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새우 채집하러 나선 길…푸른 남극해를 걸었다

한겨레 2024. 8. 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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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특별한 바다 체험
펭귄마을 지나 형성된 조간대
영상 2도 여름바다에 성큼성큼
비단 같은 바다와 하늘빛 배경
1만종 중 희귀종 찾는 데 몰두
남극의 하늘은 푸른 비단처럼 빛나고 저 멀리 물결을 이루며 파도가 쳤다. 김금희 제공

과학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섬세하고 친절한 부류들이었다. 그리고 조언에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남극 많은 존재들의 학명을 알게 되었다. 이름을 알게 되는 건 무척 중요했다. 구마 의식을 할 때 사제가 제일 먼저 알아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악마의 ‘이름’이라고 하니까. 그것은 존재에 핀을 꽂아 ‘고정’시켜두는 것이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눈앞의 현상을 내 인식의 영향 아래 두는 것이었다.

자이언트페트럴. 시간이 지나자 이 큰 새의 개성이 눈에 들어오면서 친근감이 들기 시작했다. 김금희 제

가슴장화까지 챙겨서

어느 날 작업을 하다 책상으로 돌아와보니 극지연구소에서 만든 남극동물 스티커가 놓여 있었다. 물개는 금세 알아봤는데 거미와 번데기를 합쳐놓은 듯한 녀석이 낯설었다. 누가 줬나 알아보니 고 연구원이었다. 전날 해양생물에 대해 물어본 것이 인상적이었던 모양이었다. 남극의 여름 바다는 어느 면에서는 우리가 아는 바다와 다르지 않았다. 빛이 내리쬐면 바다 결마다 윤슬이 흘렀고 자갈해변에는 무성한 조류들이 와글댔다. 물론 그렇게 반짝이다가도 유빙과 빙하가 둥둥 떠내려오며 갑자기 영하의 ‘쿨톤’을 띠기도 하지만. 가끔은 ‘여기가 제주도인가?’ 싶기도 했다.

“얘 이름은 뭔가요?” 나는 기괴해서 마음에 쏙 드는 스티커를 가리키며 물었다.

“거대 남극등각류입니다. 일종의 진드기 같은 것인데 물속에서 아주 느리게 움직여요. 집어 들어도 ‘아, 내가 잡히는 건가’ 하며 가만있어서 아주 잡기 쉽습니다.”

나는 풋 웃었고 고 연구원은 세종회관 냅킨에 ‘Isopoda’(이소포다)라고 써주었다. 남극해로 직접 다이빙하는 과학자답게 그의 얘기 속 남극 생물들은 생생한 실감을 띠며 빛났다. 수중 군락지를 이루며 해류에 따라 크게 흐느적거리는 연두산말에 대해 들을 때는 남극 바다가 ‘숲’처럼 느껴졌다. 연두산말은 우리가 아는 미역처럼 생겼지만 유전적으로는 사람과 쥐만큼이나 다르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사람과 쥐의 관계만큼 닮아 있기도 하다는 말이었다.

내가 안 연구원을 따라 옆새우 채취에 나선다고 하자 벡터가 같이 가고 싶어 했다. 둘보다 셋이 덜 어색하니까 환영이었다. 하지만 몇몇은 내가 먼 바다까지 가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기지 앞 부두에도 옆새우 많은데 힘들게 거기까지 가요?” 물론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다. 드디어 당일이 되어 웨트랩으로 내려갔더니 안 연구원이 장비를 건넸다.

“바다에 들어가실 건가요?”

