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지도자 사무실에 괴한 침입… 베네수 ‘부정선거’ 사태 일파만파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남미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사무실에 괴한이 들이닥쳤다. AP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야권 연합 ‘단일 플랫폼(PU)’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7) 전 국회의장 사무실에는 지난 2일 오전 3시쯤 복면을 쓴 남성 6명이 난입했다. 야권 측이 공개한 사진에선 사무실 문과 내부 물건들이 파손됐고 서류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야권은 “괴한들이 우리의 장비와 문서를 빼앗았다”며 “정치적인 이유로 우리가 당한 피해를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마차도 전 의장은 지난해 말 야권 연합 경선에서 90%를 웃도는 득표율로 대선 후보에 올랐던 인물이다. ‘베네수엘라 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린다. 국회의장 시절인 2012년 좌파 성향의 우고 차베스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산업 국유화로 국민 재산을 강탈했다”고 직설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자유시장 경제를 중시했던 ‘철의 여인’ 마가릿 대처(1925~2013) 전 영국 총리를 닮았다고 해 붙은 별명이다.
그러나 올 1월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반(反)정부 활동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마차도의 피선거권을 15년간 박탈했다. 이에 야권 연합은 정치 경력이 전무한 에드문도 곤잘레스 우루티아(74) 전 주(駐)아르헨티나 대사를 대타로 내세웠고, 지난달 28일 대선에서 좌파 성향의 현직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62)에게 약 7%포인트 득표율 차로 패했다.
마차도·우루티아를 비롯한 야권 연합은 선관위가 발표한 개표 결과에 불복하고 있다. 자체 집계 결과 우루티아가 마두로에게 350만표 이상 앞섰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선관위 발표 직전 공개된 미국 여론조사 기관의 자체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마두로의 득표율은 야권 후보에게 두 배 이상 뒤처졌다. 선관위가 개표 당시 실시간 득표율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고, 시민단체 참관도 불허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야권 측은 이날 괴한들의 침입을 ‘야권의 자체 개표를 위한 자료를 훔치기 위한 시도’로 간주하고, “그들은 틀렸다”며 “개표 관련 자료들은 디지털로도 보관 중”이라고 X(옛 트위터)에서 밝혔다. 우루티아 전 대사는 “유권자와 우리 선거팀에 대한 탄압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며 “평화로 가는 길은 진실뿐”이라고 전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전날(1일) 성명에서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우루티아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자체 조사됐다”고 전했다. 마두로 정권의 ‘부정선거’ 의혹을 공식화하고 야권 연합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마두로 대통령은 즉각 “미국의 베네수엘라 내정 간섭 시도를 규탄한다”고 맞섰다. 이반 힐 베네수엘라 외교장관도 “미국은 (베네수엘라) 쿠데타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비난했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에콰도르·코스타리카 등 남미 국가들도 마두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을 우회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AP 등은 보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2013년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 기틀을 다진 차베스가 사망하고 그의 후임에 올랐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 등 풍부한 자원으로 한때 ‘남미 최고 부국(富國)’이라 불렸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1999년부터 이어진 차베스·마두로의 좌파 정권하에서 몰락했다는 평을 받는다.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과 기간산업 국유화, 석유기업 방만 운영 등이 이들의 실정(失政)으로 꼽힌다. 지난달 28일 대선 승리로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 수명은 6년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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