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했다, 동료들 잘해줄수록 죄송했다"…ERA 6.61 좌절과 첫승, 결별 앞둔 시라카와의 진심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미안했다. 그러니까 선배들, 팀 동료들이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조금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두산 베어스 대체 외국인 시라카와 케이쇼(23)는 지난달 31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지난달 10일 두산과 총액 400만엔(약 3400만원)에 계약하고 4경기 만에 챙긴 첫 승이었다. 투구 내용 자체가 빼어나다 보긴 어려웠다. 5이닝 6피안타 4볼넷 3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는데, 타선이 무려 28안타를 치면서 30점을 뽑아 KBO리그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시라카와에게 승리를 선물했다. 두산은 선두 KIA에 30-6으로 이기면서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시라카와의 첫승 소감에는 기쁜 마음보다 무거운 마음이 더 담겨 있었다. 그는 "야수들의 대량 득점 지원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팀에 들어왔을 때부터 팀 승리가 우선이었다. 그동안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오늘(지난달 31일)도 2회까지 좋지 않은 모습이 나왔는데, 부담을 내려놓고 던지니 오히려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시라카와는 지난 5월 SSG 랜더스와 총액 180만엔(약 1500만원)에 대체 외국인 계약으로 한국에 와 눈길을 끌었다. 올해 새로 생긴 대체 외국인 제도의 첫 계약자였다. 당시 SSG는 로에니스 엘리아스가 부상으로 6주 이상 이탈이 불가피했고, 고심 끝에 일본 독립리그 에이스로 활약하던 시라카와를 데려왔다. 시라카와는 SSG에서 5경기, 2승2패, 23이닝, 평균자책점 5.09를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시속 150㎞에 이른 빠른 공에 포크볼 등 변화구도 좋은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라카와가 SSG와 계약이 종료됐을 때 두산은 브랜든 와델의 부상으로 대체 외국인이 필요했고, SSG에 이적료 300만원을 지급하면서 SSG 시절보다 2배 높은 몸값을 보장했다.
시라카와는 두산이 좋은 대우로 기대감을 표현한 만큼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러지 못했다. 두산 이적 후 등판한 4경기에서 1승1패, 16⅓이닝, 평균자책점 6.61에 그쳤다. 두산은 시라카와가 등판한 경기에서 2승2패를 기록했는데, 시라카와가 지난달 31일 광주 KIA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 강판하는 바람에 불펜 운용에 애를 먹었다.
시라카와는 그래서 첫 승이 반가우면서도 마음껏 웃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야 드디어 1승이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조금 오래 기다렸다는 생각도 했다"고 입을 연 뒤 "선배들, 팀 동료들이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앞선 3경기 동안 그런(죄송한) 마음이 조금 더 커졌다. 죄송한 마음이 계속 커진 상태로 KIA전도 등판했다"고 털어놨다.
반복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시라카와는 "나도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지금 사람들은 내가 관객들의 성원이 내 투구에 영향을 줬다고 알고 있다. 그런 이유보다는 내 야구 인생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팀을 2번이나 바꾼 적이 없었다. 원래 일본에서 소속팀까지 하면 한 시즌에 3팀에서 뛰고 있는 것이라서 그런 점에서 조금 적응이 힘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른 나라에서 적응해야 하다 보니까. SSG에서 처음 왔을 때는 그래도 한국의 야구 문화에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팀에 옮겨버리니까 그런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아마 그런 차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시라카와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이 감독은 "부담이 많았을 텐데 두산 유니폼을 입고 첫승을 했다. 초반에 위기도 있었지만, 어린 선수니까. 우리나라 나이로 23살인데, 대학 졸업한 신인 정도의 나이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많은 광중 앞에서 해보지 않아서 환경 변화에 스스로 위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승리를 계기로 환경의 부담을 털어내길 바랐다.
첫 승의 공은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김기연에게 돌렸다. 시라카와는 "초반에 1~2회까지는 안 좋은 투구를 하고 있었다. 경기 도중에 계속 흐름이 나빠져서 볼넷을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홈런을 맞자 이렇게 전환을 한 게 유효했던 것 같다. 김기연이 내게 '자신 있는 직구를 많이 던져라'고 말했다. 내가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는 공이 직구였기 때문에 직구를 적극 활용해서 아마 좋은 경기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기연은 "지난 경기들과 똑같은 흐름으로 가면서 볼이 많았던 것 같다. 3회부터는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공을 자신 있는 공으로, 상대팀을 생각하지 말고 시라카와가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직구를 많이 던졌는데, 컨트롤이 되면서 카운트를 빨리 잡을 수 있었고 그렇게 하니까 자신감을 갖고 더 쉽게 쉽게 타자와 승부해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시라카와는 한국에서 SSG와 두산 소속으로 9경기를 뛰면서 얻은 게 많다고 했다. 그는 "독립리그에서도 경기를 많이 한다고는 해도 이렇게 KBO리그처럼 월요일 하루만 쉬고 일주일 내내 경기를 하진 않는다. 5인 로테이션으로 던져 보는 것도 처음이고, 제대로 로테이션에 들어가서 돌아가는 것도 처음이다. 이런 경험들 자체가 내게는 플러스 요소라 생각한다. 관객들의 응원과 함성 속에서 경기를 하는 것 자체도 큰 경험이다. KBO리그에서 하는 모든 경험은 아마 앞으로 야구 인생에서, NPB(일본프로야구)에 가서도 이곳에서 한 모든 경험이 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6주라는 짧은 계약 기간을 보장하는 대체 외국인 제도를 2번이나 경험한 소감은 어떨까. 시라카와는 "단순히 행복하다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내게는 아주 감사한 제도다. 독립리그에서 던지는 것과 KBO리그에서 던지는 것은 레벨 차이가 확실히 있다. 나를 선택해 줘서 감사한 마음이고, 감사한 제도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시라카와는 처음 두산에 왔을 때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려다 팬들에게 둘러싸여 갇혀버릴 정도로 슈퍼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이런 경험 역시 시라카와에게는 소중하다. 그는 "나를 슈퍼스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팬분들이 신경 써서 선물도 주고 그러시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내서 그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시라카와와 두산이 동행할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기존 외국인 투수인 브랜든이 복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 브랜든은 재활선수 규정상 오는 9일 이후 1군 마운드 등판이 가능하다. 브랜든이 날짜에 맞춰 돌아온다면, 시라카와는 두산에서 1~2경기 정도 더 던질 수 있는 상황이다.
두산에서 남은 경기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설 것인지 물었다. 시라카와는 "내가 그렇게 제구력이 나쁜 투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두산에 와서 제구력이 나쁜 투수가 되어버렸다. 앞으로 몇 경기 안 남았는데, 이제 내가 잘할 수 있는 자신 있는 직구를 조금 더 제구를 잘해서 내가 지닌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고 싶다. 팀이 승리하는 데 조금 더 공헌할 수 있도록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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