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직선, 상처와 연민…분투하는 도시의 시간
도시 이미지
문우식 ‘성당 가는 길’
근대의 낭만과 현대적 감수성이
민준홍 ‘유토피안 콤플렉스’
냉랭한 공간이 빚어내는 단정함
“진짜 내가 사는 곳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그 도시 안이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속 주인공들은 도시를 탐험한다. 그곳은 현실이기도 상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근대를 넘어 현대로 향하는 길 위에 서있는 문우식의 ‘성당 가는 길’과 현대 작가 민준홍의 ‘유토피안 콤플렉스’ 속 도시로 들어가 본다.
근대 넘어 현대 향하는 ‘명동 에피소드’
익숙한 풍경이 눈에 맺힌다. 명동성당이다. 집중력이 상승한다. 뾰족 솟은 첨탑은 멀리 있다. ‘모던하네.’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작년 봄 국립현대미술관 ‘모던 데자인: 생활, 산업, 외교하는 미술로’ 전시에서 문우식의 ‘성당 가는 길’을 대면했다.
‘성당 가는 길’은 짙고 뚜렷하다. 색들이 모여 있고 또 흩어져 있다. 여러 색채는 어우러졌으나 각기 뚜렷하다. 밝고 순연하게. 다만 촘촘하게 붙어 있는 건물들은 조금 다르다. 원색으로 달뜬 기분이 가라앉는다. 일부러 흩트린 듯한 흰색 붓질의 틈새에서 발견했다. 조용히 깃든 어둠을. 1950년대 말 서울 거리에 스며 있는 힘겨움을. 우울함에 머물려는 찰나 눈길을 뒤쪽으로 빼앗겼다. 솟아오르는 첨탑이 있다. 명동성당이다. 뾰족하게 하늘을 향하는 첨탑은 실제적이다. 그 익숙함에 반가움이 일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붉은색으로 채워진 성당 건물은 평면적이다. 과하게 납작하고 단순하다. 근경의 건물들은 앞쪽으로 쏟아질 듯 거리감이 없다. 도시의 실제와 비현실의 사이를 넘나든다.
1957년은 전진의 해였다. 전쟁이 남긴 피폐함을 밀어내는 중이었다. 명동은 변화의 중심지였다. 상처는 더디게 낫는 법이다. 감추려 해도 드러난다. 실마리가 잡힌다. ‘성당 가는 길’의 형태의 세련됨 속 고단함이 엿보이는 이유에 대해. 도시에 슬며시 얽힌 정서를 포착했다. 문우식이 시대와 호흡한 작가임을 증명한다.
1948년 남관미술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웠다. 1952년 부산 피난지에 임시 교사를 세운 홍익대 미술학부에서 공부했다. 김환기에게서 당대 추상의 최신 기류를 흡수했고 이중섭과 벗하며 표현파적 미감을 키웠다. 문우식의 개성적 필치는 피어났다. 전쟁의 상흔을 뒤로하고.
“무엇이든 그가 손을 대는 것은 모두 경쾌한 리듬과 풍만(豊滿)을 가진 것으로 표현된다.” 주한서독공사를 역임한 미술비평가 리하르트 헤르츠의 1957년 ‘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 출품된 문우식 작품에 대한 찬사다. 원근법의 자유로운 활용과 신선한 구조에 감탄했다. ‘무명교를 위한 구도’(1957)를 보면 흠칫 놀라게 된다. 현재 상영 중인 에스에프(SF)영화 속 미래 도시 같기에. ‘황산의 중석광역’(1957)에는 허름한 산동네가 기하학적 점·선·면 안에서 공존한다. 단순한 듯 복잡하고 사실적이되 과장되었다. 구상과 추상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문우식의 ‘성당 가는 길’은 1957년 회화다. 근대와 현대의 시점을 가르는 때다. 몇개의 설정들을 숨겨놓았다. 명동의 건물과 가로수들은 변형되었다. 멀리 보면 원근감이 있고 가까이 보면 평면적이다. 자유로움이 넘친다. 현대적 감수성과 근대의 낭만이 공존한다.
“그는 무게보다도 신선한 노래로서 ‘나이브’한 형태미의 구성을 기획한다.” 추상화가 한묵의 말이다. 문우식에게는 밀려오는 유행보다 본인만의 미적 정서가 중요했다. 1950년대 폭발하던 ‘앵포르멜’(기하학적 추상을 거부하고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추상미술)의 기류를 따르지 않았다. 자기만의 추상을 펼쳐냈다.
