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은 헛소리” 그 위로 꽃비가 내렸다[조승리의 언제나 삶은 축제]

기자 2024. 8.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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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찬란한 봄날의 기억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활동지원사 수미씨와의 반보만큼의 거리가 무너졌던 그날 이후,
나는 그와 감정과 감각을 공유하며 빛이 고이지 않는 눈동자로 상상한다…아름다운 것들부터 슬픔까지 모두

창으로 들어찬 봄볕이 유혹하듯 밖으로 나오라 손짓했다. 활동지원사가 도착하면 하천을 따라 한두 시간 산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시간에 초인종이 울렸고, 수미씨가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바람 냄새를 몰고 들어왔다. 그녀는 내가 부탁하기 전에 앞장서 오늘은 반드시 산책하러 나가야 한다고 힘차게 주장했다. 천변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원한다면 한번 동행해주겠다고 새초롬하게 거드름을 떨며 말했고, 수미씨는 “같이 나가줘서 고마워요”라며 내 장난에 맞장구쳐주었다.

수미씨는 올해로 7년째 활동지원사로서 내게 도움을 주고 있다. 나는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른 만큼 그녀는 내 감각을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감정의 일부를 떠안고 있다.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나보다 더 분노하고, 장애로 인해 한계에 봉착하면 안타까움으로 본인이 더 괴로워할 때가 있다.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그녀의 애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배배 꼬인 사람이라 대가 없는 선한 마음을 믿지 않았다. 수미씨가 내게 ‘영특하다’ ‘멋진 사람이다’ 치켜세워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생각했다. 내 보기에 그녀의 사고와 도덕 관념은 거의 교과서였으니까. 쉰 넘은 중년 여성이지만 귀밑 3㎝ 단발머리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교복 치마를 입은 ‘범생이’ 여고생처럼 순수했다. 반면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냉소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그건 장애 때문도, 자라온 환경 탓도 아닌 본래의 내 기질이었다. 나는 수시로 그녀에게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음지의 이야기를 해주며 세상은 결코 당신이 보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옆에서 내 어둠을 들여다보며 상상치 못한 세상을 경험해본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에 번져가는 검은 얼룩을 볼 때마다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녀의 해맑은 시선을 질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승리씨는 겉과 속이 달라요. 강한 척하지만 속은 여리디여려서 상처받을까 봐 먼저 벽을 세우죠.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란 걸 나는 알아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투의 말이 기분 나빴다. 꼬투리를 잡아 짜증을 내고 부러 집안일을 만들어 호되게 고생시켰다. 그녀가 내 부탁을 거절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심술을 부린 것이다. 다음날 그녀에게서는 싸한 파스 냄새가 났다.

그녀와 길을 걸을 때 수미씨는 나보다 반보 앞에 선다. 그게 안내 보행을 할 때 가장 이상적인 거리다. 우리가 가진 반보만큼의 물리적 거리는 그녀와 나의 심리적 거리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안전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만날 때마다 활기차던 수미씨가 점점 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봄부터였다. 때때로 고심에 빠져 있고 누군가와 수시로 연락했다. 정신을 빼놓는 일도 종종 있어 내 말을 듣지 못하고 되묻는 일이 왕왕 생겼다. 나는 ‘집안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짐작했다. 끝내 그녀가 내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날은 유난히 바람이 맑은 화창한 날이었다.

수미씨는 누가 봐도 울다 온 사람처럼 목이 꽉 잠긴 채 출근했다. 밖에서 울다가 약속 시간이 되는 바람에 감정을 채 추스르지 못하고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음을 짐작했다. 억지로 밝은 목소리를 꾸며내는 수미씨에게 티슈를 뽑아다 주며 왜 울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본격적으로 슬픔을 토했다. 사랑하는 가족 중 한 명이 최근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오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며 라디오를 듣는데 평소 그가 즐겨 부르던 노래가 흘러나왔단다. 하늘은 파랗고 꽃은 만개하는데, 내년에 이 아름다운 세상을 그와 다시 공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슬픔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나는 빛을 느끼기 위해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환한 빛이 눈가로 파고들었다. 가슴속 저 아래서 뜨거운 복받침이 터져 나왔다. 내게로 전염된 수미씨의 감정이었다. 상실은 내게 가장 두려운 감각이다. 우리는 티슈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말없이 울었다.

“자기는 겨우 한 번 스친 사람인데 뭐가 슬퍼서 울어?”

수미씨가 물었다. 나는 쏘아붙이듯 답했다.

“몰라. 사모님 때문에 나도 사라진 누군가를 떠올리고 말았어.”

내가 그토록 유지하려 했던 반보만큼의 거리가 그날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수미씨는 알고 있을까? 상실의 허무함은 영원한 이별을 겪은 사람만이 그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 나는 남겨진 자의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아파서 울었다. 상실의 흉터에서는 때때로 염증이 생겨 부르트고 피가 날 것이다. 그건 산 자가 짊어지고 갈 일이었다.

수미씨와 하천가를 걷는다. 빛이 고이지 않는 눈동자로 상상한다. 햇빛이 부서지는 강물 위를, 실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잎사귀들을, 반딧불처럼 무리 지어 날아가는 분홍 꽃잎들을. 수미씨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형상을 말로 설명한다. 그것은 한탄과도 같은 순간의 아름다움이었다.

“이 말간 파랑을, 이 찬란한 흰 꽃잎을 어떻게 표현해줘야 할까요? 내게 시각을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슬며시 수미씨의 감정 능선을 넘어선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감정과 감각을 공유한다. 그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만개한 벚나무가 천변을 따라 늘어서 있다. 사람들은 풍광을 즐기며 꽃비 내리는 길을 걷는다. 낙화는 소리 없는 비명으로 생을 마무리한다. 꽃은 허공에 있을 때만 꽃이라 불린다. 나는 발에 밟힌 아름다움의 흉측한 잔재를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다시 활짝 개화한 벚나무를 올려다봤다. 아름다운 꽃나무를 보며 내가 느끼는 감정은 슬픔이다. 만개한 꽃에게는 져버릴 일만 남아 있을 테니까. 하지만 수미씨는 짓밟힌 꽃잎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밝은 것, 빛나는 것만을 보길 원한다. 그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승리씨는 마음의 눈으로 이 풍경이 다 보이지요.”

동화되었던 우리가 그녀의 말에 다시금 분리된다. 다시 캄캄한 현실로 돌아왔다.

“사모님, 마음의 눈 따위는 다 헛소리라니까. 아직도 그런 허황된 소리를 믿어요? 향기 없는 꽃이 나한테는 아무 소용없단 걸 언제 이해하시려나.”

수미씨는 내가 빈정대자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어떻게 느끼게 해줄 수 있을까요?”

나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벚꽃을 느끼게 해주고 싶냐 물었다. 그녀가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다 했다. 나는 나를 벚나무 밑에 세워달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이제 벚나무 둥치를 힘껏 걷어차요. 내 머리 위에 꽃비를 흠뻑 내려줘요. 나는 이런 식으로 벚꽃을 느껴볼게요.”

반쯤 농담이었는데 그녀가 정말 나를 세워놓고 벚나무로 걸어갔다. 쿵, 쿵 소심하게 나무를 걷어차는 다정한 나의 수미씨가 나를 웃게 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열다섯 살 때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었다. 손끝으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펴냈다.

조승리 시각장애인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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