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예진의 금메달이 더 빛나는 이유는?”…열악한 환경에서 쏘아올린 결실

강인희 2024. 8. 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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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파리올림핌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에서 우승한 오예진


"제주도에는 화약 권총 사격장이 없어서 선수들이 다양하게 훈련하기 힘들어요."
-오예진 사격 금메달리스트 (2023년 10월)

이번 파리올림픽 금빛 과녁을 명중한 사격 오예진이 고등학생 시절인 지난해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 얘기입니다. 벌써 1년이 다 되갑니다. 제주에는 전국대회는 고사하고 사격 결선장 조차 없는데 어떻게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을까? 제주의 딸 명사수 오예진이 노력과 도전을 이어가며 두 배로 흘렸을 땀방울의 의미를 들여다봅니다.

"오예진, 제주엔 종합사격장 없어 화약 권총은 이미지로 연습"

지난달 29일, 오예진 선수의 금메달 획득 다음날 제주여상 후배들 연습 모습


사격 종목은 10m 공기권총이 기본입니다. 이 밖에도 25m 속사권총, 25m 권총, 50m 권총, 10m 공기소총, 25m 화약권총 등 다양합니다. 사격선수는 10m 공기권총 외에도 2~3개 종목을 해야 개인 기량도 올리고 개개인의 경쟁력도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선 10m 공기권총 외에 다른 종목은 엄두도 못 냅니다. 전국대회를 치를 종합사격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예진 선수와 스승인 홍영옥 코치의 합작품인 금메달이 더 빛나는 이유입니다.

오예진 선수가 10m 공기권총과 함께 선택한 종목은 25m 화약권총이었습니다. 공기권총보다 2배 무겁고 거리도 더 먼 25미터의 화약권총은 실외사격장이 필수입니다. 하지만 제주엔 이를 연습할 곳이 없습니다. 당시 홍영옥 코치가 화약권총을 연습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택한 것은 이미지 훈련이었습니다. 다른 지역 사격 선수들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화약권총 실전연습을 하는 동안, 제주의 오예진과 홍영옥 코치는 화약권총 격발을 머릿속에 그리며 스윙을 하고 공기총과 완전히 다른 격발, 그리고 자세 잡기 맹훈련을 해왔던 겁니다.

홍 코치는 당시를 회상하며 "성과를 내기 위해 미쳤었던 것 같다"며 "새벽에 눈을 뜨면서부터 사격인으로서 선수의 미래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갔다"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오예진 선수도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더 악착같이 했던 것 같다"며 "보다 나은 사격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감도 느낀다"며 사격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실전 연습은 그나마 방학 때마다 비행기를 타고 전남의 나주종합사격장까지 가서 해야 했고, 전국대회 화약권총 종목에 출전하는 게 연습의 하나였을 정도입니다.

현 제주여상 사격부 박미숙 코치는 "수백만 원의 화약총을 구입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며 "다행히 제주도사격연맹이 10년 전 제주지역 실업팀이 해체되며 보관하던 총을 지원해줘 연습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오래되다 보니 고장이 잦아 시합에서 눈물의 기권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제주의 사격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사격 전지훈련 제주로 왔다가 체력단련만 하고 돌아가요."

제주에선 처음으로 개인종목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배출된 가운데 도내 사격장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제주여상에 사격선수 한 명이 서는 10m 공기권총 사대는 12개, 제주고 60개, 표선중·고 16개, 동여중 10개가 전부입니다. 여상은 공간이 협소해 16개 사대마저 간격이 좁습니다. 제주고는 사대가 60개이지만 1982년에 지어지다 보니 20개가량의 표적이 오류가 난 상태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정심 울산스포츠과학고 운동부 지도자는 다른 지역에서 제주로 사격 전지훈련을 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혀를 내두릅니다. 유 코치는 "사격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제주에서 전지훈련 할 당시 표적지 등 고장이 잦아 선수들이 격발 연습 도중 자리 옮기는 일이 잦아 체력훈련을 위주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스카웃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제주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있지만, 이 같은 환경은 제주도에 큰 손실"이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2026년 제주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데 정작 사격은 다른 지역에서 열리면 제주 전국체전에 참가하는 다른 지역 선수들도 제주 개최가 의미 없고, 제주 선수들 역시 다른 지역까지 가서 경기를 해야 해 비용과 컨디션 측면에서 피해"라며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전국대회 규모 사격장이라도 조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제주도사격연맹 측은 "제주 종합사격장 조성은 오예진 선수의 금메달 획득 때문이 아니라 수년전부터 제주도에 요청해 온 숙원 사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제사격장 조성보다 우선 최소 공기권총 사대 80개와 10개의 결선장만이라도 최소한으로 갖추는 게 꿈나무 육성과 전국체전을 위해서라도 절실하다"며 "지금이 아니면 오예진을 낳은 제주에서 사격 인재를 놓치고, 전국체전 사격 종목만 타지에서 치러질 경우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 사격부마다 자체 결선 연습도 어려워"…연계 육성 절실

