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오상욱, ‘괴물 루키’에서 ‘괴물 펜서’ 되다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4 파리올림픽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은 펜싱에서 나왔다. 남자 사브르의 오상욱이 그 주인공이다. 오상욱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면서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과 합쳐 그랜드슬램을 이뤄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의 나이가 아직 만 27세라는 것이다.
오상욱은 형이 다니는 펜싱장에 놀러 갔다가 재미 삼아 펜싱을 하게 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키가 작아서 고민이 많았다. 160cm대 작은 키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스텝을 비롯해 기본 기술 훈련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키가 쑥 자랐고, 서양 선수에게 뒤지지 않는 체격(192cm)에 기술력까지 갖춘 '괴물 펜서'가 됐다. 18세 때(2014년 12월)부터 일찌감치 국가대표 태극마크를 달게 된 배경이다. 1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대표팀 막내에서 에이스로 거듭났고 결국 사브르 종목 최초로 개인전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펜싱은 공격 부위에 따라 에페, 사브르, 플뢰레 종목으로 나뉘는데, 그동안 한국 남자 펜싱은 올림픽에서 에페(2016년 박상영)와 플뢰레(2000년 김영호) 개인 종목에서 정상에 섰었다. 사브르에서는 김정환이 2016년 런던올림픽, 2021년 도쿄올림픽 때 딴 동메달이 최고 기록이었다. 남자 사브르가 단체전에서 올림픽 2연패(2012년 런던, 2021년 도쿄·2016년 리우 때는 로테이션상 정식 종목에서 제외)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았다. 그 아쉬움을 오상욱이 말끔하게 해결해준 것이다. 오상욱의 멘토였던 김정환 KBS 해설위원은 "오상욱의 펜싱은 70%가 다리에서 나온다. 오상욱의 탄탄한 하체가 상대의 어떤 긴 공격에도 반격할 수 있게 한다"면서 "피스트 위에서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성장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찍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오상욱 또한 여러 좌절과 아픔을 겪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결승 때는 구본길과 14대14까지 팽팽하게 맞섰는데 패해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절치부심한 그는 더욱 훈련에 열중해 2019년에는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2020년 도쿄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졌고 올림픽은 1년 연기됐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2021년 펼쳐진 도쿄올림픽. 오상욱은 8강전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했다. 심적인 부담감이 상당했던 탓이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김정환, 구본길, 김준호와 힘을 합쳐 당당히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이후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로 불린 이들은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합작해 냈다. 오상욱은 개인전에서 아시안게임 4연패에 도전하던 구본길을 꺾으면서 2018년 패배의 아픔을 설욕했다.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한국 펜싱은 세대교체를 맞았다. 김정환, 김준호가 태극마크를 내려놓으면서 오상욱, 구본길만 남았다. 국가대표가 되고 내내 막내였던 그는 박상원, 도경동 등 후배들을 챙겨야 하는 팀의 에이스가 됐다. 오상욱은 "함께 한솥밥을 먹으면서 내가 컸는데, 형들이 나갈 때 정말 큰 변화가 있었다"면서 "멤버가 바뀌면서 정말 많이 지기도 했고,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발목, 손목을 다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작년 12월 발목 부상을 당해 수술 후 복귀했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점점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덜컥 손목 부상(2월)까지 당해 또다시 경기에 출전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부상 여파로 그는 5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개인전 16강에서 탈락했다. 단체전 또한 입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올림픽 직전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개인·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오상욱은 "'부상 때문에 안 되겠지'라는 마음 때문에 정진하지 못했는데, 운동하면서 정말 최대한 몸을 굴려보자는 생각으로 훈련했다. 이게 부상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오상욱은 8월1일 열린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대회 2관왕이 됐다.
오상욱은 어렸을 적부터 선배들에게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궁금증에 대한 답이 나오면 곧바로 응용했다. 덕분에 '괴물 루키'는 10년 만에 '괴물 펜서'를 넘어 '뉴 어펜져스' 리더로 거듭났다.
■10대들의 유쾌한 반란
7월29일 대한민국은 100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아직 10대다. 2007년생 반효진(16·대구체고)은 이날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여자 공기소총 10m 개인 결선에서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중국의 황위팅을 제쳤다. 단 한 발로 금, 은메달이 갈리는 상황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줬다. 16세 한국 선수가 여름올림픽 최정상에 오른 것은 반효진이 처음이다. 역대 여름올림픽 최연소(16세10개월18일)로 조국에 100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반효진은 2021년 도쿄올림픽 이후 사격부에서 활동하던 친구의 권유로 총을 잡았다. 그리고, 겨우 3년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 1위, 올림픽 본선 신기록, 결선 타이기록을 세우면서 시상대 맨 위에 섰다.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건 후 "'쟤는 어디까지 성장할 생각이야?'라는 말을 듣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올림픽 전 인터뷰에서도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제일 독하게 치고 올라오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모습으로 똑똑하게 운동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도 했다. 반효진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중 가장 어리다.
반효진에 앞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오예진(IBK기업은행)이 19세 나이로 여자 공기권총 10m 개인전 올림픽 챔피언이 됐다. 세계랭킹 35위가 일으킨 '파란'이었다. 그는 금메달을 따낸 후 "여기 오기 전부터 결선 마지막 발을 쏘고, 금메달을 들고 환호하는 것을 계속 상상했다. 그게 실제로 이뤄지니까 정말 기쁘다"고 했다. 반려동물로 사모예드를 키우고 싶은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양궁 대표팀 막내 남수현(19·순천시청)은 임시현(21·한국체대), 전훈영(30·인천시청)과 함께 올림픽 여자단체 10연패를 도왔다. 반효진, 오예진처럼 처음 참가한 올림픽 무대에서 전혀 떨지 않고 활을 쐈다. 중국과의 결승전 슛오프 때 10점을 쏘는 두둑한 배짱도 보였다. '황금 막내'다웠다.
한국 선수들만 10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생 서머 매킨토시(캐나다)는 수영 여자 400m 개인혼영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따냈다. 만 14세10개월에 불과한 요시자와 고코(일본·2009년생) 또한 스케이트보드 여자 스트리트 부문에서 거칠 것 없는 연기로 세계 최정상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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