴근 시각과 비슷하다니.

다들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하면 함께 운동할 친구를 찾기도 어렵다. 결국 정기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찾아 운동하려면 운동도 학원을 등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도 운동 학원에 다니고 있다. 마음 같아선 이것저것 아이들 하고프단 운동을 다 시키고 싶은데 학원이다 보니 원비 부담이 있어 그럴 수 없다.

서울 시내 한 학원가에 의과대학 준비 관련 안내문이 게시돼 있는 모습. 뉴시스
● 학교 체육수업 늘리려는 시도, 자주 반대에 부딪혀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많이 한다면 좋을 것이다. 미국에서 잠시 학교 다닐 때 가장 부러웠던 것이 체육수업도 수업이지만 방과 후 학생들이 즐길 수 있는 클럽활동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스포츠클럽엔 들지 않았는데 탁구, 농구, 수영 등 종목별로 클럽이 있었다. 학교 시설도 잘되어 있었고 학교 스포츠팀 간에 대항전도 있어서 남녀 모두 선수가 많았다.

이렇게 학교에서 쌓은 경험은 일상으로 이어졌다. 성인이 돼서도 개인적으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아이들이 많았고, 그래서인지 다들 기초체력이 좋았다.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다시 미국에 갔을 때 운동 좀 해보겠다고 ‘호기롭게’ 달리기 수업 수강을 신청했는데, 얼마 안 가 수업 최고 ‘저질체력’으로 자리매김했다. 10분만 뛰어도 헉헉대는 나와 달리 미국 아이들은 20분을 거뜬히 뛰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교내 신체활동을 늘리려는 시도는 늘 교원이나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최근에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초등학교 저학년의 체육활동을 늘리기 위해 1989년 ‘즐거운 생활’에 흡수된 체육교과를 35년 만에 분리할 계획을 밝혔지만 교원노조 등이 강력 반대하고 나서 국교위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한 용역연구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7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선수뿐 아니라 일반 청소년도 운동의 혜택 누릴 수 있길

취재원으로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초등학생인 아들 둘에게 어릴 때부터 운동을 가르쳤는데 그 이유가 첫째 체력 증진이고, 둘째 ‘건강한 경쟁’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진료받으러 오는 사람 중에 왜곡되고 지나친 경쟁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건강한 경쟁에 대해 일깨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스포츠만한 게 없더라는 거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단 말이 있듯이 운동은 단순히 몸만 건강하게 하는 게 아니다. 특히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스포츠는 투지와 끈기, 협동, 선의의 경쟁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영리한 사람이 운동도 잘 한다고, 스포츠의 전략과 수싸움은 두뇌 운동도 된다.

우리나라는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 무대에선 수위권 안에 드는 종목이 많은 스포츠 강국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 특히 청소년은 절반 이상 일주일에 단 1회도 운동을 하지 않는 나라다.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이 철저히 유리됐다.

엘리트 체육 양성에 들이는 노력만큼 국민 체육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과거 학교에 아이들이 많을 때는 교내 체육시설을 짓기도 어려웠고 다양한 체육수업을 진행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이 줄어드는 만큼 공간적 여유도 생겼고 교원들의 여력도 커졌다. 만약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을 늘려 해소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체육활동 필요성을 적극 알리고 관련 시설도 확충했으면 한다. 우리 동네에는 몇 년 전 청소년 여가시설이 생겼는데, 학원 사이 자투리 시간에 몸 누일 곳 없던 아이들이 정말 잘 이용하고 있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쉽지 않겠지만, 분명 시설이 생기면 활동이 늘어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청소년기에 경험한 운동의 기억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올림픽 선수들뿐 아니라 모든 청소년이 운동의 기쁨과 성취를 일찍이 경험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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