지난달 30일, 제주 서귀포 표선고 사격부 훈련 모습


사격 공기권총 10미터 결선에 서는 선수는 모두 8명입니다. 최소 8명은 있어야 제대로 된 결선 연습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제주도내 사격부가 있는 5개 학교 현황을 확인해봤습니다. 제주여상 8명, 제주고 5명, 표선고 6명, 표선중 6명, 동여중 7명으로 제대로 된 실전 같은 긴장감 도는 결선 연습이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

연계 육성 현실도 어둡습니다. 올해 동여중 사격부에는 제주여상 사격부로 진학하는 선수가 없다고 합니다. 여기에 현재 제주여상 사격부 3학년 2명이 내년에 졸업하면 6명만 남아 선수 발굴은 발등의 불입니다.

사격 인프라가 열악하다 보니 운동을 하다가도 그만두는 사례가 이어지고, 초중등 각급 학교별 사격부 추가 창설이 없고, 그나마 있던 제주지역 사격 실업팀도 2012년에 꾸려졌다 3년만인 2014년 해체됐습니다. 사격 인프라와 꿈나무 육성에 대한 현실 진단과 대책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다른 지역 앞다퉈 사격 활성화와 시설 확충"…제주는 아직도 축하만

지난달 31일, 충남 서산시가 마련한 어린이 스포츠 사격 체험 교실


이번 올림픽 사격 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지며 사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벌써부터 충남 서산에서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지역 초등학교 고학년 50여 명을 대상으로 스포츠 사격 체험 교실을 열어 호응을 얻었습니다. 국가대표 등 선수들도 직접 참여했습니다. 체험 교실을 통해 사격으로 진로를 결정한 학생도 나타나며 서산시는 사격 체험 교실을 통해 미래 꿈나무 발굴에 노력한다는 계획입니다.

대구시도 반효진 선수의 금메달 소식과 함께 대구 지역 사격 실업팀 창단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고, 기존 사격장 확충과 세계사격대회 유치를 선언했습니다.

반면, 제주도는 축하 보도자료 배포 외에 지금까지도 공식적으로 이렇다할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고, 도교육청과 도의회 등 여기저기서 오예진 선수의 금메달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만 앞다퉈 내놓고 있을 뿐입니다.

이에 김양보 제주도 문화체육교육국장은 KBS가 관련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근 게임과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 문제가 되는 만큼 사격 종목의 장점을 활용해 학생들의 집중력 향상과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는 설명에 그쳤습니다. 또 인프라와 관련해선 "부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사격장 하나 없는 제주에서 오예진 선수의 메달은 기적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경기침체와 폭염에 그 어느 때보다 삶이 힘겨운 지금, 오예진 선수와 홍영옥 코치가 정조준한 희망의 기적이 무얼 의미하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제주도가 답할 차례입니다.

[2023년 오예진 공기권총 10m 수상실적]

제5회 창원 시장배 1위
제16회 대통령경호처장기 1위
제6회 대구시장배 1위
2023 환화회장배 1위
제47회 회장기 전국중고사격대회 1위
제52회 문체부장관기 1위
제32회 경찰청장기 1위
제39회 회장기 1위
제104회 전국체육대회 1위 (한국주니어 신기록)
ISSF 자카르타 월드컵사격대회 1위
ISSF 줄 세계주니어 사격선수권대회 대한민국 단체 1위
창원 세계주니어 사격선수권대회 2위
제15회 아시아 사격선수권대회 1위
2023 동아시아 유스사격대회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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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희 기자 (inh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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