“그럼요!” 나는 힘차게 끄덕였다. 우리는 펭귄마을을 지나 형성된 조간대(만조 때 물에 잠기고 간조 때 드러나는 구간)까지 가서 어쩌면 가슴 깊이까지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했다. 지금 남극해 수온은 높아야 영상 2도인데 그곳까지 걸어 들어간다고? 아무리 깊어도 허벅지 정도겠지 했던 나는 당황했다. 안 연구원은 해루질에 필요한 가슴장화까지 빌려주었다. 받아서 배낭 안에 넣으니 묵직했다. 사실 배낭을 매일 메면서 왼쪽 어깨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다. 어느 날에는 팔을 들기 힘들 정도로 욱신거리며 아팠다. 그래도 다른 대원들은 더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니까 나는 내색 없이 따라나섰다. 벡터는 사진 촬영만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다른 장비는 필요 없었다.

바위 밑의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흰바다제비. 김금희 제

엄마 흰바다제비의 시선 끌기

기지를 벗어나자마자 안 연구원은 무서운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최대한 천천히 걷고 있었을 것이다. 자주 멈춰서 우리를 기다려주기도 했지만 마음은 이미 옆새우들의 풀장인 펭귄마을 조간대에 가 있는 듯했다. 반면 나는 걸음이 느렸다. 그리고 또다시 찾은 펭귄마을은 (인간과 뱀을 제외한)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를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이미 입구를 지나는데 심술궂게 생겨 더 매력적인 자이언트페트럴과, 흰바다제비가 걸음을 멈추게 했다. 흰바다제비는 좁은 바위틈에서 나와 종종걸음 치며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애썼다. 일반적으로 귀찮아하거나 경계하는데 이 녀석은 왜 굳이 눈에 띄려는 걸까. 이유는 좁은 바위틈에 새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 흰바다제비는 우리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새끼의 안전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을 어떻게 휙휙 지나친단 말인가. 벡터와 내 발걸음이 느려지자 안 연구원이 눈에 띄게 초조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 우리보다 30분이나 늦게 기지에서 출발한 고와 양 연구원이 우리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축지법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는 그들은 얼음과 자갈로 된 남극 길을 1분에 100보의 속도로 누비는 것으로 유명했다.

“저… 사진은 나중에 돌아올 때 찍으시죠?” 기다리다 못해 안 연구원이 말했다. 그때서야 분위기를 파악한 벡터와 나는 풍경에 집중하지 않고 그를 따라잡는 데 몰두했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조간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거운 배낭은 왼쪽 어깨를 짓누르고 펭귄마을을 채우고 있는 축축한 녹색 마녀 수프 같은 길은 금방이라도 자빠질 듯 미끄러웠지만 속도를 내야 했다. 새끼 펭귄들은 그새 매끈해진 검정 깃털을 멋지게 뽐내고 있었다. 그런 펭귄들이야말로 이 여름의 축복들이었다.

비탈길을 오르고 내려 또 한참 걸어가고 나서야 조간대는 펼쳐졌다. 마침 날씨가 개기 시작해 하늘이 푸르게 열렸다. 남극에 도착한 이후 이렇게 여름다운 하늘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름다운 것에서 곧잘 그러듯 풍경에 완전히 스며들었다. 그러면 붙들고 있던 나 자신은 사라지고 외부의 좋은 것들로만 채워지는 듯했다. 갯바위에서 가슴장화를 꺼내 입는데 벡터가 추울 테니 방한 점퍼 위에다 입으라며 옷 입는 걸 도와주었다. 번개 같은 속도로 복장을 갈아입은 안 연구원은 이미 옆새우 곁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알고 보니 안 연구원이 서두른 건 만조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그는 체와 채집통, 핀셋 등을 챙겨 남극 물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저 이제 여기서 잡으면 되는 건가요?”

물이 빠져나간 바위 위에는 연두산말들이 붙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바다 수풀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돌멩이를 들어내면 옆새우들이 붙어 있을 거예요.”