대상을 해체하고 공간을 분할했다. 자유로이. 흩어져 있는 기하학적 형태들은 미래의 도시로 안내한다. 흘러넘치는 재능은 그를 디자이너의 세계로 이끈다. 이후 문우식은 근현대미술사에서 존재가 희미해졌다. 잊혔던 그가 최근 큰 전시마다 다시 등장하고 있다. 반갑다. 오롯한 개성이 시간을 견디어냈다. 명동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도시의 품격을 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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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기 서린 도상의 이면
어둡거나 낮은 채도의 작품들 사이에서 강렬한 색을 뽐내는 작품이 보인다. 빌딩들이 날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어지럽다. 흩어져 있는 사각 프레임들은 공간을 헤집는다. 압박감이 밀려온다. 민준홍의 ‘유토피안 콤플렉스’(Utopian complex)에 대한 첫인상이다.
일상이 가쁠 때면 작품 속 건물들이 생각났다. 사무실 공기가 숨이 막힐 때마다. 공중에 부유하는 빌딩들이 도돌이표처럼 돌고 돈다. 의문은 커졌다. 민준홍이 도시를 대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조각 낸 패턴 속 감춰둔 속내는 냉소일까, 불안일까. 소파와 의자를 비워둔 채 불안정하게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풀리지 않는 난제 같았다. 캔버스 속 해체되어 있는 도형들이. 사각형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느껴진다. 자로 잰 듯 반듯한 마름모의 직선들이 공격해온다. 속상하다. 부드러움을 지워버린 듯해서. 건물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손은 인간의 것일까. 게임 속 로봇의 부품 같다. 냉기 서린 도상들에 마음이 휘어진다.
“각자의 삶의 파편들이 모여 한데 얽히고설켜 돌아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그가 도시를 그리는 이유다. 민준홍은 서울대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유시엘(UCL) 슬레이드 스쿨 오브 파인 아트에서 공부했다. 미국 뉴욕과 독일 베를린 등 국외 여러곳에서 활동했고 현재 영국 런던에 머물며 서울을 오간다.
기분을 전환하고자 도심 속 호텔에서 1박을 했다. 높은 층을 예약했다. 밤 풍경이 보고 싶어 커튼을 열었다. 즐비한 마천루들이 보인다. 빛을 낸다. 직선으로 곧게. ‘따뜻하네.’ 새어나온 혼잣말에 흠칫 놀랐다. ‘유토피안 콤플렉스’의 기하학적 패턴들이 생각났다. 선과 프레임들이 그어진다. 접혀 있던 마음이 조금씩 펴지려 한다. 냉랭해 보이던 도형과 건물들의 틈 사이로 걸어가고 싶다. 인위적으로 느껴지던 원색들이 다르게 피어난다.
구축하고 발화한다. 민준홍의 작업을 정의하는 단어다. 연필로 밑그림을 그린다. 구조를 설계하듯이. 옅게 채색한다. 그 위에 펜으로 드로잉한다. 정교하게. 반복을 통해 직선들이 살아난다. 반듯하고 곧다. 머리가 맑아진다. 그 공간의 단정함에 빠져든다.
이제 알았다. 민준홍이 만들어내는 ‘유토피안 콤플렉스’의 도시 안에는 연민이 담겼음을. 위태로워 보이던 건물 속 사람에게 손을 뻗고 싶다. 분투하는 나의 하루하루가 귀하게 느껴진다. 15층에 살고 있다. 산란해지는 밤이면 커튼을 연다. 견고하게 뻗은 직선들이 보인다. 나의 도시, 서울이다.
도시는 명멸한다. 유난히 내 그림자가 짙어지는 날도 있다. 다만 잊지 않기를. 뾰족한 빌딩 숲 속 곡선을 그리는 건 당신임을. 끝내 살아가리라. 달콤하고 살벌한 이 도시에서.
미술 칼럼니스트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기질만 있고 재능이 없단 걸 깨달았다. 모네와 피카소보다 김환기와 구본웅이 좋았기에 주저 없이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 시대의 사연을 품고 있는 근대미술에 애정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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