정말 그랬다. 하지만 안 연구원이 가리키는 것들의 생김새는 내가 생각하던 그런 새우가 아니었다. 심지어 지렁이처럼 기다란 몸통만 보이는 것도 옆새우라고 했다. 무려 223과(科) 1만종에 이르는 옆새우는 말 그대로 생기고 싶은 대로 생겼고 그렇다면 나는 뭘 채취해야 할지 더 모르게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안 연구원은 여기는 원하는 게 없네요, 하더니 더 먼 곳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따라갔지만 미끈거리는 바위, 무거운 옷으로는 도저히 속도를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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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간대의 돌멩이를 들면 옆새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걸 핀셋으로 집어 채집통에 넣는다. 김금희 제공

‘옆새우 장인’의 방생

나는 은근히 서운해지기 시작했고 저렇게 채집에 몰두하는데 더 이상 짐이 될 수도 없어서 그냥 혼자 돌을 뒤집어가며 채집통을 채우기 시작했다. 벡터는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바다와 하늘빛으로 푸른 비단을 두른 듯한 남극의 여름을 기록했다. 비록 포부만큼 옆새우에 대해 알지 못하게 되더라도 따라올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오후였다. 막상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니 장화를 신어 그런지 전혀 시리지 않았다. 나는 포말을 몰고 다가오는 파도를 아주 먼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여태껏 본 적 없는 가장 깊고 광활한 바다에서 오는 물결을. 안과 나, 벡터, 펭귄과 물범 이 모든 것이 적당한 거리를 둔 지금이야말로 남극해에 걸맞은 완전한 여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바위에 걸터앉은 안 연구원이 보였다. 드디어 열정을 다 불태우고 쉬는 건가. 이제는 내게 관심을 주겠지 싶어 다가갔다. 맨손으로 작업한 안 연구원의 오른손은 발갛게 얼어 있었다. “뭔가 찾으셨어요?” 이전 발표시간에 남극해에서 새로운 종의 옆새우를 찾은 적도 있다고 한 것이 생각나 물었다. 안 연구원은 채집통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갖가지 모양의 옆새우들이 아쿠아리움처럼 다종다양하게 들어 있었다.

가슴장화를 신은 안 연구원은 발갛게 언 손으로 옆새우 채취에 여념이 없었다. 김금희 제공

“아, 여기 많이 붙어 있네.”

내가 안 연구원이 들어올린 돌멩이 밑을 가리키자 안 연구원은 눈에 힘을 주어 살피더니 몇 개를 손가락으로 톡톡 쳐서 바다로 돌려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도자기는 모두 깨버리는 장인 정신이 옆새우 채집자에게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느꼈다.

“이런 건 다 흔한 것들이에요. 세종기지 앞에 있는 것들도 다 이런 거고요.”

나는 평범하다는 이유로 안의 손가락에 튕겨 바다로 피용피용 날아가버린 옆새우들을 애석해하며 (녀석들 입장에서는 다행이지만) 몇 센티미터 안 되는 옆새우들의 차이를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냐고 물었다.

“라식 했거든요.” 안이 처음으로 농담이라는 것을 했다.

“그리고 제 눈은 옆새우에 특화되어 있어요.”

“아!”

나는 부끄럽지만 내 채집통을 안에게 보여주었다. 그냥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제스처였는데 안이 한 마리를 가리키며 어디서 잡았느냐고 물었다. 기쁨이 차올랐다. “저쪽에서 찾았는데 왜요? 귀한 거예요?” “흔하지는 않아요.” 나는 순간 뿌듯해져 안을 데리고 남극의 여름 바다를 첨벙첨벙 뛰어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바위에 붙은 삿갓조개를 가리키며 안이 이건 먹을 수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우리가 여느 여름 바다에 있었다면, 조난된 섀클턴(영국의 남극 탐험가)이 그랬듯 삿갓조개로 연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연구 이외에는 허용되지 않는 남극해였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영하에 가까운 푸른 바닷속을 걷고 있었으며 그 특별하고 희소한 옆새우 보발리아 기간테아(Bovallia gigantea)를 찾으러 ‘함께’ 가는 중이었다.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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